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22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테리 대상 수상작, <물시계>


작가 : 하츠노 세이

 2016년 1분기, 기운 팔팔 여자아이와 회색빛 뇌세포를 가진 남자아이의 학원 미스테리를 다룬 애니메이션, <하루치카 ~ 하루타와 치카는 청춘이다>가 방송 되었습니다. 마치 요네자와 호노부의 <빙과>를 떠올리게 하는 달콤쌉싸름한 청춘 미스테리 작품이었는데요, 너무 귀여운 치카와 하루타의 쿵짝에 마음을 빼앗겨 애니메이션을 재미있게 감상했었죠. 다 보고 나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짜임새 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았다고 느꼈고, 검색을 통해서 원작 소설과 그 작가, '하츠노 세이'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데뷔작인, 이 작품을 읽게 되었고요.


 이 작품은 어떠한 계기로 인하여 뇌사상태에 빠진 '하즈키'라는 소녀와, 오토바이 폭주족의 간부인 '스바루'라는 소년의 만남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른바 불량소년인 스바루는 폭주족 동료들과 함께 불량스러운 사건을 벌이고 경찰에 쫓기는 와중에 아쿠다라고 하는 말쑥한 신사를 만나게 되고, 그를 따라 폐병원의 한 병실에서 하즈키와 만나게 됩니다. 신기한 것은, 온갖 생명 연장 장치에 몸을 의지하며 누가 봐도 생명의 기운이 없었던 그녀가, 달빛이 드는 시간에만 낡은 앰프를 통하여 말을 할 수 있었다는 동화같은 설정입니다. 이들은 굉장히 강렬한 비일상의 영역에 있었고, 천만엔이라는 돈을 스바루에게 건내면서 한 부탁이라는 것 역시 '자신의 장기를 이식할 만한 사람들을 찾아달라'는 매우 비정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스바루의 슬프고도 기묘한, 장기 이식 대상자를 찾기 위한 이야기가 시작 됩니다.


 얼핏 스바루와 하즈키의 이야기가 메인이 될 것 같은 이야기였지만, 중간 과정은 장기를 이식해야만 하는 사정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군상극으로 진행 됩니다. 다만 그 이야기들이라는 것도 어느 하나 상냥하고 따뜻한 사정은 없고, 장기를 이식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사람들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에 대한 물음에 답이라도 하는 듯, 어렵고 안타까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배다른 여동생을 구하고자, 자신의 꿈마저 버리고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몸부림 치는 여고생의 이야기 (푸른 사파이어 눈),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진 친구를 돌아보며, 그와 같은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고통을 무릅쓰는 프리 라이터의 이야기 (칼자루 루비), 얼마 남지 않은 삶이지만, 어떻게든 상대방을 위해, 그리고 남을 위해 베풀면서 살고자 했던 노부부의 이야기 (납 심장) 를 비롯해, <하루치카>의 진지한 에피소드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을 좀 더 강렬히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각막, 고막, 피부, 뼈, 신장, 간장 등의 장기를 내주어 십수명의 사람들을 살리고 난 후, 스바루와 하즈키의 이야기. 대체 왜 하즈키는 스바루를 선택한 것이며, 또 스바루는 어째서 그렇게 그녀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들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결말은 굉장히 안타깝고 덧없는 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게 됩니다. 달빛 아래에서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앰프라고 하는 환상적인 소재에, 너무 마음을 놓고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작품을 읽으면서 제 자신이 좀 더 다른 결말을 바랬던 걸까요. 지극히 청춘물스러운 그들의 이야기에는, '눈물 흘리며 웃음 짓는다'라는 표현이 감상으로써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루치카> 시리즈의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상상하며 읽은 작품이었지만, 생각보다 깊이있는 현실풍자와 담담한 이야기 전개에 많이 놀랐습니다. 라이트노벨로 치자면 <하느님의 메모장>의 상위 호환이라는 느낌일까요? 이쪽은 라이트노벨이 아닌만큼 그러한 제약도 없었겠지만, 여하튼 <하느님의 메모장>이 성인 대상의 미스테리 문고에서 나온다면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싶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아마 하메모를 보신 분들이라면, 위에서 이야기 한 안타까움이라든지 덧없는 청춘이라든지 하는 이야기가 어떤 코드인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 같아요. 여하튼, <하루치카> 시리즈 덕택에 좋은 작가를 한 명 더 알게 된 것 같아서 기쁩니다. 이후로도 많은 작품을 발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by Laphyr | 2016/06/06 21:51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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