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인크루트스타리그

[감상] 인크루트 스타리그 36강 H조 - 돌아온 총사령관

 오늘의 송병구 선수는 네임 벨류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플레이를 통해 증명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의 원종서 vs 박수범 전에서 눈을 완전히 버렸기에 더더욱 오늘의 경기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의미에서는 원종서 선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_-;

 이번 36강 체제의 눈속임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만, 피씨방 리거에 대한 동정론에 대한 반론으로 오늘과 같은 조편성을 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1경기에서 승리한 이학주 선수의 시각에서의 생각이긴 하지만, 적어도 24강 위치에서 기다리는 송병구 선수보다 오히려 플토전만 연습하면 되는 테란의 입장이 괜찮지 않았나 싶기도 했거든요. 병구 선수가 인터뷰에서도 신 맵의 연습이 부족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가 올라올지 모르는 전 스타리거의 입장도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더군요.

 어쨌든 1차 경기에서는 이학주 선수가 "테란"의 모습을 잘 보여줬습니다. 서기수 선수가 프로리그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인상적인 힘으로 대항하긴 했지만, 솔직히 1경기에서 뻔한 셔틀 공격을 감행한 모습이나 3경기 안드로메다에서 온리 질드라로만 테란의 지상병력을 상대하려는 모습은 "아직 양산이구나" 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더군요. 물론 드랍쉽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이학주 선수가 잘한 면도 있었겠지만, 르까프 테란들이 프로리그 개인전에서 보여줬던 특색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뭐 솔직히 이 부분은 이학주 선수가 오래된 선수이지만, 하부 리그까지 제대로 챙겨보지 않았던 제가 선수의 특징을 잡아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지만요.

 오늘 경기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최종진출전 1경기, 이학주 vs 송병구 in 플라즈마 였습니다. 

 아무래도 1차전 서기수 선수와 비교를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셔틀로 견제를 시도했고, 나중에는 결정타를 위해 캐리어를 준비했죠. 근데 한 선수는 완전히 실패했고, 또 한 선수는 멋지게 승리했습니다.

 사실 요즘 플토 vs 테란전에서는 웬만큼 넓은 센터를 가진 맵이 아닌 이상, 테저전에서 뮤탈 테러가 나오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태운 셔틀이 자주 등장합니다. 뮤탈이 테란의 진출을 늦추고 후속 병력을 끊어먹으면서 저그의 3가스 확보 혹은 체제 변환을 통한 승리공식을 세워나가는 것처럼, 테플전의 셔틀 플레이 역시 견제를 통해 자원 수급을 방해하거나 병력을 끊어 진출을 늦추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도 그런 장면이 정석적으로 연출되다보니, 그것을 "꼭 거쳐가야만 하는 단계"로 여기는 듯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등장한다는 부분입니다. 1차전 1경기에서 보여진 서기수 선수의 셔틀은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레이스가 있는 것을 이미 확인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소수 병력 드랍은 '나 이렇게 공격할 의도가 있으니까 병력 함부로 전진하지 마' 라는 어필을 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했습니다.

 셔틀 드랍을 통한 견제는 테란 선수로 하여금 '아, 상대의 견제 공격이 무서우니 좀 웅크려서 수비를 할 필요가 있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격 시도에 의한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고, 서기수 선수의 견제는 '저 선수에게 심리적으로 내가 공격하려는 것처럼 느끼게 해야겠다' 는 것이 뻔히 보이는 공격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드랍된 병력들은 제대로 컨트롤되지 않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적 본진에 올라간 드라군은 가만히 서서 건물 때리다가 뒤따라 올라온 벌쳐에게 허무하게 맞아죽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최소한 적의 본진이라도 더욱 살피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승리를 위한 선수의 의지가 아니었나 싶어요.

 어쨌든 그에 반해 송병구 선수는 약간 느린 타이밍의 리버 견제를 통해 7시쪽 멀티를 안전하게 확보하고, 지상군을 뿜어낼 수 있는 체제를 완비합니다. 테란의 전진을 견제로 최대한 늦추고, 충분한 병력을 확보한 다음 정면에서 조이기 라인을 뚫어낸다는 정석적인 플토의 승리공식을 그대로 보여주더군요. 뭐 첫 번째 교전에서 리버가 빨리 죽은 흠이 있긴 했지만, 그 이후로 보여준 중앙 교전 + 후방 교란은 그야말로 조이기 라인을 형성하며 전진하는 테란을 상대하는 교과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2경기는 초반부터 어느 정도 기울어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 위원이 말한 '기세'라는 부분에 대해서 경기 내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들도 인간인 이상 그런 부분에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죠. 탱크 뒤에 숨어서 총도 안 쏘던 마린의 모습, 캐리어가 나올 때까지 까맣게 칠해져 있던 이학주 선수의 7시 맵 화면 등은 그런 부분이 많이 작용했다는 것이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임원기 선수만 두 번 꺾고 올라간 마재윤 선수에게 '부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봤을때 이학주 선수를 꺾은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WCG 예선과 스타리그 36강을 통해, 특징이 없기에 '무결점의 총사령관'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가 유연성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 박지수 전에서 예상치 못한 지형을 이용한 패스트 캐리어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오늘 왕의 귀환 경기는 초반 4드라군 푸쉬 성공 이후 굳이 캐리어를 가지 않아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캐리어 전환을 통해 '완벽한' 승리를 거둔 점에서 그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엄 위원이나 캐리 해설도 이야기한 것처럼, '패배의 충격이 오래갈 수 있는', '벽이 느껴지는' 그런 경기를 이학주 선수에게 선사한 것은 덤이라고 할 수 있겠고 말이죠.

