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이제동

이제동의 골든마우스를 바라보며

 박카스 스타리그 2009 결승전이 예상대로 한시간 반 남짓, 경기 시간은 30분도 채 넘기지 못하며 이제동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고, 감동 역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그러한지, 그의 네 번째 공식 리그 우승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을지 생각을 해 봤습니다. 


 1. 온게임넷 3회 우승

 스타리그, 그러니까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3회 우승한 선수는 지금까지 이윤열과 박성준, 단 두 명 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다수의 3회 우승자를 보유한 MSL(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마재윤, 김택용)과 분명히 비교되는 모양새였다. 이것을 MSL에서는 "당대 최강자만이 우승할 수 있는 MSL" 이라는 식으로 드립을 치며 포장을 했는데, 사실 그것이 어느 정도는 맞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말을 바꾸면 조금 더 이해가 빠를까. "강한 선수가 우승하기 쉽다"는 식으로.

 반대로 온게임넷은 1회 우승자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했다. 상대적으로 시대 최강자들이 활약하는 MSL에 비해서 천운우승이라느니, 대진빨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까이게 되지만, 이걸 거꾸로 말해보면 "강한 선수가 우승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에는 물론 대전 방식의 차이, 날짜 선정의 차이, 경기 수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포함되겠지만, 어쨌거나 결론이 'MSL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타리그는 최강자가 미끌어질 확률이 높다' 는 경험적인 형태로 나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임이최마' 중 온게임넷 3회 우승을 이뤄낸 선수는 '이' 밖에 없다는 사실도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온게임넷 3회 우승은 똑같은 최강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MSL 3회 우승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현재의 마구 혼란스러워진 MSL을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이제동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더 어려운 일을 먼저 해낸 셈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엠겜 3회 - 온겜 1회가 '조건' 처럼 따라 붙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반대라면 또 어떻단 말인가.


 2. 임이최마

 스타판의 최강자들인 임이최마, 그들의 업적을 폄하하면 무조건 뉴비 취급을 받을 위험이 있을 정도로 네 선수가 스타판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당연히 '최강자'의 기준에 대해 생각할 때는 네 선수에 대한 생각을 안 해 볼 수가 없다. 물론 그것은 커리어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기세와 느낌(포스)의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어느 방향이든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말로 압살적인 포스를 갖고 있었을까? 아쉽게도 나는 그 질문에 완벽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임요환의 신들린 바이오닉 컨트롤을 보며 스타에 빠져들기 시작했지만, 마에스트로의 지휘는 군대 현역 크리 때문에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씩 '전성기 마재윤을 연상케하는 플레이' 라고 칭송되는 경기들 - 김정우의 카르타고, 메두사 경기, 김상욱의 메두사 경기 - 을 보면 저절로 혀를 내두르게 되긴 하지만, 솔직히 지금 와서 옛 VOD를 들춰 봐도 당시 사람들이 느꼈다는 '스타판이 멸망할 것 같은' 포스는 느끼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이제동에 대해서는, '본좌' 라는 단어가 탄생되기 이전의 세 선수의 전성기는 접했지만 정작 본좌의 시초인 마재윤의 시대를 실시간으로 겪지 못했다는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여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4대본좌의 시작은 마재윤이지만 한계도 마재윤 - 또는 그 틀 - 에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의 업적과 포스는 혼란스러운 잣대가 되었다. 과거의 선수들을 그에 비견해서 평가하기도 하고, 이후의 선수들도 그에 비견해서 평가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전의 선수들도 비슷한 냄새를 풍겼을까. 임,이,최 세 선수의 전성기를 지켜봤던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그건 절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세 선수, 아니 네 선수는 분명히 다른 냄새를 풍기는 맹수들이었다. 마재윤이라는 본좌의 탄생으로 같은 라인으로 묶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절대 한 그룹으로 묶을 수 없는 튀어 나온 가시를 갖고 있는 다른 종류의 맹수들이다.
 왜 이 이야기를 했겠는가. 오늘의 경기와 인터뷰를 통해, 내가 이제동에게서 또다른 맹수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3. 이윤열

