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 슬레이어> vs <재와 환상의 그림갈>, 고블린 퇴치에 대하여


 *이 글은 <재와 환상의 그림갈> 10권까지, <고블린 슬레이어> 2권까지 읽은 시점에서 작성된 감상글입니다.


 '고블린', 판타지 세계관의 어디에서든 등장하는 가장 약한 이 몬스터를 소재로, 보다 먼저 눈길을 끄는 장면을 선사한 것은 <재와 환상의 그림갈>이었습니다. 2016년 방영된 애니메이션 PV에서 강조된 것처럼, 여러 명의 파티가 고블린 1마리도 제대로 죽이지 못해서 고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로 인해 어둡고 현실적인 세계관인 원작작품에 대해서도 관심을 불러 일으켰었죠. 하루히로 일행은 점점 성장해 나가긴 하지만, 단 한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파티의 리더였던 마나토를 잃는 등, 단지 '고블린'일 뿐인 적에게 엄청난 시련을 겪습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있는 신작, <고블린 슬레이어>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약해서 퇴치임무를 잘 맡으려도 하지 않고, 영웅심에 불타는 신출내기 모험가들에게 맡겨진 고블린 퇴치 임무(퀘스트)에서, 예상한 것과 달리 잔인한 수법으로 죽임과 능욕을 당하는 잔혹한 현실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고블린 퇴치는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소굴에 들어섰던 전사는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고, 자신의 강력한 마법주문만 믿고 있던 여마술사는 치졸한 독 공격에 온 몸의 장기가 파괴되며, 소꿉친구였던 전사의 죽음을 보다못해 앞으로 나섰던 여격투가는 인해전술에 패배 후 동료가 보는 앞에서 능욕을 당하게 되지요.



 여기까지의 내용은, D&D 세계관을 기초로 한 두 작품에서 초보몹으로만 치부되던 '고블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약해서 항상 잡몹, 조연으로만 등장하는 고블린이지만 그 고블린이 너무나 퇴치하기 어려울만큼 약한 시기는 누구에게다 있었다 - , 그리고, 아무리 강력한 용사의 이야기라 한들, 그 약한 몬스터에게 피해를 입고 능욕을 당하는 일반인들을 모두 구원하지는 못했다 -, 라는 것으로, 2010년대 이후 웹 소설이 대세가 되면서 깔리게 되는 '나 짱짱 세(俺TUEEEEE~)' 계열에 대비되는 안티테제 같은 느낌의 주제의식이라는 것이지요.
 다만, 주인공 일행이 다음 단계로 성장해 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으며, 이 차이가 두 작품이 다른 노선을 타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1) <재와 환상의 그림갈> : 마나토의 죽음으로 현실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하루히로를 중심으로 파티의 실력을 연마
 2) <고블린 슬레이어> : 고블린만 전문으로 사냥하여 등급을 높인, '고블린 슬레이어'의 등장


 먼저, <재와 환상의 그림갈>에서는, 마나토의 죽음으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파티 멤버들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과정을 그려 나갑니다. 메리라는 새 동료의 합류가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슬픔을 극복하고 고블린 슬레이어가 되어가는 각 인물들의 성장 드라마가 핵심입니다. 덕택에, 초반에는 너무나 고전을 했던 고블린들에 대하여, 나중에는 너무도 익숙하고 쉽게 처치할 만큼 실력이 상승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블린 슬레이어>의 경우, 위에서 이야기 한 주제의식에만 너무 심취한 나머지,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고 오직 '고블린'에 대해서만 파고들게 됩니다. 고블린만 퇴치하여 3위계급의 모험가가 된 주인공 외, 꽤나 단련된 것처럼 보이는 엘프, 드워프, 리자드맨 모험가가 파티에 합류하게 됩니다만, 이들이 계속 맞닥뜨리고 싸우게 되는 것은 결국 고블린이란 건데요.