 뭐 '송병구의 테란전은 원래 강력하다' 는 이야기를 반론으로 할 수 있겠고, '대 저그전에서는 아직 A급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도 제가 발견한 유연성이 아직 제대로 여물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테란전은 원래 강력했어도 완벽하지는 않았으며, 융통성 측면이 부족했다는 것은 대 이영호 전에서의 패배들이 말해줬습니다. 운영의 묘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유연성, 센스가 필요한 만큼, 이러한 모습은 분명히 병구 선수가 긍정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저그전은 더더욱 극복이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_=)

by Laphyr | 2008/08/21 02:59 | = 온라인/비디오게임 | 트랙백 | 덧글(0)

인크루트 스타리그 36강 - 박지수의 타이밍을 깨부순 공명토스

 요즘들어 르까프 선수들의 활약 덕택에, '설정 안티'의 재미를 듬뿍 맛보면서 즐겁게 경기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윤열 선수를 중심으로 하는 팬택-위메이드 안티였다면, 제대 이후로는 르까프 안티를 설정하니 매 경기마다 비 르까프 선수를 응원하게 되니 흥미진진하네요. 그만큼 개인리그 & 프로리그에서 고루 활약해주고 있기 때문이겠지만요.

 어쨌거나 요즘에는 그 선두로 꼽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박지수 선수였습니다. 이제동 선수는 기세가 조금 꺾인 느낌이 있는 반면, 박지수 선수는 한창 기세가 좋고 안티질을 하기 좋은 종족 테란이니까요. 오늘도 WCG 예선과 스타리그 36강에 모두 출전하면서 저를 즐겁게 해줬습니다.

 온게임넷에서 엄옹이 추상적인 별명을 갖다 붙이길 좋아한다면, MBC게임에서는 그럴듯한 수식어를 끌어다가 자막처리하여 시청자의 뇌리에 선수의 별명을 강제입력 시킵니다. 그 유명한 '날카로운 빌드의 귀재 블레이드 테란'도 MBC게임의 자막에서 태어났고, '히든 조커'라는 김구현 선수의 별명 역시 거의 MBC게임 내에서만 사용되는 비공인 별명이죠.

 박지수의 별명은 '타임 어태커' 역시 비슷한 맥락입니다. 원래 날카로운 타이밍은 대 저그전에서 진영수 선수가 자주 선보이며 닉네임 비슷하게 얻긴 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별명으로 붙일만한 특징인가? 싶은 생각을 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적절한 시기를 찔러서 공격하며 승리하는 선수가 보여주는 타이밍은 항상 뛰어난 경우가 많은데, 굳이 그런 경우의 수가 많다고 '타임 어태커'라고 과장된 별명을 붙일 필요가 있었는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스타크래프트 매니아가 아니라 라이트한 시청자이기 때문에, 빌드와 인구수, 기본적인 타이밍 등의 전문적인 지식을 따질 수는 없습니다. 박지수 선수가 갖고 있는 '타이밍'이란 것이 분명 일반 테란 유저가 보여주는 그것과는 빌드상이나 기본적인 마인드와 다르다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겠죠. 제가 그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저는 그것을 차라리 '공격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병력으로 상대를 압도하며 한 번에 미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저그와 프로토스에 비해, 테란이란 종족은 원래 자리잡기와 느린 전진이 특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타종족에 비해서 테란 유저는 빠른 러쉬&공격성보다는 안전한 멀티와 확실한 전진을 추구하곤 하죠. 대 프로토스 전에서 전상욱 선수와 박성균 선수가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주며, 어떻게 생각하면 정석으로까지 여겨지는 테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박지수 선수는 조금 달랐습니다. 올해 70% 이상의 승률을 보여주던 프로토스 전에서, 그는 '멀티는 언제나 최악의 선택은 아니다' 라는 김동준 해설위원의 지론을 무시하듯 '끝낼 수 있을 때 항상 공격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습니다. 물론 그것은 멀티 위주로 플레이하는 양산형 선수들이 많아진 요즘 트렌드에 반하는 것이었으며, 수준급 프로토스 유저들이 보기에도 그런 '타이밍'은 분명히 엄청난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공격성이라는 것은 항상 위험성을 갖고 있습니다. 옛날 파이어뱃으로 러커를 잡아먹던 폭렬테란 김동진 선수의 몰락이나 작년 변형태 선수가 보여준 광속탈락의 모습에서 비춰지는 것처럼, 방어와 느린 전진이 특징인 테란 종족이 스타일리쉬한 공격성으로 높은 성적을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오늘 박영민 선수와의 경기에서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WCG 예선에서 보여준 김택용 선수와는 완전히 다른 공명토스의 지략에 의해서 말입니다.

