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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황혼색의 명영사 4~5, 장편 판타지 라이트노벨의 아쉬움


작가 : 사자네 케이
일러스트 : 타케오카 미호
레이블 : 후지미 판타지아 문고 / NT노벨


 <황혼색의 명영사>는 잘 만들어진 판타지 작품으로 굉장히 만족스럽게 읽었다는 감상을 예전에 남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3권까지 읽었던 그 시점에서 일부 한계가 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였고, 아쉬운 점으로 지적하면서 이후에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함께 남겼었죠. 4권과 5권을 읽으면서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라이트노벨 1권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 중 하나였기 때문에 애정을 품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안타까움이 커졌던 것 같습니다.


 1. 중심 인물이 아닌 중심 사건 체제의 스토리 진행


 이전 리뷰에서도 언급한 부분입니다만, <황혼색의 명영사>는 네이트와 클루엘이 만난 1권 이후부터는 인물 중심이라기보다는 사건 중심의 스토리 진행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2권에서 에이다가 등장하며 그녀의 이야기가 주목된 것 이외에는 특별히 어떤 캐릭터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았으며, 회색 명영과 정체 불명의 존재에 관련된 사건들이 일어나며 그에 클루엘, 네이트 등이 말려드는 방식이었죠. 3권에서는 네이트가 야색 명영을 멋지게 성공시키고 클루엘과의 관계도 진전될 기미를 보였지만, 4권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라이트노벨을 이야기할 때 캐릭터라는 말은 정말 많이 언급됩니다. 굳이 라이트노벨이 캐릭터 소설일 필요는 없지만, 다른 소설과의 차별점을 들 때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라이트노벨에서는 캐릭터가 중요하고, 또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지가 중요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캐릭터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와, '캐릭터들이 어떤 이야기를 펼쳐 나갈 것인가'의 차이에 있습니다. 장르는 굉장히 다양하지만, 거기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후자의 성격이 굉장히 강하다는 면일 것입니다.

 <황혼색의 명영사>의 캐릭터들은 분명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문학소녀 시리즈> 등으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타케오카 미호 씨의 일러스트에 의해 보정된 클루엘&네이트 커플(?)은 물론, 귀여운 동안이지만 심지가 굳은 미오, 보이쉬하지만 어린 소녀 같은 모습도 있는 에이다, 아직 미숙하지만 학생들을 정말 좋아하는 케이트 선생님, 말할 것도 없는 먼치킨 캐릭터 카인츠, 그리고 진정한 히로인(?) 이브마리 등, 작가의 필력이 받쳐주는 만큼 어지간한 캐릭터 중심 소설에도 전혀 뒤질 것 없는 개성을 자랑하는 인물들이 많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운명의 흐름에 휘둘리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시리어스한 전개가 장대하게 펼쳐지지만, 캐릭터들은 그것에 수동적으로 대치하거나 뜬금없는(작가만 아는) 대사만 늘어놓을 뿐, 그러한 캐릭터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았다는 겁니다.

 제가 1권을 극찬한 이유는 이러한 부분, 즉 인물과 서사의 조화가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춰진 능력을 지닌 소녀와 비밀스러운 과거를 지닌 소년이 만났고, 서로 부딪히며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졌으며, 흑막 속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무언가에 등을 맞대고 맞서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감동적인 결말을 이끌어 냈었죠. 그러나 애초에 스토리 진행을 위해서 꼭 필요했던 말, 에이다를 등장시킨 2권 이후로는 캐릭터들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이 아니라, 회색 명영을 사용하는 남자, 미슈달과 명영 자체의 수수께끼에 얽혀가는 모습만 보여줬습니다. 물론 작가나 편집자도 그런 것을 인식했는지, 4권을 제외하고는 라이트노벨스러운 부분을 만족시킬 수 있는 요소도 첨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였습니다.


