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시이나유우

[감상] 수국 피는 계절에 우리는 감응한다



작가 : 시모 후미히코
일러스트 : 시이나 유우
레이블 : 패미통 문고 / 소미미디어

 '한 폭의 수채화와 같이 풋풋하고 아름다운 청춘 러브 스토리'라는 요약이 전혀 아깝지 않을만한,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흥미를 돋우는 적절한 소재, 베테랑이 그려내는 이야기 안에서 살아 숨쉬는 매력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클라이막스의 감동까지, 단권이지만 단권이 갖추어야 할 모든 장점은 다 갖추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네요.


 - 서브 컬쳐 다운 소재 : '텔레파시'

 이야기는 주인공 슌이 수학여행지인 도쿄에서, 7년여간 마음에 두고 있었던 소녀와 첫 만남을 갖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정체는 첫사랑이나 짝사랑이 아닌 '한정 텔레파시'라는 특이한 현상으로, 누군지 모를 소녀의 오감이 텔레파시를 통해 슌에게 불규칙하게 전해진다는 상황이었죠. 그 때문에 슌은 누군지 모를 그녀, '마유코'에게 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었고, 기요미즈데라에서 운명처럼 그녀를 만났을 때는 그야말로 가슴이 철렁 했을 겁니다.

 풋풋한 남녀 고등학생이 무언가의 사건을 계기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흔하디 흔합니다. 거기에서 이 작품은 '텔레파시' 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져왔고, 이는 슌은 물론 독자로 하여금 마유코의 비밀에 궁금증을 갖게 하는 강력한 흡입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연애감정만으로 풀어나가지 않고, 비일상적인 소재를 접목시켜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펼쳐 나가는 전개는 그야말로 베테랑다운 연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비일상 소재는 단순히 두 사람의 만남의 계기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이야기 전개에서도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상 소재만으로 풀어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청춘 소설보다 긴장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너무 과도하게 이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절제의 미학을 잘 보여주었다는 느낌입니다.


 - 특색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

 다른 무엇보다 라이트노벨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이 캐릭터죠. 그런 면에서도 이 작품은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슌은 처음에는 매우 내성적이고 조용하며,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묘사되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바뀌어 가는 그의 모습에는 저절로 박수를 치며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히로인인 마유코는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주로 슌과 친구들의 시점에서 '가냘프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소녀'라는 이미지를 예쁘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원문은 모르겠지만 '호리호리해' 라는 표현은 마유코의 이미지를 나타내기에 정말 적절한 단어였다고 생각이 되네요.

 슌의 연애(?)를 응원하는 두 친구, 나카지마와 하라다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였습니다. 나카지마의 경우 라노베에서 자주 등장하는 '친한 친구A'와 같은 포지션입니다만, 평소에 말수가 적고 숫기가 없는 슌을 챙겨주는 굉장히 좋은 녀석이라는 것을 여러가지 묘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이는 대부분의 라노베에서 친구A라는 포지션은 단순히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한 네타 캐릭터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또한, 슌의 연애를 응원하는 와중에 그에게 반해버린 또 한 명의 사랑의 주인공, 하라다라는 소녀 역시 매우 사랑스럽습니다. 시원시원하고 거리낌 없는 성격으로 슌을 응원해 주지만, 그의 앞에서는 또 수줍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입체감 넘치는 모습은, 이 작품의 볼륨감을 충분히 더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하라다의 지인인 무토 선배, 마유코의 친척오빠인 사토미 선생님 등도 단순한 장치로써가 아닌, 캐릭터로써의 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친구들을 포함한 후일담을 보고 싶을 정도로요.


 - 감동의 클라이막스

 제가 이 감정을 감상으로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정점을 찍은 것은,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이었습니다. 슌과 마유코, 두 사람이 절박한 순간이 되어서 마음이 통하고, 서로를 이해해가는 모습의 연출에는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탄했습니다. 흙투성이가 되면서도 빗줄기 속을 뛰어가는 슌의 모습, 흐드러지게 핀 파란색 수국꽃밭을 배경으로 눈을 감고 애타게 슌을 부르는 마유코의 모습, 그리고 두 사람의 생각이 하나로 이어지는 '그 장면'은, 자연스럽게 머리속에서 연상이 되면서 감동을 느끼게 되더군요. 텍스트도 좋았고, 일러스트도 좋았고, 편집도 정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은 애니화 되면 정말 매력적으로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같은 사람에 의하여 영상화 된다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겠죠. 작품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충분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고, 작품을 읽으신 분들은 아마 제 감상을 읽으면서 또 한 번 그 장면을 꺼내서 읽어보고 싶어지지 않으실까 합니다.