 여기서 문제는, 어떻게든 이야기를 진행 시키긴 해야되니 점점 강력한 위협들이 닥쳐와야 하는데, <고블린 슬레이어>의 경우 계속 고블린만 잡는 작품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으니, 다음 위협들도 결국 고블린에 의한 행위가 됩니다. 그렇다고 파티에 멤버가 늘어났다고 해서, 아무런 위협도 없이 이야기를 전개 시키면 재미가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3위계급 전사(탱커)를 포함한 5인의 파티가, 고블린의 계략에 빠져 위험에 빠진다]라는 이야기로 흘러가며, 2권에서는 마신왕을 쓰러뜨렸다는 성녀 역시 비슷한 시기에 고블린에게 유린당한 기억을 가진다는 뭔가 부조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물론 <재와 환상의 그림갈>의 하루히로 일행 역시, 고블린 슬레이어가 된 이후 위기를 겪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고블린보다 강력한 코볼트의 둥지에서 데드스팟과 죽음의 혈투를 벌이기도 하고, 강력한 오크들이 마을을 습격하여 또 다시 많은 동료들이 죽어버리는 비참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그 상황의 하루히로 일행들은 성장해 있는 상태이고, 똑같이 고블린에게 당하는 전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림갈의 세계관에서 매우 강력한 모험가들에게 있어서 고블린이란, 칼도 안 박히고 한 대만 때려도 죽일 수 있는 어린아이 수준에 불과한 몬스터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고블린 슬레이어>에서는, 주제의식의 한계로 인하여 결국 고블린과 싸우는 와중에 위협을 당해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파티원들의 능력치가 하향조정 됩니다. 고블린만 잡아서 3위계급이 되었다는 전사가, 고블린 챔피언과의 1:1 대결에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목장을 습격하려고 하는 100여마리의 고블린을 처치하기 위해서, 수많은 노련한 모험가가 파티를 이뤄야 한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목숨을 잃는 자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모험가가 너무 약하다'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D&D에 대한 연관성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실제 TRPG에서조차 레벨을 올리고 능력치가 강화된 노련한 모험가들에게, 1번째 던전에서나 마주칠 고블린들은 적이 되지 않습니다. 전사의 경우 AC 차이가 많이 나면 적의 명중굴림에서 대부분 빗나감 판정을 받게되고, 타겟1 + 1D4의 대미지 굴림을 하는 마법사가 레벨 10이 넘으면 9칸짜리 범위타겟 + 3D6의 대미지 굴림을 하는 화염구 주문을 쓰기도 하기 때문에, 고블린 따위의 몬스터는 떼로 몰려와도 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감각은, 레벨이 오르면서 성장하여 고블린 따위 너무 쉬운 적이 되어버린 <재와 환상의 그림갈>의 하루히로 일행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 세계관에서는, 아키라나 렌지 같은 인물들이 고블린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드니까요.


 말이 길어졌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고블린 슬레이어>는 <오버로드>와 비슷한 과로, 위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짱짱 센 주인공들이 넘쳐나는 시장상황에서만 나와서 인기를 끌 수 있는 특이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크 판타지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재와 환상의 그림갈>처럼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긴장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고블린에게 죽임이나 능욕을 당하는 다른 모험가의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다크하다, 내가 읽는 소설은 뭔가 유치한 다른 작품과 다르다]라는 중2병적인 만족감을 독자에게 심어주기 딱 좋은 것 같습니다.


 이야기 전개상으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나는데, 결국 <고블린 슬레이어> 5권에서는 약한 고블린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없기 때문에, "학습"하고 "강해진" 고블린이 적으로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뭔가 다른 소설하고는 다르다'라는 느낌을 줄 필요는 없어졌기 때문에, 애초에 주제의식이었던 '강한 적은 상대하지 않고, 고블린만 잡는다'에서는 살짝 엇나가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굳이 이렇게 표현할 거라면, 조금 더 강한 다른 적을 상대하러 간다는 흐름이 타 작품에서는 일반적인 흐름일 테니까요.


 <고블린 슬레이어>,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6권까지 구매를 했고 읽기는 할 것이지만, 이러한 방향으로만 전개가 된다면 마지막까지 재미있게는 읽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by Laphyr | 2018/06/03 15:55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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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포스21 at 2018/06/04 08:09
고블린 슬레이어 세계관에서 고블린 = 오크 더군요. 그래서 변이종이라고 , 고블린 주제에 덩치가 거의 오우거만한 녀석이 나타나서 주인공을 괴롭혔는데 , 그놈이 고블린 챔피언 이었습니다.
Commented by Laphyr at 2018/06/06 14:28
아예 고블린이 우리가 생각하는 고블린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종족이라면 이해가 갑니다.
과연 흑막은 어떠할지 뒷권을 봐야겠습니다.
Commented at 2018/06/0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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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8/06/0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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