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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티 크라운 [完]


[모든 것의 시작이자, 지금 보면 결말을 암시하는 4화의 장면]


 예전에 4화 감상에서, 슈우가 이노리의 손을 잡으며 '널 믿어도 될까?' 라는 장면에서부터 정통 보이 밋 걸 스토리가 시작된 것이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13화 이후 한 번 파국을 맞이한 후에도, 슈우가 이노리를 잃은 후에도, 사실 이 생각은 크게 변하진 않았습니다. 19화, 20화 감상을 이야기 할 때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노리라는 소녀를 통해 성장해 가는 소년 슈우의 이야기가 메인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1화, 22화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노리는 가이를 용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슈우를 만나게 해 준 것 때문에라도, 자신은 가이를 용서할 수 있다고. 이건, 제가 완전히 거꾸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 작품의 본질은 슈우와 이노리의 만남, boy meets girl인 동시에, 이노리와 슈우의 만남, girl meets boy이기도 했다는 겁니다.

[어떤 경우에서든, 슈우만은 이노리의 편이었습니다.]


 이노리는 마나의 대용품으로써 만들어진 가짜입니다. 그런 그녀를 보통의 소녀로 대해준 것, 사랑을 알게 해 준 것이 슈우였죠. 슈우 역시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살아가다가 운명의 수레바퀴를 거역하지 못했습니다만, '모두'를 생각해야 하는 슈우보단 오히려 이노리 쪽의 감정이 강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17화 이후 예슈 그리슈도의 강림에 초점을 맞추었고, 저 역시 그랬습니다. 자신 역시 상처 투성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짊어진 왕관을 쓴 아담으로서 모든 슬픔을 자신이 떠 안고 가겠다는 슈우의 결의는 정말 강렬했거든요. 그렇기에 완결의 내용은 당연히, 그런 슈우가 이노리를 구하고, 세계를 구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쪽으로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슈우만을 주인공으로 생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덕택에 슈우가 이노리를 구하지 못하고, 이야기도 매듭 지어지지 않은 어중간한(?) 엔딩은 호평과 악평을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슈우의 시점에서만 이야기를 해석했기 때문이죠.

[단 한 가지 이유, 그것은 슈우와 만나게 해 줬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노리는 어땠을까요. 처음엔 제대로 된 감정도 갖고 있지 않은 그녀였지만, 슈우와 함께 하면서 차츰 '인간'에 대해서 알아갑니다. 그 계기는 가이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밝혀졌지만, 이노리는 21화에서 가이에게 '고맙다'고 얘기할 정도였으니, 그녀가 슈우를 만난 후의 감정이 어떻게 변해갔는지에 대해서는 짐작해 볼 수 있겠죠.

 슈우의 시점에서는 그가 별다른 의지 없이 이노리만 챙기는 병신 (이는 보이드 계급제 시에도 비난이 많았던 부분)이라는 욕을 들었겠으나, 그게 이노리의 시점에서였다면 정반대의 의미가 됩니다. 주변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스스로조차 정체를 알 수 없어 두려워하는 자신을 믿고, 보듬어 줬거든요. 게다가 자신이 한 번 희생하여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줬음에도, 스스로 아픔을 짊어져 가며 자기를 구하러 오겠다는 남자, 그것이 이노리의 입장에서 바라본 슈우의 모습입니다. 반하지 않으면 이상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이상할 겁니다..


[언제까지나 자신과 함께 있어주겠다고 하는 남자를 구한, 바람(祈り)을 이룬 소녀의 미소]


 결국, 22화는 슈우가 이노리를 구하러 가는 장면인 동시에, 이노리가 슈우를 구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전개되는 '여주인공을 통한 구원'은 16세 미소녀 전문 노벨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속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클리셰입니다만, 이미 상업적인 색으로 짙게 물들어 남성성이 우선시 되는 21세기 애니메이션에서 이러한 엔딩을 감상하게 될 것이라곤 생각도 하질 못했어요. 

 즉, 슈우가 이노리를 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노리가 슈우를 구원한 것.

 ...이 되겠죠.
 다 죽지 않아서 아쉽다는 이야기는 두 사람의 바람(祈り)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자극적인 결말만을 바라는 분의 감상일 것이고, 슈우가 이노리를 구하지 못해 아쉽다는 이야기는 남성성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트렌드에 벗어나지 못한 분의 감상일 것이며, 그 외에는.. 음.. 제가 불만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는 글을 읽지 못해 패스하겠습니다.