 이윤열의 또 다른 별명은 벼닉스 피닉스, 즉 불사조다. 그의 이름은 '임이최마'의 두 번째에 올라가 있지만, 몰락(?)한 시점은 마재윤보다 약간 빠른 정도. 범접할 수 없는 최다수의 커리어를 자랑하고, 부친상을 당한 이후 우승으로 극복했다. 무얼 의미하는가? 끈기와 욕심과 근성의 사나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그의 성격은 예전부터 경기에서도 드러났다. 스타판 사람들이 임요환 = 날빌 (+ 두뇌 플레이), 최연성 = 관광 ( + 빠른 gg 타이밍), 이윤열 = 역전 ( + 버티기) 라는 이미지로 테란의 세 전설들을 기억하는 것이 좋은 증거이다. 최연성의 승리는 주로 굉장히 화끈하고 충격적이었다. 레이스로 골리앗을 잡거나 벌쳐로 탱크를 잡는 등, 특히 동족전에서의 상성을 무시한 그의 플레이는 '관광' 이라는 말의 시초가 될 정도로 임팩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마음 먹은대로 경기가 흘러가지 않으면 바로 gg를 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반대로 이윤열은 어떠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아 수많은 명경기와 역전승을 일궈 냈으며, 동시에 '질 게 뻔한데 지루하게 버틴다'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아직 몰락하지 않은 이제동을 불사조에 비유하는 것은 우습긴 하지만, 잔인한 여름을 보냈던 그로서는 짧은 기간에 충분히 지옥에 다녀온 기분을 맛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승전에서의 충격의 3패, MSL에서의 충격의 승패패패, 여기까지만 본다면 2~3년간 '이제동'이 보여준 행로에 비췄을 때 나락 중 하나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빌드에서 지더라도, 첫 교전에서 패배하더라도 억지로 이겨버리는 그의 저그전 역시 불사조의 날개짓과 닮아 있다.

 팀과 선수의 느낌에서도 두 사람은 굉장히 닮아있다. 요즘에는 리쌍이 대표적인 가장으로 불리지만 옛날에는 그 자리가 바로 이윤열의 차지였기 때문이다. 투나SG, SG패밀리, 팬택 시절의 이윤열은 정말 힘들게 프로리그에 나가야 했다. 패가 훨씬 많지만 출전 횟수가 많아 다승왕을 챙기기도 하며 욕을 먹던 것이 이윤열이고, 그러면서도 알아도 까다로운 카드로 활약한 것이 이윤열이다. 현재의 화승보다 못하면 못했지, 낫다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결국 최고의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 끝까지 팀을 책임지며 불타 올랐다는 점에서도, 두 사람은 굉장히 닮아 있다.


 4. 이제동

 나는 이제동이 싫다. 아니, 무섭다. 오늘 인터뷰를 보고 나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가 이제 겨우 스무 살입니다. 앞으로 게이머 생활을 할 날이 더 많이 남아 있고, 3회 우승은 4회 우승을 위한 포석으로 생각할 뿐입니다."
 이게 과연 스무 살의 나이에 한 분야의 정점에 선 청년이 할 수 있는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메이저 3회 우승, 1회 준우승, 메이저급 비공식 대회(곰클S1, 특별전) 우승, 혼자서 일구어 낸 팀리그 준우승 등 그의 업적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굉장한데, 아직도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으면서 "부족하다" 고 말할 수 있다니.

 나는 원래 리쌍 중에서는 영호 > 제동, 택뱅 중에서는 병구 > 택용의 순으로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E스포츠의 최강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솔직히 이제동과 김택용을 꼽는 것이 맞다는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도 하다. 박카스 2009 결승전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아니, 광안리 무대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세상에 대체 어떤 상황에서 정규 세트에서 1패, 2패를 기록한 선수를 두고 "그래도 XX라면..." 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단순히 팬들이 염원이 아니라, 양사의 여섯 중계진이 모두 그렇게 말을 하고 시청자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물론 이제동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다승 경쟁을 했던 세 선수는 모두 그런 위치에 섰을 경우 같은 서킹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원맨팀 당시 이윤열이 싫었고, 팬택이 싫었다. 송호창 감독을 '그' 악칭으로 부르며 욕을 해보기도 했고, 소울과의 결승에서는 한승엽, 박상익의 눈물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처럼, 그를 악역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작년에 이윤열이 허영무와의 경기를 가졌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응원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송병구와 삼성 칸 선수들을 좋아하지만, 하얗게 불타는 모습이 전해지는 이윤열의 경기는 그만큼 전해져 오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간혹 프로리그에 출전해서 현역 젊은 선수들과 경기를 할 때도, 아슬아슬한 역전승을 해 낼 때(vs 임진묵 등)면, 예전과 같은 역겨움이 아니라 감동이 느껴지곤 한다.