 오랜만에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라노베를 읽은 것 같습니다. 멀게는 노무라 미즈키의 <문학소녀 시리즈>, 가깝게는 모리하시 빙고의 <시노노메 유우코 시리즈>와 같은 작품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망설임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울 수 있는 양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애니화 성우희망 망상
- 애니화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희망하는 성우들도 간단히 망상.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

1. 미나카미 슌 - 마츠오카 요시츠구
: 요즘 정말 잘 나가는 츠구츠구 군은 한껏 겉멋 든 소년의 연기도 잘 하지만, 아무래도 노력하는 소년의 연기가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본인 스스로도 정말 숫기가 없다는 점도 포함해서, 미나카미 군의 모습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또 '할 때는 하는' 소년의 모습을 연기하기에도 제격이 아닐까 싶네요.

2. 사토미 마유코 - 아마미야 소라
: 아마미야 소라는 아직 신인급이라 연기력이 아주 뛰어나지는 못하지만, 비교적 다양한 연기폭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지켜주고 싶은' 느낌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하고요. 마유코라는 캐릭터의 성격, 맑고 호리호리한 이미지 등을 고려하면, 텐쨩의 목소리가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3. 하라다 미와 - 토마츠 하루카
: 어느 역할을 하나 평타 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토맛입니다만, 사실 이 하라다라는 캐릭터는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어울립니다. 시원시원한 성격, 수다스럽기도 하지만 남을 잘 챙겨주는 마음씨, 주인공을 좋아하지만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서브 히로인(...)이라는 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릴 것 같아요.

4. 나카지마 미노루 - 호소야 요시마사
: 위에서도 이야기 한 것처럼 나카지마는 친구A의 포지션이면서, 슌을 지켜주는 '형' 같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슌의 첫사랑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풀이 죽었을 때 응원해 주는 것도 그렇지만, 초반부 묘사를 보면 '슌이 혼자 있을 때 언제나 말을 걸어준다'는 설명도 있었거든요. 그런 듬직한 형 같은 친구의 역할에는 역시 호소야 씨만한 분이 없을 것 같습니다.


by Laphyr | 2015/07/05 17:08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7)

나는 라이트노벨이 좋다 - 「사쿠라다 리셋」



작가 : 코노 유타카
일러스트 : 시이나 유우
레이블 : 카도카와 스니커 문고 / NT노벨


 라이트노벨이 좋다고 말한다면, 도리어 반문을 들을 수 있다. 그럼 라이트노벨은 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로 시간을 허비했고, 또 허비하고 있다. 소위 '이 쪽'문화에 입문하는 병아리들이 항상 비슷한 화제를 커뮤니티에 던질 때마다 이제는 웃음이 나올 정도랄까. 

 축구가 뭔데? 잔디 구장에서 11명의 선수가 공을 차며 골을 넣는 것이 축구의 전부인가? 야구는 또 뭐지? 공을 치고 달려 다시 홈으로 되돌아 오면 그만인 게임인가. 그렇다면 장르문학은 또 뭐고, 판타지 소설과 라이트노벨은 뭐가 다르단 말이지? 이걸 고민하는 것은 정말 쓸데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축구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로스 타임에 극적인 결승골을 넣고 흘리는 만년 교체 선수의 눈물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나? 야구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십 수년간 몸 담았던 그라운드를 떠나는 베테랑 선수의 쓸쓸한 어깨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결국 마찬가지다. 라이트노벨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라이트노벨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을 느낀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아니, 그게 바로 라이트노벨이다. 코노 유타카의 「사쿠라다 리셋」은 그런 매력을 너무 감미롭게 전달해 주고 있다.



 - 사쿠라다, 이능(異能)의 마을

「사쿠라다 리셋」은 각종 이능이 등장하는 '사쿠라다'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마을의 설정은 매우 흥미롭고 무한하여, 파고 들 수 만 있다면 정말 큰 세계관을 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을 3일분만큼 '리셋'시킬 수 있는 능력, 만진 것은 뭐든 지워버릴 수 있는 능력, 미래를 아는 능력, 고양이와 생각을 공유하는 능력 등, 사쿠라다의 가능성은 무한에 가깝다.

