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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신의 게임 1권

 
 작가 : 미야자키 슈우
 일러스트 : 나나쿠사
 레이블 : 카도카와 스니커 문고, NT노벨


 1. 변형된 옴니버스식 구성


 커다란 하나의 흐름 속에서, 각각의 작은 이야기를 등장시키면서 완결성과 연속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에피소드를 이어나가는 것은 굉장히 자주 쓰이는 방식입니다. <키노의 여행>이나 <사신의 발라드>, 이번에 발매된 <부상당 골동점>과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인 옴니버스 구성의 라노베라고 볼 수 있으며, 자주 쓰인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성을 갖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위에 예를 든 작품들의 성격을 감안해 보신다면 쉽게 납득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라노베의 특성은, 조금은 다른 옴니버스 형태를 낳고 있습니다. 전에 '하렘물의 원죄' 게시물에도 다룬 적이 있는 것으로, 사건이 아닌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구성이 변하는 형태죠. 주로 히로인이 잔뜩 등장하는 작품에서 자주 쓰이는 방식이지만, 중요 인물이 이미 걷잡을 수 없을만큼 불어난 경우에는 훌륭한 외전의 형태로 작품에 양념을 첨가해주기도 합니다.

 <신의 게임>의 옴니버스 구성은 두 가지가 교묘하게 배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카라와 카노의 '게임'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신과의 '게임'에 어우러지면서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실제로 타카라의 능력을 실마리로 이어지는 각 학생의 이야기는 라노베 식 옴니버스 구성에 굉장히 가까우며, 그것이 최종적으로 신과의 게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구상은 상당히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그렇지만, 신선한 것과 완성도는 별개라는 것이 문제로 다가오죠.


 2. 카노의 존재 - 두 주제의 혼란


 타카라에게 능력을 부여하고, 1권 배경에서 실질적인 '게임 마스터'로 등장하는 존재가 신이 아니라 카노 님이라는 것은 굉장한 넌센스입니다. 이미 가장 큰 범위의 이야기인 것처럼 꾸며놓고, 실제로는 작은 범위의 이야기서부터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의 게임과 신의 게임2는 겹쳐 버리고, 질문을 던지고 싶은 허점을 드러내고 맙니다.

 두 신의 게임, 즉 두 개의 주제가 겹치면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근본적으로 '두 게임이 겹칠 수 있는 이유'에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굉장히 논리적으로 풀어가며 설명하려 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가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구실에 가까웠죠. 

 "카노와의 약속을 이행하다 보면, 신과의 게임도 풀어낼 수 있다." 

 위의 전제 자체가 굉장히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일본어로 표현하자면 "都合の良い" 라는 느낌, 조금 노골적으로는 "잘 끼워맞춘"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소설에 있어서 설득력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아무리 재밌는 이야기가 전개되도 독자가 납득하지 않으면 '별나라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 손에 땀을 쥐고 몰입할 수 있는 작품에 필수적인 요소로 설득력이 작용하기도 하죠. 

 옴니버스 구성의 에피소드들이 바로 등장하는 것은 더욱 치명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위의 설정 자체가 사실 옴니버스 구성을 작가가 쉽게 펼쳐내기 위한 일종의 장치인 셈인데, 그 장치가 설득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본심이 바로 드러나 버린 모양새죠. 즉, 독자 입장에서는 "결국 옴니버스 구성으로 타카라가 학생들을 치유하는 에피소드를 넣고 싶어서 위와 같은 설정을 억지로 만들었구나" 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 완성된 것입니다.

 물론, 충분히 설득력을 느끼신 분들이라면 옴니버스 구성으로의 돌입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들은 아까 말한 것처럼 각각의 매력은 상당했거든요. 그러나, 그러한 구성 자체가 이중적인 모양새가 되어 '신과의 게임'이라는 1권의 가장 큰 주제를 희석시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의 아픈 사정이 이야기로 등장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주제와 큰 연관성이 없는 옴니버스 구성의 단점을 그대로 답습하여 맨 나중에 등장하는 신의 고백에 무게감을 부여하지 못했다는 거죠. 기둥감으로 쓸 나무를 베다가 땔감만 잔뜩 가지고 돌아온 셈이라고나 할까요? 땔감은 분명히 집을 따뜻하게 데우는 데 도움이 되지만, 중요한 기둥을 세우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되죠. 소설에 있어서, 그 기둥이란 다름 아닌 작품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3. 활약한 장소를 잃어버린, 매력적인 캐릭터들에게 애도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평균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고 있는 이유는 캐릭터의 매력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나쿠사 씨의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통해 그려지고 있는 카노 님(아무리 봐도 모모의 코스프레 버젼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만)을 필두로, 주인공 타카라의 예상할 수 없었던 매력과 그를 둘러싼 학생회 임원들의 모습 역시 굉장히 흥미로웠죠. 독립 에피소드의 주인공 격으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대부분 '이야기'에 지지 않고 스스로를 잘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으며, 이는 분명히 작가의 역량이라고 불러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들에게는 제대로 주어진 장소가 없었습니다. '신의 게임'이라고는 해도 그것이 꼭 이들에게만 국한되어 준비된 무대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도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틈틈히, 굉장히 세밀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이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독립 에피소드의 형식을 빌려 약간 깊은 이야기를 펼쳐 냅니다만, 무심코 이만큼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으면 - 하는 상상을 해 버릴 만큼 재미있는 부분이 있었지요. 어쨌거나, 파격적인 초기 설정에 어느 정도 휩쓸려야 하는( : 세계 멸망을 떡밥으로 내 걸었으니, 안 휩쓸리는 것이 이상하겠죠?) 이들의 일상이 충분히 그려질만한 공간이 없었음에도, 최소한도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작가의 기획이었는지, 1권에서 굉장히 무겁게 다가오던 주제는 후속권으로 이어지면서 형태는 같되 훨씬 가볍게 모습을 바꾸어 등장합니다. '세상의 미래가 걸린 신의 게임' 은 분명히 무거운 첫 주제였지만, 이미 그러한 '신의 게임'이 벌어지는 것이 일상적인 무대가 된다면 사정은 달라지죠. 설정에 휩쓸릴 일 없이, 학생회 일행이 충분히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패턴화 과정에서 오는 일정 부분의 식상함은 감수해야겠지만 말이죠.


by Laphyr | 2009/04/19 03:35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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