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우리들의커튼콜

[감상] 우리들의 커튼콜, 예나와 여진이의 차이점


 시드노벨 8월 신간인 우리들의 커튼콜은 여고를 무대로 하는 한국적인 느낌의 퇴마 소설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령이라는 소재는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한국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는 없겠습니다만, 작가님의 표현대로 '여고의 진실'이라는 표제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의 진행은 더없이 친숙한 우리나라의 모습이었습니다. 

 1. 배경 설정


 우리나라의 매니아들의 대다수는 일본 컨텐츠에 익숙합니다.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을 봐도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고, ~군, ~양과 같은 호칭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며, 심지어 창작 소설의 배경조차 일본으로 설정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즐겨온 것이 사실입니다. 

 단순히 주인공이 한국인이고, 그들이 사는 마을이 한국에 있는 도시라는 사실이 곧 한국적인 배경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래된 소꿉친구로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동거까지 일삼는 고등학생 커플(마법서와 수학의 정석, 포니테일 대마왕)이라는 설정은 우리가 익숙하게 접해왔던 일본 컨텐츠에서 단골로 등장합니다. 물론 동거를 한다고, 혹은 오래된 소꿉친구가 등장한다고 그것이 곧 일본적이라는 의미가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기존의 매체들이 '만들어온 일본'의 모습에 가깝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커튼콜이 갖고 있는 첫 번째 장점은, 바로 그 배경이 철저하게 한국적이라는 부분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것이 과연 여고의 진실인지 혹은 미화된 모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예나와 친구들이 생활하는 장소와 모습은 익히 접해온 가상의 세계로서가 아닌, 현실적인 모습으로서 친숙한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러브 코미디라는 라노베의 장르가 높은 인기를 끄는 것에 비해 국내 작품들은 어떻게든 '이능'을 끌어오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러브 코미디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이 보여준 배경의 느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예나와 여진(in 망향교회)이의 차이점


 저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예나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캐릭터성에 있어서는 3명의 친구들에 비해서 조금 떨어지는 전형적인 히로인 타입이긴 하지만, 1인칭 서술이라는 특징을 잘 이용하면서 상황 묘사와 전달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능이 소재로 등장하는 라이트 노벨의 주인공은 대부분의 경우 작품 초반부에서 '적응'의 문제를 경험하게 됩니다. 애초에 배경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상황이라면 몰라도, 상당수의 라이느 토벨이 일상 -> 비일상이라는 루트를 공식처럼 사용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 적응의 문제는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전에 제가 감상을 올렸던 <망향교회>에서, 1권의 여주인공인 여진이 갖고 있는 공감의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여진은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을 계속 주장하면서 눈물을 흘리지만,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나머지 독자는 그녀의 불행에 대해서 제대로 공감할 수 없었으며, 결국 그 불행으로 말미암은 갈등의 해결이 이루어지는 결말 부분에 있어서도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다시 한 번 지적하자면 가장 큰 문제는 '여진이 불행하다는 설정'만이 갖추어져 있을뿐, '그녀가 불행하다는 사실'을 납득 시킬만한 장면이 부족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커튼콜>의 예나도 여느 이능 라노베의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게 비일상을 적응해야 한다는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는 '귀신들린', 혹은 '귀신에 홀려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비치는 예나가 겪는 일상에서의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원통한 혼령과 관련되는 연극부 멤버들, 고모와 무당의 이야기도 그대로 진행시키면서, 그와는 별개로 그녀들을 재수없게 생각하고 꺼리는 학생 및 교사의 모습들이 현실적으로 잘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인칭 서술로 이루어지는 감정의 표현은 그러한 적대적인 상황에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여고생의 고민과 슬픔, 두려움 등을 잘 드러내고 있고, 그것이 결국 굿이나 연극으로 이어지는 퇴마 의식을 향한 갈구로 승화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 줍니다.

 결국 현실적인 상황 묘사를 통해 예나의 고통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거기서 독자가 느낄 수 있는 적대적 환경(= 욕하는 학생, 교사, 악한 원혼)에 대한 분노를 잘 이용해서 결말 부분에 이어질 '연극'에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질 수 있도록 구성이 잘 짜여져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3. 우리들의 커튼콜, 연극과 퇴마의식


 인간의 정신세계가 갖고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예로부터 여러가지 설화나 전승을 통해서도 접해볼 수 있었습니다. 부적 태운 물로 병을 치료하는 이야기처럼 황당무계한 것에서부터, 현대의 심리 치료사들이 사용하는 과학적인 심리 요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심리라는 것은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부분을 퇴마라는 소재와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연극, 정확히 말하면 특정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환자를 치료하는 역할극은 심리 치료에서도 가장 자주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역할에 몰입한 환자는 평소에 제대로 쏟아내지 못했던 스트레스를 분출할 수 있고 그것이 곧 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질병의 치료로 이어진다는 것인데, <우리들의 커튼콜>에서 유령에게 사용하고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현실적이고 응용방법이 많은 소재가 자주 쓰이지 않았을까요? 사실 이 부분이 <우리들의 커튼콜>이라는 작품이 갖는 최대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별로 재미가 없거든요. 의료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을 심리 요법으로 치료하는 장면을 접할 경우, 일반인이 가장 먼저 가질 수 있는 느낌은 "저게 뭐야?" 에 가깝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특이한 수단이 아니라 평범한 말과 행동만 했을 뿐인데 환자가 "아, 좀 가슴이 후련해 졌어요." 라고 하거든요. 당사자가 아니면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수단이기에 더더욱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수술로 썩은 부위를 도려낸다면 보는 사람도 잘 납득하겠죠.)

 물론 이 작품에서는 원혼이 풀어내는 사연에 의한, 또 예나가 느끼는 배우로서의 감정 분출을 통해서 어느 정도 감동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위와 같은 치료의 매커니즘을 감안한다면 웃으며 사라지는 유령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죠.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대중적인 흥미, 재미와는 거리가 있는 엔딩이라는 부분일 것 같습니다. 물론 대중적인 흥미 요소를 꼭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작품이 미지근해지는 이유로서 그것의 결여를 이유로 드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Cu-rim님의 일러스트를 통해 표현된 메인 캐릭터 4인방의 매력은 매우 뛰어나고, 연극과 퇴마라는 기본 틀 자체도 참신한만큼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클라이맥스의 아쉬운 점은 등장하는 원혼의 종류에 따라서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예나와 하명준의 관계나 하명준의 정체 등의 태초 떡밥(?)도 잘 남아있는 만큼, 대중적인 흥미를 가미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면 미얄4권에 묻힌 1권보다(...) 큰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by Laphyr | 2008/08/27 17:35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8)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