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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문학소녀와 통곡의 순례자



 '책'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이쪽(?)에 취미를 갖고 계시는 많은 분들은 '책'과 관련된 가장 인상깊은 캐릭터로 R.O.D.의 요미코를 꼽으시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책'과 관련된 이야기로 가장 인상깊은 작품을 꼽으라면 <문학소녀> 시리즈를 따라올 작품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인 이노우에 코노하의 이야기마저 여태까지와 마찬가지의 전개로, 여태까지 이상의 흡입력을 보여주며 소개했다는 것은 거기에 큰 힘을 실어주지 않을까 합니다.

 1. 한 권의 에피소드, 여덟 권의 장편

 저는 <문학소녀> 시리즈가 각 권 에피소드 형식을 취하면서도, 온전히 독립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가장 큰 강점 중의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종이를 먹는 신비한 소녀 토오코의 존재를 중심으로, 각 권마다 고전 명작과 연계되는 고민을 안고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에피소드를 이어간다는 방식이 겉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만, 이것만으로는 매너리즘에 빠질 여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방식, 즉 '메인 테마와 메인 히로인을 정해놓고, 일정한 패턴으로 새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등장' 시키는 구도는 라이트노벨 뿐만 아니라 다른 컨텐츠에서도 질리도록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학소녀> 시리즈는 좀 달랐습니다. 매 권이 다른 에피소드를 다루고는 있었지만, 주인공 코노하를 중심으로 하는 작품 자체의 테마가 내면에서 조금씩 움직이며 존재를 과시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이것은 다소 과장된 문장 부호의 사용이 가미된 1인칭 서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시도였습니다. 각 권의 에피소드를 쫓는 과정에서는 특유의 순정만화 느낌의 독백 등을 통해 (~했던 것이다! ~한 것이라니? 등) 독자를 사건 속으로 친밀하게 안내하였으며,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의 단서가 드러날 때는 교묘한 심리 표현으로 (~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는 이미 잊었다 등) 비밀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런 복선은 이번 <통곡의 순례자> 에피소드를 통해 전면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만, 그것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 이러한 구성의 강점이 될 것입니다. 5권이라고 하는 시기도 굉장히 적절했습니다. 적절히 약간은 먼 거리의 이야기를 섞어 넣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며, 독자들에게 코노하의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통곡의 순례자> 에피소드에서는 위와 같은 코노하의 시점이 조금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의 감정이 드러나야 하는 것은 감동적인 결말 부분이기 때문에, 미우와 고토부키의 대립과 함정 등을 겪으면서도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다는 것이죠. 에피소드 중간 부분에서 등장하는 미우를 대하는 코노하의 태도 부분으로, 주저와 망설임의 기분을 전달하는 데 주력하다보니 다소 이해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는 사실 키를 쥐고 있는 토오코의 존재와도 연결되어 조금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입니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고나 할까요? 소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대의 크기에 독자들이 위화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제일 아쉽죠.

 2. 여덟 권의 장편, 한 명의 캐릭터

 먼저 이야기의 구성을 따라 <문학소녀> 시리즈의 특성을 이야기 했습니다만, 이 역시 라이트노벨이니만큼 캐릭터에 관련된 장점을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이 시리즈의 캐릭터를 논하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츤데레나 얀데레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시대의 트렌드를 잘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캐릭터 그 자체보다는 등장시기의 조절입니다. 바로 다케다 치아라는 캐릭터 때문이지요.

 위에서 이야기한 '매너리즘에 빠지는 구조'에서 캐릭터와 연관된 특징을 찾아보라면, 많은 분들이 '다수 캐릭터의 등장'을 꼽아주실 것입니다. 메인 스토리가 치밀하지 못하고 단순한 설정에 의지하는 작품의 경우, 당연히 새로운 속성을 가진 신 캐릭터의 등장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작품에서도 새 캐릭터의 등장은 언제나 좋은 에피소드거리가 되겠습니다만,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져 신 캐릭터를 등장시켜야만 하는 작품들도 굉장히 많이 양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작품에서 새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굉장히 특이한 속성을 갖고, 저마다의 에피소드를 갖고 나타납니다. 이는 '한 권'을 책임지기 위해 등장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분명히 어느 정도 이상은 매력적이고 흡입력을 가집니다. 하지만 '한 권'이 끝난다면? 대부분 그런 캐릭터는 버려지고 맙니다. 자신의 속성을 모두 사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낸 신 캐릭터는, 주된 갈등을 잃고 주인공 주변에서 배회하거나 머릿수만 채워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런 연유로, 제가 <문학소녀> 시리즈에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이 다케다 치아라는 캐릭터였습니다. 굉장히 파격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모습으로 등장했던 그녀는 한 번 문제가 해결되었음에도 코노하의 주변에 머물며, 단순한 배경으로 전락된 느낌을 주었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번 에피소드에서 그녀가 다시 한 번 등장했다는 것에는 개인적인 취향에 의한 반가움뿐만 아니라, <문학소녀>라는 작품에 대한 완성도 면에 있어서도 굉장히 안정감있는 지원 사격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을 자세히 언급하면 작품의 내용 누설이 될 수 있으므로 자제했습니다. '캐릭터의 재발견' 이라는 기법에 대해서는 예전에 작성했던 <스즈미야 하루히의 분열> 리뷰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요.)

 3. 雨ニモマケズ (비에도 지지 않고)

 <문학소녀>시리즈는 고전 명작(?)과 연계되어 있다는 작품의 특성상, 본편의 이야기에 지지 않을 정도로 각 권에 관련된 작품의 이야기에도 비중이 할당되어 있습니다. 물론 작품 그 자체는 문학소녀가 낭랑한 이야기로 해설해주는 것처럼 달콤하지 않아서, 따로 작품을 읽거나 하는 경우에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비에도 지지 않고> 와 연계된 코노하, 미우의 이야기는 칭찬을 해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몸을 태워서 여행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빛을 전해주는 전갈의 모습, 자신은 돌보지 않고 소박하게, 열심히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은 남자의 모습, 불행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녀의 꿈. 전갈은 스스로를 희생하였고, 남자도 생전에는 불우한 삶을 살다 갔습니다. 하지만 밤 하늘의 별자리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세대를 뛰어넘어 희망을 안겨주는 남자의 작품처럼, 소녀의 꿈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그녀를 위해, 토오코가 雨ニモマケズ 를 낭송해준 것은 무엇보다 큰 격려의 한 마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by Laphyr | 2009/02/26 18:39 | = 라이트노벨 | 트랙백(1)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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