 나는 이제동이 싫다. 빌드가 갈렸는데도 억지로 이겨버리는 폭군 같은 모습이 싫고, 노력을 부정하는 천재의 현존을 증명하는 것 같은 센스있는 플레이에 신물이 난다. 그 하나만을 믿고 두 번의 준우승을 차지한 화승도 싫고, 그들을 현재 스타판의 악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그에게 감사한다. 쓰러뜨려야 할 마왕이 있을 때 용사들이 필요한 것처럼, 그가 보여주는 멘탈과 실력은 분명히 스타판의 한 축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충분히 몰락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그것을 딛고 올라서 골든 마우스를 차지한 이제동 선수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는 앞으로도 내가 흥미있게 스타를 지켜볼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 주었으므로. 또한, 당연한 얘기지만, 최단기간에 골든 마우스를 획득한 이제동 선수를 축하해야겠지.  

by Laphyr | 2009/08/22 21:43 | = 게임 | 트랙백 | 덧글(14)

위너스리그 결승 CJ vs 화승 감상

 
 
 결과 네타 방지용. 절대 웃음 소리가 아닙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정말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어제의 대 조일장전 3:0의 포스를 그대로 보여주며 무서운 기세로 내달리던 이제동을, 변형태도 마재윤도 아닌 조병세가!! 정규 리그에서도 적절한 훼이크 벙커 러쉬로 승리를 거뒀던 그 조병세가!! 7전 4선승제 팀리그에서 단 한번 나왔었고 포스트시즌에서는 당연히 나오지 않았던 역올킬!! 을 달성하면서 CJ에게 극적인 우승을 안겨줬습니다.

 해설진도 중간중간 솔직한 마음을 늘어놓았지만, 저도 솔직히 김정우 - 변형태 - 마재윤이 차례로 꺾일 때는 정말 이걸로 끝이구나- 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한 수 앞을 내다보는 플레이로 김정우를 제압, 앞마당 먹은 업마린 체제 테란을 온리 뮤탈로 제압, 정보 격차를 이용한 저글링 러쉬로 마재윤을 제압하는 등 오늘의 플레이 역시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포스트시즌 7연승과 최근 10경기 저그전 100% 테란전 90% 을 이어가는 등 포스를 뽐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늘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습니다. 정규 시즌에서만 보면 갑툭튀한 선수인 조병세 선수에게 덜미가 잡힌 것입니다. 이 선수는 리틀 버서커라고 불릴 정도로 공격성이 강한 테란인데, 오늘도 그런 모습이 굉장한 성과를 안겨줬던 것 같습니다. 이제동 선수의 5드론을 막고 생마린으로 공격 가는 판단, 상대의 생더블넥을 보고 치즈러쉬를 가는 판단, 병력이 충분치 못함에도 찌르면서 팀을 만들어 일꾼을 솎아내는 전술, 불리한 상황에서도 후퇴를 모르고 적의 핵심부를 타격하는 러쉬 등 오늘 조병세의 플레이는 정말 화려했습니다.

 사실 오늘의 결과는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화승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동 원맨팀의 한계, 구성훈의 심리적 압박, 프로토스 카드의 부재. 조병세 선수는 김택용 선수에게 GSL에서 3:0으로 패배를 당했을 만큼 플토전이 조금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노영훈, 임원기는 아니었다는 거죠. 오영종의 입대나 손찬웅의 부상이 굉장히 크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제동이 무섭긴 무섭지만, 평균적으로 강한 팀도 얼마든지 꺾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오늘의 CJ 엔투스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4라운드 이후의 활약도 굉장히 기대가 되네요.

by Laphyr | 2009/03/28 21:25 | = 게임 | 트랙백 | 덧글(2)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