 2. 클리셰의 반복에 의한 폐해


 다른 분들은 어떻게 감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처음에 이 작품의 주인공이 클루엘인 줄 알았습니다. 여명의 신조 피닉스를 불러내고, 클라임이 걸린 촉매로 명영을 하는 - 처음에는 평범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서 먼치킨스러운 능력을 갖게 되는 주연. 이건 아무리 봐도 전형적인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근데 작가 후기를 보니 네이트가 주인공이더군요? 생각해보니 네이트도 비슷한 길을 걷긴 했습니다. 명영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녀석이었지만, 클루엘을 지키기 위해 싸움에 몸을 던질 정도로 성장했죠. 하지만 그렇다고 클루엘의 존재가 희석될 수는 없습니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흐름이 작품을 지배하는 구조 안에서, 캐릭터들이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사건의 해결 부분입니다. 이야기에 휩쓸리더라도 마지막 투지를 불태우며 모든 법칙을 무시하고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꽤나 흔한 모습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작품은 캐릭터의 움직임에 따라 사건이 진행된다는 느낌보다, 전체적인 흐름에 맞춰 캐릭터들이 움직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서 등장했던 것이 바로 주인공, 네이트의 성장과 활약이라는 코드였습니다.

 1,2권에서는 클루엘이 주인공스러운 활약을 보여줬던 것에 비해서, 3권부터는 네이트가 활약하기 시작합니다. 서툴렀던 야색 명영으로 적을 무찌를 수 있게 되어, 주인공스러운 면모를 어필할 수 있었죠. 설상가상으로 4권부터는 주인공 라이벌(?)인 클루엘이 혼수상태에 빠져버리기 때문에 그가 활약할 장면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이다나 다른 E단조 멤버를 비롯해 다양한 인물들이 회색 명영과 공백의 침투자에 맞서지만,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주인공이 아니면 안 되니까요. 아무리 흐름에 휩쓸렸다 하더라도 매듭을 짓는 자가 진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 네이트는 4,5권에서 여러 면으로 굉장한 활약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한다' 는 클리셰는 뻔하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 작용되느냐에 따라 충분히 다른 재미를 줄 수 있고, 표현이 자유로운 라이트노벨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의 카미조가 항상 저 방법을 써 먹지만, 항상 똑같은 모습만 등장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요.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네이트가 보여준 방식, 작가가 그려낸 모습은 3~5권이 거의 완전히 똑같았습니다. 다양한 들러리 캐릭터들(E단조, 선생님, 지르셰, 연구원 등)로 간신히 현상 유지만 되는 상황을 만들고, 주인공(네이트)이 예상치 못한 방법을 통해 위기(회색 명영, 공백 명영)을 타파하는 모습이었죠. 루비듐으로 야색 불꽃을 만든다고 하는 방법마저도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에, 5권의 클라이막스는 솔직히 3권의 규모(적의 진정)가 커졌을 뿐이지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모두의 힘을 빌린다'고 하는 소년만화적 요소를 충족시키기 위해 장식품처럼 딸려온 반 친구들이 오라토리오를 들으러 나왔을 때는 여러가지 의미로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감동적인 장면이라도 두세번 써 먹으면 질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감동이 컸다면 더해가는 실망감의 크기도 비례합니다. 네이트의 활약이 못마땅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뻔히 끝이 보이는 결말에는 더 이상 감동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3. 미슈달과 회색 명영, 샤오와 공백 명영


 5권까지의 이야기로 '회색 명영'과 '아마릴리스'에 대한 사건은 일단 마무리가 되어, 소단원은 내렸다는 느낌입니다. 3권까지의 전개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가지 키워드, 회색 명영과 투명한 습격자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을 했지만, 결국 회색 명영 스토리는 그다지 만족스럽게 끝나질 못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미슈달 본인에게 있습니다. 대륙의 각종 연구기관 등을 습격하고 에그를 통한 간접적인 사건들을 일으키던 미슈달이 결국 별 볼 일 없는 소인배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E단조 회의에서 '회색 명영의 소행으로 알고 있던 사건들 속에 전혀 성격이 다른 문제가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수수께끼에 또 다른 의문이 더해지는 점입가경의 전개로, 뒷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죠. 하지만 5권에서 밝혀진 미슈달의 이야기, 즉 그가 회색 명영에 손을 대고 클루엘과 네이트에게 집착한 이유가 너무나 평범한 영역에 있었기 때문에 큰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3권에서 클루엘과 네이트 일행을 보며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들을 남기며 흥미를 더해 주었지만, 주인공 일행과 마찬가지로 내적인 갈등만을 갖고 있었던 그의 동기가 너무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샤오라는 새로운 캐릭터와 공백 명영입니다. 백색 명영의 이단, 죽은 패자의 왕을 쫓고 있었을 뿐인 미슈달과 달리 모든 색 명영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영역에 있는 만큼 이야기는 좀 더 심도 있게 전개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미슈달 같이 겉만 요란했지 속은 전혀 볼 것 없었던 남자의 이야기로 이만큼 '그럴 듯하게' 5권을 집필한 작가이니만큼, 솔직히 공백 명영 또한 별 볼 일 없는 진실에 불과하거나 '우리 같이 친하게 살자' 식의 엔딩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리란 법도 없을 것 같다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by Laphyr | 2010/07/13 01:40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2)