[새로운 세계의 아담과 이브가 되진 못했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영원히 함께.]
 
 
 각설하고, 이 작품이 매우 간단한 주제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쓸데없이 꼬아, 겉멋을 부리는 형태로 시청자들에게 내놓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덕택에 그 과정에서 제대로 회수되지 않은 서브 캐릭터들의 설정들이 남아있을 수 있겠고, 이 역시 충분히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지요.

 그렇지만 적어도, 이 작품이 무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며, 엔딩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겠다는 식의 비판은 제가 생각하기에, 쉽게 눈에 들어오는 자극적인 전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각 캐릭터들이 장면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서 감상할 필요가 있는 분들일 것 같습니다. 취향을 타는 작품은 맞습니다. 위에서 언급된 주제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비판을 받을 부분은 분명히 많죠. 그렇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 흐름을 탄 비판 같은 것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네요.


 근래 본 작품들 중에서, 이렇게 안타깝고 아름다운 작품은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by Laphyr | 2012/03/26 00:14 | = 애니메이션잡담 | 트랙백 | 덧글(12)

[감상] 길티 크라운 19화

 [왕의 힘을 되찾으러 가는 슈느님의 눈빛]


 지난 화에서 이노리의 희생을 통해 정신을 차린 슈우. 그의 활약이 예견되어 있었던 에피소드라곤 해도, 정말 기대 이상의 멋진 모습을 보여준 최고의 19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슈우. 싸움이라곤 해 본 경험이 없었고, 사람을 죽일 뻔한 작전에 화를 내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착한 소년이었죠. 그런 그가, 17화에서도 잠시 이야기 했었던 것처럼, 수많은 죽음과 배반의 나날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까닭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누군가 주장하는 것처럼 애니가 병신이라서? 

 아니죠. 슈우라는 소년은 처음부터 그런 모습이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아파하고, 또 포기해야 지당한 일들을 겪으면서, 그는 성장한 것입니다.


 보이드 게놈을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모든 죄를 자신이 짊어지기 위한 왕의 길로 다시 한 번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믿지 않고, 또 알아주지 않아도, 그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가이의 힘이 '남의 마음을 흡수하여 마음대로 짓밟는' 성질을 가졌다면, 슈우의 힘은 작중에서 나온 것과 같이 '슬픔과 아픔까지도 스스로가 짊어지는' 정반대의 성질.

 하레가 말했었죠.
 
 "슈우라면, 상냥한 임금님이 될 수 있을 거야."

 아포칼립스의 비극으로 생겨난 악의마저 스스로 품으려고 하는 그런 슈우의 모습은 바로 하레가 바라던 상냥한 임금님의 모습이 아니었을지. 물론 하레라면 그런 슈우를 보듬어 위로해 주려고 하겠지만, 이제 그녀는 이 세상에 없죠..


 요즘 작품들 중에, 이렇게 제대로 된 '성장'을 보여준 것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멋진 에피소드였습니다. 슈우가 성장하고 있고, 작품 자체가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실시간 피드백이라면 무서울 것이고, 만약 모든 것이 처음부터 계획된 각본이었다고 한다면 더욱 무서울 것 같습니다. 

 이제는 과거편입니다. 지금까지 궁금해 해 왔던 비밀들이 밝혀지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되겠죠. 흐름을 끊는 것 같아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만한 내용을 선사해줘도 만족하지 못하는 분들이 조용히 감상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에피소드가 될 것은 분명하겠네요. 22화에서 끝난다는 것이 너무 아쉬울 따름입니다.



 * 세가이 소령, 아니 국장에게 칭찬을 해 주고 싶습니다. 초반 애매한 분위기의 환기, 중후반 이후 자칫 중2중2해질 수 있는 작품에 활기를 주었으며, 19화에서는 '이보다 더 나을 수 없는' 조연의 역할을 확실히 해 줬네요. 작품의 주인공이 슈우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세가이가 없었다면 슈우의 각성이 이만큼 빛날 수 없었을 겁니다. 거기다 충실한 게2 드립까지 잊지 않으면서 장렬히 산화. 정말 멋졌습니다 (...)
  

by Laphyr | 2012/03/04 22:27 | = 애니메이션잡담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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