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신카이마코토

[감상] 언어의 정원 : <사랑(愛)>, 그 이전의 <사랑(孤悲)>이야기

 
 
 영상 : 처음 영화 상영이 시작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아, 이거 신카이 마코토 영화였지." 였습니다. 그만큼 영상미에 있어서는 명불허전인 것 같아요. 실사보다 더욱 부드러운 느낌으로 재구성된 신주쿠 교엔의 연못, 거기에 내리는 빗방울의 영상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영화 속에 중요한 키워드가 비라서 그런지 비가 오는 날의 영상이 굉장히 많이 등장했는데, 장면의 흐름에 따른 바람의 세기 등에 맞물려 세심하게 묘사되는 빗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그 외 이 감독의 영화에서는 항상 볼 수 있는 것처럼 세밀한 역의 묘사라든가 (...) 거리, 햇살 등의 영상도 여러모로 아름다웠습니다.

 

 스토리 : 이 감독의 영화는 연애요소를 갖고 있으면서도 매듭을 제대로 짓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아니면 부정적인 방향이거나..), 이 작품 같은 경우에는 좀 다른 인상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15살의 꿈 있는 소년과 28살의 여린 여성의 풋풋한 사랑의 이야기로 보여질 수 있고, 이 경우라면 마찬가지로 제대로 매듭 지어지지 못한 연애 이야기가 맞겠죠. 그렇지만, 남모르는 아픔을 품고 있었던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그것을 극복해 가는 이야기로 본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아키즈키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구두 디자이너에 대한 꿈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고민을 안고 있었고, 유키노는 학생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트러블로 미각을 잃을 정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성과의 만남을 바라고 있었다기보다는.. 자신에 대해 털어놓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과의 인연을 바라고 있었다고 보는 게 옳겠죠. 그런 감정은 자칫 사랑으로 오해하게 되기 쉽고, 아키즈키는 실제로 그렇게 오해했으며, 유키노는 이성적으로는 이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끝까지 참아내진 못했지만요.

 이 영화의 선전문구와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 그 이전의 <사랑> 이야기 ㅡ
 <愛>より昔、<孤悲>のものがたりー

 여기서 표현된 <사랑(愛)>이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랑 - 사람에 대한, 혹은 사물이나 신념에 대한 - 을 뜻하는 단어이며, 여기서는 남녀간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랑(孤悲)>이란 <恋>의 옛 표현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사용이 되는 단어입니다. 즉, 저 포스터의 문구 자체가, 이 작품에서의 아키즈키와 유키노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愛)은 아니지만, 사랑(恋)의 이야기라는 겁니다.



 캐릭터 : 아키즈키는 요즘 시대에 살아가는 소년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성실하고 착한 아이입니다. 힘든 상황에 놓여있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무엇보다 자신이 이루어야 할 꿈을 확실히 인지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죠. 단, 그것을 확실히 하기 위한 결단이 부족했고, 비 오는 날마다 보여주던 방황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유키노는 한 번 큰 실패와 좌절을 겪은 상태이며, 그 때문에 자신을 잃고 있었죠.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본다면 풋풋한 소년과 아픔을 가진 누님의 러브 스토리가 될 수도 있겠는데, 보시다시피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두 사람은 요철처럼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키즈키에게는 계기가 부족했고, 그것이 유키노와의 만남을 통해서 채워져 갑니다. 그녀를 위한 구두를 만들기 시작함으로써, 그 안의 꿈이 방향성을 갖게 된 거죠. 아이자와 일행에게 대든 것 또한 유키노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에피소드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꿈 외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던 그가 다른 것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반대로 유키노는 제자들에게 모함을 당하는 등의 사건으로 교사로서의 자신을 잃지만, 아키즈키와 함께 한 시간, 그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키워나간 시간을 통해서 재기에 대한 용기를 얻게 된 것이죠. (에필로그에서 그 결과가 드러났고요.) 



 많은 감상들이 "커플 브레이커 신카이 마코토" 의 명성(?)에 주목한 나머지 이 작품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접근 되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더 차갑게 정리하긴 했는데 (...), 감독의 의도야 어쨌든, 적어도 아키즈키 군 자신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을 느꼈었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 작품은 사귀니, 사귀지 않느니 하는 쪽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 무엇이며, 그런 관계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감상하면 좋을 듯 하고, 적어도 이런 의미를 담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없이 브레이킹을 일삼던 전작들에 비하면 한 걸음 발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by Laphyr | 2013/08/16 02:35 | = 애니메이션잡담 | 트랙백 | 덧글(4)

[감상] 별을 쫓는 아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인 <별을 쫓는 아이>를 보고 왔습니다. 용산 CGV에서 자막판으로 봤는데, 주말이라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자리가 차는 등 관람객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자주 등장하는 애들 줄줄 끌고 와서 보는, 그런 가족 형태의 관람객이 많은 것이 아니라, 젊은 층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아래 감상은 줄거리 요약이나 누설 등은 생각하지 않고, 느낀 부분만을 간략히 정리.