 1경기는 박지수 선수의 무서운 기세 & 공격성을 잘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기세가 한창 좋은 선수들은 종종 신들린듯한 방어능력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상대의 견제만 잘 막고 공격을 갈 수 있다면 내가 무조건 이긴다는 자신감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의 박지수 선수 역시 그랬고, 많은 터렛으로 리버를 무사히 막아낸 이후에 경기는 그의 페이스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죠. 사실 상대의 리버를 안전하게 막아낸 상황이니 멀티를 하더라도 이길 가능성이 높았지만, 에그만 빼면 워낙 러쉬거리가 짧은 플라즈마 맵이었기에 박지수 선수의 공격은 도저히 막힐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해설진은 "이 타이밍이 박지수의 타이밍이에요!" 라고 외쳤지만, 솔직히 트리플 커맨드를 하면서 천천히 조여가도 이미 테란이 이길 가능성이 높은 경기였다는 겁니다.

 그런 박지수 선수의 공격성은 2경기에서 큰 낭패를 봅니다. 리버-투팩으로 묘하게 빌드가 갈린 상황에서 어떻게든 중반으로 넘어가는데, 묘한 타이밍에 캐리어로 전환한 박영민 선수의 선택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겁니다. 멀티 후 역언덕의 구조를 갖고 있는 왕의 귀환은 테란이 한 번 조이면 플토 입장에서는 멀티를 먹기 정말 힘든 맵이며, 만약 박영민 선수가 지상군 위주로 나갔다면 다수 탱크를 확보한 박지수 선수가 무난하게 이겼을 겁니다. 

 하지만 박지수 선수는 너무 자신의 공격만을 생각했고, 아카데미를 늦게 짓고 정찰을 소홀히 하면서 경기를 그르쳤습니다. 스타는 '내가 잘하는 것'만큼이나 '상대가 어떻게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한데, 박지수 선수는 한창 기세가 좋은 선수가 범하기 쉬운 '내 플레이만 잘하면 이긴다'는 맹신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자신감이 승리를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3경기에서는 다시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박영민 선수가 평범한 힘싸움보다는 전략을 건 후의 운영을 즐기는 선수라는 것을 인식했다면, 어떤 전략을 걸어올지를 고민하던가 적어도 충분한 정찰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지수 선수는 배럭을 밑으로 날린다던가, 혹은 엔지니어링 베이를 상대본진 근처에 지어서 날리는 시도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고 결국 박영민 선수의 다크에 심각한 타격을 입어버립니다. 물론 그 이후에 보여준 자리잡기나 전투를 하는 능력이 발군이긴 했지만, 이미 올멀티 체제를 갖춘 프로토스 박영민 선수의 아비터 쇼, 걸어들어가서 스톰을 쓰는 템플러 등의 모습을 빛나게 해줄 뿐이었죠.

 결국 2,3경기는 상대의 약점을 파고든 박영민 선수의 준비된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박지수 선수가 오늘 무려 8경기를 치렀다는 것도 감안하긴 해야겠지만, 엄옹이 개인적으로 물어봤다고 했을 때의 대답이나 그의 성향을 감안해봤을 때, 오늘이 단판 승부였다고 해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을지는 미지수라고 보는 편이 옳겠죠. (멀티하면서 천천히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

 아레나 MSL 4강에서 이영호 선수가 박지수 선수에게 패배한 것도 결국 상대의 특징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의 플레이만을 이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팀킬 & 맵밸런스 문제가 있는 결승전은 제외하더라도) 오늘 있었던 WCG 김택용 선수 역시 비슷한 맥락이고요. (특히 1경기의 경우 1번에 정찰이 되지 않았더라도 초반 병력을 많이 생산하는 박지수 선수를 상대로 빠른 게이트 전략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토스'의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는 지략형 박영민 선수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되었고, 이는 앞으로 박지수 선수를 상대하는 선수들에게도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분석당하면 분석당할수록 스타일리스트는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스타판의 현실이니 말입니다.

by Laphyr | 2008/08/08 21:12 | = 온라인/비디오게임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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