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요네자와 호노부, 보틀넥 (2006)


작가 : 요네자와 호노부
출판사 : 문학동네 엘릭시르
출판년도 : 2014년 (한국), 2006년 (일본)
개인평가 (5점 만점) : ★★★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을 처음 접했던 <빙과>와 마찬가지로, 청춘의 한 페이지를 다룬 작품인 보틀넥 입니다. 다루는 방식 자체가 많이 차이가 나지만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륜, 여자친구인 노조미의 죽음 등으로 인해 피폐해진 가정환경에서 살아가는 사가노 료는, 교통사고로 오늘내일 하던 형의 부고소식까지 들려오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노조미가 목숨을 잃었던 장소인 도진보의 절벽으로 향합니다. 거기서 갖은 생각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발을 헛딛고 정신을 잃고 맙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깨어난 곳은 자신이 살고있는 마을의 한 강변.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집으로 향한 료는, 집에서 자기 또래의 여학생과 마주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는 비일상의 영역으로 넘어가, 미스터리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알고보니 료가 도착한 곳은, [자기가 태어나지 않고, 유산되었다고 하는 자신의 누나 '사가노 사키'가 대신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계선]이었던 것. 도입부에 이렇게 엄청난 폭탄을 던져 두었기 때문에, 초반부 스토리를 읽어나가는 재미는 쏠쏠합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사가노 가의 집안사정에 대해서, 료와 사키의 대화를 통해서 알아가게 만드는 기법이 상당히 훌륭합니다. 재미없게 설명해 나가야 할 부분을, 료&사키의 입장에서 서로를 탐문하듯 캐 나가는 대화가 흥미로웠습니다.


 작품의 띠지에 적혀있는 것처럼, 여기서 핵심적인 미스터리 요소는 [틀린그림 찾기], 즉 료 대신 사키가 태어난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 풀어 나가는 부분입니다. 소소하게는 한 가게가 사라지지 않았다거나 하는 영향도 있고, 궁극적으로는 료를 정신적 파멸에 이르게 한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향들을 미쳤는데, 담담하다가도 조금씩 그 진실을 알아가는 주인공의 심경에 공감하게 되더군요. 비참한 세상에 대한 원망, 왜 나는 이렇게 불행한가라고 하는 청소년기의 비관론에 점철된 료의 생각이, 그 마이너스적인 깊이만큼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진실이 야박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르는 게 약이다, 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누나, 사가노 사키라는 캐릭터입니다. 굉장히 활발하고 오지랖이 넓으며, 두뇌회전도 빠른 여고생인데요.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유일하게 그녀가 빈틈(?)을 보인 것은 료를 돌봐주면서 "나 잠깐 누나 같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노조미 역시 그녀를 언니처럼 따르긴 하지만, 다른 세계선이라곤 해도 자기를 대신하는 동생에 대해서는 역시 무언가 끌리는 것이 있었던 걸까요? 작가의 최근 작품들에서 볼 수 있을법 한 명쾌한 추리, 깔끔한 결론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습니다만, 오히려 그런 부족한 면모가 이 캐릭터의 매력을 돋보이게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의 학창시절에 초고를 썼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비슷한 시기, 비슷한 감정들을 갖고 살아가면서 완성시킨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들고, 그만큼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주인공'과 독자와의 거리감을 적게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있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개인적으로 요네자와 호노부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독자는 멀리서 이야기를 감상한다, 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다만 그만큼, 후반부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사키의 활약상 뒤에 결국 진실이 밝혀지고, 크게 벌어질 수 있었던 사건을 방지했다는 정도의 마무리는 있었지만, 그 이후에 료의 감정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너무 크게 열려있는 결말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기-승-승-결, 같은 느낌이랄까요? 클라이막스의 임팩트가 부족하여 초반부터 강하게 이어졌던 주인공과의 공감이 결론에 이르러서는 ? 라는 감정에 이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결국 자신이 있을 자리로 돌아간 료는, 그 다음에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아니, 선택을 할 수 있는 폭이 남아있긴 할까요? 집안상황을 나아지게 한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고, 은행나무는 베어도 그가 좋아했던 우동은 먹을 수 없으며, 후미카를 신고해도 노조미가 옵티미스트가 되어 돌아오진 않을 것인데요. 뭐랄까, 학창시절에 썼다는 향기가 결말까지 적나라하게 묻어난다고 표현하면 실례일까요. 하지만 초반의 폭탄이 워낙 흥미로웠고, 중후반까지의 '틀린그림 찾기' 역시 재미는 있었습니다. 그래도 미스터리 소설, 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던 것이 사실인 것 같아요.
 
  

by Laphyr | 2018/03/18 18:17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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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ionHeart at 2018/04/18 14:18
말씀하신 학창시절에 썼다는 향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네거티브한 생각이 가득 담긴 결말이었다고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말씀하신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현실로 돌아와버렸다는 결말이 불편했네요 ;ㅁ;
Commented by Laphyr at 2018/06/03 12:48
초반 도입부는 훨씬 읽기 좋았었기 때문에, 그만큼 결말이 아쉬웠던 작품이었습니다.
지금은 <왕과 서커스>를 보고 있는데, 오히려 이쪽은 초반 도입은 읽기 어렵지만 뒤로 갈수록 재미가 있어지네요.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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