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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의 향수

 공군 vs KTF 戰
 3경기, 서지훈 vs 고강민 in 황혼의 그림자

 경기력 그 자체에만 미쳐 있는 일부의 골수 스덕들은 오늘 경기를 보고 OME라고 인상을 찌푸리며 까댑니다. 너무나 유리했던 경기를 잃었다면서 고강민 선수에게 비난을 퍼붓고요. 그렇지만 스타크래프트라는 E스포츠를 즐겨온 팬의 입장에서는 바로 이런 모습을 기대하기 위해서 계속 시청을 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투혼이 넘치는 경기였습니다.

 얼마 전 스타리그 36강에서 바이오닉 컨트롤로 유명했던 한동욱 선수가 어설픈 발리오닉을 구사하다가 한상봉 선수에게 완전히 털리는 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공군 선수들에게 부족한 것은 '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영호, 정명훈, 이재호 등 발리오닉을 잘 사용하는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 칼 같은 타이밍에 나오는 발키리 + 터렛이 뮤탈을 막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한동욱 선수의 발키리와 터렛은 그 실전에서의 타이밍이 너무나 미흡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경기에서 서지훈 선수는 유행을 따라가는 발리오닉이 아닌, 정통 원배럭더블 바이오닉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초반 타이밍을 놓치고 터렛 건설이 약간 늦어서 뮤탈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니, 엊그제 한동욱 선수의 패배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듯 하더군요. 솔직히 1차 진출 병력이 센터에서 뮤탈에게 끊기고, 본진에 모여있던 나머지 병력마저 only 뮤탈에게 잡히는 모습까지 보면서 그냥 경기 끝난 줄 알았습니다. 저그는 무려 4가스 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서지훈 선수는 끝까지 바이오닉 + 탱크 + 배슬 체제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국지전에서 패배를 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대규모 병력이 11시 언덕 지역에서 싸먹히는 등의 전투 패배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솔직히 컨트롤이 나빴다기보다는 저그의 히드라 + 럴커 병력이 너무나 막강했기 때문이었죠. 오히려 전투 병력을 모두 잃은 다음에도 앞마당 지역에 마린 + 탱크의 후속 병력이 끊기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역전의 희망을 이어갔습니다.

 고강민 선수의 결정적인 패착은 늦은 하이브와 디파일러 였습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패착이 아닐 수도 있었습니다. 경기 중반에 한승엽 해설이 말한 것처럼, "오히려 하이브를 가지 않아서 더욱 희망이 없는" 상황, 즉 병력으로 몰아 쳐서 끝낼 수 있는 상황이 분명히 몇 번이나 존재를 했으니까요.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디파일러를 가는 선택이 옳았을 수도 있지만, 그건 결과론적인 분석일 수도 있고 그 상황에서도 드랍 등과 연계한 공격으로 충분히 이득을 볼 수 있었다고 봅니다.

 결국 서지훈 선수의 죽지 않은 마이크로 컨트롤에 의한 소규모 교전에서의 상대적 이득 - 패배는 했지만, 비싼 히+럴 병력을 지속적으로 소모시킨 점 -, 늦었지만 적절한 드랍쉽 견제, 끈질긴 방어가 고강민 선수의 그러한 약점을 치명적 급소로 만들어버린 셈이었죠. 고강민 선수의 경기력이 아쉬웠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서지훈 선수의 집념과 투혼이 저평가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기 자체가 이미 초반에 안 좋은 경기력 vs 보통 경기력으로는 역전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몰렸었으니까요.

 분명히 이 경기가 지난 이제동 vs 이영호 in 러시아워3의 역전승, 같은 날 벌어진 조일장 vs 이재호 in 네오메두사의 역전승에 비하면 경기력 그 자체의 레벨은 떨어졌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외치기라도 하는 듯한 서지훈 이병의 끈질긴 투혼, 기적같은 역전승 자체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by Laphyr | 2009/05/31 16:12 | = 게임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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