 작품은 평범한 모범생 소녀 아스나가, 아가르타라고 하는 신비한 세계에서 찾아온 슌이라는 소년이 만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케찰코아틀'의 습격으로 인해 갑작스런 비일상에 직면한 아스나에게 있어서, 슌의 존재는 동경하던 왕자님과도 같이 느껴졌겠지요. 아버지가 없는 환경 + 반에서 1등이라는 배경과 함께, 그녀가 비밀기지를 만들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 온 것은 그만큼 비일상에 대한 동경이 컸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야기가 이 만남을 통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이별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는 아스나와 모리사키 두 사람의 주인공이 존재하고, 결국은 이들의 성장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상실의 아픔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차이점은 그 시기에 있었습니다. 모리사키 선생님의 성장통은 바로 그 상실 자체였으며, 아스나의 성장통은 상실을 계기로 하여 평소부터 꿈 꿔 왔던 비일상에 대한 동경의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감독에서는 커플이 잘 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전례가 있긴 하지만, 제 생각에 이 작품에서는 연애 코드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 아스나에게 있어서 슌은 소녀심을 두근거리게 만든 존재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범생'으로 살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존재이기도 합니다. 슌에 대한 애정이 아무리 깊었다고 한들, 평범한 여자애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을까요. 모리사키도 여행 중간에 "너는 이 여행이 즐거운 것 같구나" 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아스나에게 있어서 아가르타 탐험은 많은 경험을 통한 일종의 자아 찾기가 되었던 셈입니다. 그녀가 처한 상황 및 빠릿빠릿하게 살아 왔던 모습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내세울 수 있는 진정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은 모리사키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라고하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행동했고, 끝까지 그것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는 '바깥 세상의 인간' 의 용기를 보여줍니다. 아가르타의 사람들이 자연의 섭리에 몸을 지나치게 맡기고, 죽음마저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는 정반대죠. 그는 죽음마저도 돌파하여야 할 목표로 삼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결국에는 목적을 이루어 내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스나와 함께 한 여행 과정에서 그도 많은 것을 느꼈고, 또 바뀌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10년 동안 아내를 살리기 위한 일념으로만 살아왔던 남자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갈 각오를 하였다는 것은, 성장이라는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겠죠...... 근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좀 보여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신 역시 아스나 일행과 얽히면서 아가르타의 삶의 방식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성장을 이룩합니다. 아스나와의 연애 요소는 찾아보기 쉽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할 수 있고(이는 아가르타의 방식과는 정반대죠), 또 소중한 누군가의 죽음을 막기 위해 "살아있는 자가 더 소중하다"는 일갈을 토해낼 수 있게 된 그의 존재는, 앞으로의 아가르타에 있어서 매우 큰 영향력을 갖게 되겠죠. 모리사키 혼자만 아가르타에 남았다면 아무런 상징이 되지 않겠지만, 두 사람이 함께 돌아갔다는 것은 그러한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소 불만스러웠던 것은 너무 이별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주연급 캐릭터들은 모두 이별로 인한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위의 세 명은 물론이고, 아스나의 엄마, 마나, 마나의 할아버지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캐릭터들을 쓰면서도 다시 이별을 통한 성장이라는 클리셰를 사용하였다는 것이 좀 안타까웠죠. 적절한 수준에서 애가 끓도록 만들어 줘야 되는데. 

 특히 미미의 건이 그랬습니다. 어차피 미미와 연관이 있는 케찰코아틀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등장할 것이었다면, 굳이 거기서 한 번의 이별을 더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아가르타의 낡은 생활관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장을 하면서, 정작 아가르타 식의 윤회를 통해 결정적인 도움을 얻었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미가 사실은 거대한 케찰코아틀의 일부였고, 그 케찰코아틀이 도와주러 등장했다거나 해도 별로 문제는 없었지 않을까요.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두 가지의 이야기를 동시에 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시원하지 못한 결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스나 쪽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가르타 이야기 쪽은 위의 미미 건 때문에 아리송 할 뿐이네요.


 @이족에게 유괴되었을 때, 두다다다다 달려오는 마나의 모습은 정말 귀여웠습니다. 정말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이후로도 아스나를 졸졸 따르며 아~아~ 아아~ 하고 웅얼거리는 모습이 너무너무 귀엽더군요. 목소리도 정말 귀여웠는데, 알고 보니 히다카 리나였네요. 역시 귀엽다...

 @주역들은 관심이 없어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단역 중에서 두 캐릭터는 목소리 구분에 성공. 신이 두 번째 사명을 받고 마을을 떠날 때, 붙잡는 마을 처녀A 역할이 이토 카나에. 다소곳한 캐릭터지만, 그래도 목소리에 힘이 들어있는 특색은 살짝 살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아스나 엄마 역할의 오리카사 후미코. 뭐 예전에도 아줌마 역할을 안 하신 건 아니지만.. 감상은.. 역시 세월이 많이 흘렀다 ㅜㅡ..

 

by Laphyr | 2011/08/27 23:03 | = 애니메이션잡담 | 트랙백 | 덧글(1)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