 그러나 이렇게 지극히 라노베스러운 배경은 어디까지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이능으로 대결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거창한 비밀을 파헤치려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 작품의 라노베스러움의 절정이 있다.


- 케이, 소마, 그리고 하루키

 '기억을 유지하는 능력'을 지닌 케이는, '세상을 3일분만큼 리셋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하루키와 함께 다양한 사건들을 맞닥뜨리며 해결해 나간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에는, '미래시'의 능력을 지닌 소마 스미레라는 소녀의 역할이 존재한다. 무감각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한 케이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진행되지만, 결국 이 이야기에 중심에 있는 것은 한 소년과 두 소녀다.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사쿠라다에 들어온 케이가, 스스로를 속여가면서까지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하루키 미소라라는 감정 없는 소녀다. 또한, 그들을 만나게 해 주고 2년 동안 함께 있을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한 것이 소마 스미레. 리셋, 미래시, 기억유지 - 이와 같은 강력한 능력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핵심은 매우 간단하다.


 소마는 케이를 좋아한다.

 케이는 하루키에게 한 눈에 반했다.

 하루키는 점점 케이를 좋아하게 된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지닌 소녀들의 삼각관계, 그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본질이다. 시스템? 관리국? 능력? 핵심으로 보이는 것 같은 설정들은, 사실은 핵심이 아닌 것이다.


- 뭐가 라노베스러움인가

 그냥 연애 요소만 넣으면 라노베스러움인가?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 뿐이고, 어떤 재미를 즐기든 그건 자유 아닌가? 

 물론 즐기는 방식이야 사람 나름이다. 이 작품은 충분히 머리 싸매며 읽기에도 적합하고, 또 설정 놀음을 하기에도 재미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케이 - 소마 - 하루키 세 사람의 이야기에 주목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렇게 감상을 하면서 내가 바라던 즐거움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루키는 로봇처럼 감정이 없는 소녀였다. 그에 반해 소마는 매우 활달하고 거짓말처럼 명랑한 소녀. 이 두 사람은 결과적으로 같은 소년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 방향과 진도는 정반대에 가까웠다. 미래를 알고, 결말을 알고 있는 소마는, 어떻게든 케이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케이의 앞에 서 있는 그녀는 매우 강하지만, 아무도 없는 낡은 호텔방에서 혼자 잠들 때의 묘사는 소마가 얼마나 가녀린, '사랑에 빠진 소녀'에 불과한지 잘 알 수 있게 해 준다.

 반면에 항상 곁에 있다는 베스트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하루키의 이야기는 좀 더 솔직하다. 마치 아기 같이, 그녀는 하나씩 하나씩 삶에 필요한 감정을 습득해간다. 케이를 위해서 도시락을 싸 주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기뻐하나, 케이가 소마에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고는 화도 낼 수 있도록 변해가는, '사랑을 배우는 소녀'의 모습. 소마가 자유롭고 자극적인 매력을 자랑한다면, 하루키는 지켜주며 챙겨주고 싶은 캐릭터일 것이다.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이 <카도카와 스니커>문고에서 나오지 않은 작품이라면, 라이트노벨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노골적으로' 이 소녀들의 매력을 전달해 줄 수 있었을까? 5권 334페이지에서 나왔던 것 같은, 숨막힐 듯한 두 소녀의 대립 장면 -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야말로, 「사쿠라다 리셋」의 근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 를 이만큼 표현해 낼 수 있었을까. 

 이 '노골적'은 당연히 요즘 유행하는 가볍고 값싼 러브 코미디 류의 '그것'과는 굉장히 다른 스펙트럼을 지닌다. 요즘의 라노베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이게 뭐야? 겨우?'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정도의 '노골적'이야말로,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라노베스러움'의 근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홀라당 벗기고, 10페이지만 지나면 남자 주인공에게 푹 빠지고, 그런 노골적과는 다르다는 것). 

 판매량은 정말 안습이고, 국내에서 이 작품을 즐겁게 읽는 독자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은 라노베스러움을 보여주는 데 있어 분명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가볍기만 하고 일러스트로만 사람을 낚는 작품들이 넘쳐나는 시기에, 판매량이라는 현실에 밀려 새로운 작품들도 그 트렌드를 따라가는 시기에, 이와 같은 작품을 선사해 주고 있는 작가와, 국내에 들여오고 있는 레이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by Laphyr | 2012/01/08 20:16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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