[리뷰] 황혼색의 명영사, 웰메이드 판타지와 한국에서의 한계


작가 : 사자네 케이
일러스트 : 타케오카 미호
레이블 : 후지미 판타지아 문고, NT노벨


 발매된 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국내에 수입이 되는 작품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크게 나누어 볼 때 하나는 시간의 흐름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 줄 만큼 큰 파급력을 가진 작품(은하영웅전설, 성계 시리즈 등)이고, 또 하나는 여러 가지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출간이 늦어진 경우가 되겠죠. 2007년 1월에 1권이 출간된 후, 2년 10개월만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황혼색의 명영사>의 경우는, '작품의 성격' 자체가 시간의 흐름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쪽이라고 분류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수상작이 보여줄 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의 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의 높은 평가(판매량이 아닙니다)도 이러한 부분을 뒷받침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입소문을 통한 기대와 함께 같은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이었던 <문학소녀 시리즈>로 상당한 인지도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장르적 특성과 지나친 투명함 때문에 오히려 한계를 드러낸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고 말았습니다.


 1. 이브는 새벽에 미소짓고 - 완성도 높은 도입


 라이트노벨을 이야기 할 때 단권 완결성, 1권의 중요성은 항상 언급되는 부분입니다. 어떠한 스토리가 큰 호흡을 갖고 연속적인 흐름을 통해 드러나는 기존의 대다수 판타지, 무협소설과는 달리, 라이트노벨은 한 권이라고 하는 분량을 통해서 느슨한 안식을 맛 볼 수도, 날카롭게 조율된 긴장을 맛 볼 수도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펼쳐 나가게 되는 1권이야말로, 그 어떤 다른 에피소드보다도 독자를 매혹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많은 라이트노벨 작품들이 2권 이후의 텐션이 떨어지는 인상을 주는 것도 이러한 이유를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살펴봤을 때, 제18회 판타지아대상 가작을 수상한 <황혼색 명영사> 1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준급의 완급 조절을 통해 조금은 낯선 이야기를 독자에게 훌륭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배경은 평범한 판타지 풍의 세계이며 '명영식'이라는 이름의 마법이 등장하는 것까지도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만, 완전히 다른 소년과 소녀를 등장시키고 그들을 좇는 다양한 시각으로 작품을 비춰 가면서 높낮이를 적절히 조절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특이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주인공의 성격에 따라 인상이 좌우될 수 있는 형태에 비해서 리스크가 낮은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만큼 캐릭터의 인상이 옅어질 수 있다는 약점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1권 전체를 통해 '인물'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들이 엮어 나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그것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숨기고 있었던 결말을 통해 충분한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물론 최소한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적절한 이능 요소, 주인공의 활약을 통한 대리 만족 장면도 일부 삽입된 것은 당연한 서비스였습니다.


 2. 인물 추가와 본격적인 이야기 진행


 작가 본인도 후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좀 더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클루엘과 네이트 외의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2권입니다. 에이다라고 하는 매력적인 소녀를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며, 학원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인 여름학교를 배경으로 등장시키면서 보다 친숙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됩니다. 거기다 이름만 나왔거나 별다른 활약이 없었던 선생님들의 이야기도 조명하기 시작하죠.

 <에그>와 회색 명영의 등장 역시 장기적으로는 큰 포석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무엇보다 2권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은 지르셰라고 하는 존재가 구체적으로 부각되었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마법'과 대치되는 '검'에 해당하는 역할을 채워줄 수 있는 개념의 등장으로, 에이다 부녀가 각각 <E단조>와 클루엘 일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작품이 어떤 쪽으로 나아가든 자칫 명영식 파워 배틀이 되어버릴 수 있는 위험을 줄였기 때문입니다. 이미 클루엘이 적색의 진정을 불러냈고 또 그것을 갈등 해결의 열쇠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이를 견제해 줄 수 있는 소재의 등장은 시기 적절한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3권에서는 어렴풋한 형태만 드러냈던 '적'이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개입하기 시작하는데, 2권에서 침범 받았던 클루엘 일행의 평화는 여름학교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에 있었던 반면에, 3권에는 트레미아 아카데미라고 하는 일상 자체를 구체적으로 파괴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진지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일상과 비일상이 평범하게 섞여 드는 것은 파격적인 재미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잘못하면 재미 감각의 마비로 이어질 수 있으며 취향에 따라서는 거부감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킬X러브>같은 경우가 대표적). 그런데도 불구하고 3권에서 클루엘 일행을 모두 사건에 휘말리게 한 것은 앞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할 것이라고 하는 진지한 자세의 천명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3. 웰메이드 판타지의 한계


 이처럼 <황혼색의 명영사>는  훌륭한 기승전결을 선보이는 도입의 1권, 적절한 캐릭터 보충과 함께 복선을 까는 2권, 본격적인 이야기의 서막을 알리는 3권으로 구분할 수 있는, 구조적으로 굉장히 잘 만들어진 판타지 소설입니다. 그렇지만 그다지 폭발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국내 반응을 생각한다면, 분명 어디엔가에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판타지'라고 하는 장르의 한계도 분명 문제의 하나겠지만, <강각의 레기오스>나 <성검의 블랙스미스>같은 작품들을 생각한다면 무조건 장르탓으로 돌리기도 힘들겠죠.

 정답은 클루엘과 네이트의 관계에 숨어 있다고 봅니다. 두 사람은 세 살 차이라고 하는, 커플로서는 굉장히 적절한 나이 차이입니다. 그렇지만 네이트가 나이보다 여린 면모를 갖춘 소년이고, 클루엘 역시 상대적으로 조숙한(?) 아이이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는 관계로 등장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설정 자체는 굉장히 흥미로울 수 있고, 두 사람이 주인공 커플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고 보기에는 가끔씩 보여주는 알콩달콩한 장면이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 항목에서 칭찬했던 부분에 존재합니다. 바로 다양한 시각이라는 부분이죠.

 두 사람은 충분히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캐릭터들이고, 작가 역시 그러한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시각으로 긴 호흡의 이야기 전체를 비추는 데 주력한 나머지, 두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좀 더 재미있는 장면들이 오히려 생략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름학교 이후 방학 기간동안, 두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명영식 연습을 하며 함께 지냈다고 하는 설명이 3권에 나옵니다. 아직 연애라는 감정에 눈 뜨지 못한 풋풋한 두 사람이 다소 어색하게, 그러나 열심히 보냈을 그 여름은 굉장히 흥미로운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캐릭터들의 잡담과 망상만으로 쓴 소설들이 팔리는 마당에, 본격적으로 어둡고 진지한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그러한 부분을 킵했다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선택입니다. 맛있는 음식도 따뜻할 때 먹어야 제 맛인데, 아껴 먹는다고 랩에 싸 두면 그만큼 맛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말이죠.

 마찬가지 맥락으로 너무 많은 캐릭터들에게 동등할 정도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카인츠나 이브마리와 관계가 있는 선생님들이나 E단조의 멤버 등의 이야기에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분명 작품성 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겠으나, 좀 더 많은 독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내버려 둔 채 진행시켰다는 것은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모든 친구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비추어 간 이후에 배치된, 클루엘과 미오, 네이트가 등장하는 3권의 클라이막스 연출은 '어떤 감정'의 방향에 주목해야 하는지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들기까지 합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졌으면 그 어떤 엔딩보다 아름다웠을 의무실 침대에서의 한 마디 역시 이러한 애매한 방향성 때문에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최근 정식 발매되고 있는 작품 중에서는 <하자쿠라의 여름>과 함께 가장 재미있게 감상하고 있는 타이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재미를 느꼈습니다만, 아무래도 두 타이틀을 비교했을 때 좀 더 지나치게 투명한 이 작품 쪽에는 이런저런 아쉬움이 생기기도 하더군요. 어찌 생각하면 이러한 부분은 라이트노벨을 쓸 때도 유념해야 할 점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준비한 것이 웅장하고 아름답더라도, 더 큰 재미의 가능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까운 것일테니까요. 역시 그런 부분은 레이블의 차이도 큰 것 같습니다. 보다 영세한 레이블에서 나왔으면 방향 수정의 실패를 겪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 하고 말이죠.

by Laphyr | 2010/05/01 01:06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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