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로그 호라이즌 4 ~ 엇나가는 불편함 ~



 작가 : 토노 마마레
 일러스트 : 하라 카즈히로
 레이블 : 엔터브레인, NT노벨

 지난 번에 1권을 읽은 뒤로, 마음에 들어서 6권까지 모두 구입해서 읽다가 장벽에 부딪혔다. 3~4권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정말 지루하다'는 생각을 해 버리게 된 것이다. 2권까지는 분명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왜 갑자기 이런 느낌을 받게 된 것인가? 라는 생각에, 월초에 써놨던 감상을 다시 읽어보고, 내가 1~2권에서 느꼈던 재미란 어떤 것이었는지를 확인해 봤다.


 "로그호라는 그런 부분 - 게임 자체를 소재로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내용 - 들에 대해 '고민해 보고 싶은' 독자들, 즉, 게임 자체에 대해 이것저것 다루기를 원하는 needs에 부합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 문장은 결국, 내가 로그호라에서 느낀 재미의 핵심은 '게임 자체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것저것 다룬다'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 스스로가 리니지부터 와우를 거쳐 테라, 블소까지 재미있게 플레이 한 골수 온라인 게이머이기 때문이기에, 소아온처럼 배경은 게임이나 실제로는 게임적 재미를 느낄 수 없는 작품에 비해 흥미를 느꼈던 것이다.

 게임 속 세계에 들어가면 음식은 어떻게 될까? NPC는 어떤 존재가 되는거지? 게임 속 캐릭터가 된다고 바로바로 스킬들을 사용할 수 있을까? 게임이라는 특성을 활용한 악의적인 행동들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등등, 1~2권에서는 궁금해 할 수 있는 소재들에 대해서 다양하게 다뤄주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실질적 위협' 과 '게임적 재미'의 관계다.



 1. 실질적 위협

 여기서 이야기하는 '실질적 위협' 이란, 소아온이나 닷핵에서 그랬던 것처럼 게임에서의 죽음이 곧 현실에서의 사망에 이른다는 1차원적인 이야기와는 약간 다르다. 그것은 위협이 아닌 설정이고, 이미 작품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성립되고 들어가는 내용이다. 일반적인 판타지 작품에서는 죽음은 당연히 실재하는 것이며, '죽으면 죽는 세계' 라는 것이 '실질적 위협' 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로그호라의 세계관에서도 90레벨이라고 원하는 전투력을 모두 발휘하지는 못한다는 설정은 존재하며, 일부의 기억을 잃는다는 패널티는 분명 존재하고 있다.

 실질적 위협이란 작품 내에서 인물들이 행동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되는 요소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닷핵에서는 로그아웃을 할 수 없는 츠카사의 사정, The World를 위해 아우라를 구해내야 하는 상황이 실질적 위협으로 작용했고, 소아온에서는 카야바의 흉계 때문에 클리어에 내몰린다거나 오베론에 의해 납치된 아스나를 구해야 한다는 원인이 있었다.

 로그호라에서도 1~2권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대격변에 휘말린 세계 자체가 실질적 위협이었고, 탐욕적인 인간관계 때문에 궁지에 몰린 세라라, 미노리, 토우야를 구출해야 하는 상황 역시 충분한 원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3~4권의 핵심이 되는 소재는 "고블린 왕의 귀환" 이라는 월드 이벤트인데, 이것은 전혀 실질적 위협으로 작용을 하질 못했다. 그 이유는 다음에서 이야기 할, 이 작품의 정체성 중 하나이기도 한 '게임적 재미'와 관련된 문제다.



 2. 게임적 재미

 전에도 이야기 한 것처럼, 로그호라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게임적인 요소를 잘 다뤄주고 있다. 단순히 주인공의 캐릭터를 만들어 내기위한 설정이 아니고, 마치 진짜 <엘더테일>이라는 게임이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좋은 착각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각 직업별로 치밀한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고, 스킬 쿨타임이라는 개념도 현실적으로 적용했으며, 어그로나 단기, 장기전투의 흐름, 레이드의 지휘 등, 협동성을 갖춰 플레이 해야 하는 온라인 게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소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건 장점이다.

 그런데, "고블린 왕의 귀환" 이라는 월드 이벤트는 어떠한가? 이 이벤트는 설정상으로 월드 이벤트이지만, 적정 레벨은 30~40레벨 정도의 플레이어로 설정이 되어 있는, 소위 '먹을 템이 없어 만랩들은 버리는' 이벤트다. WOW로 치자면 얼음왕관 레이드가 376랩 템을 주는 상황에서 등장한 360랩 템을 주는 할로윈 이벤트이며, 블소로 치자면 공격력 260 무기가 최고인 상황에서 공격력 200 무기를 주는 추석이벤트와 같이, 어중간한 이벤트라는 것이다. 당연히 만랩들은 위 이벤트를 아주 쉽게 클리어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유는 아주 간단한데, 시간을 들일 이유 =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로그호라의 "고블린 왕의 귀환" 이벤트도 마찬가지다. 본문에서도 아키바 거리의 모험자의 일부(10%)만 나서도 고블린 1만 마리 정도는 쉽게 사냥할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는 결국 이벤트 자체가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고, 아이템을 얻을 이유가 적어진 상황에서는 경험치와 전리품을 위한 사냥이라는 구실도 들어맞질 않는다. 대지인들을 지켜야만 하는 이유가 제시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결국 이 이벤트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월드 이벤트인 셈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3~4권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모두 절실함이 없으며 지루한 전개를 띈다.

 원탁회의의 멤버들이 대지인들과 벌이는 연회는 결국 '별로 필요없지만 정보를 얻기 위한 연극'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어차피 모험자들은 야마토 최강의 세력이기 때문에.
 미노리와 이스즈가 분투하는 해변에서의 전투 역시, '별 의미가 없는 묘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어차피 고블린 왕이 깨어나든 말든 전혀 위협이 될 것이 없으며, 어차피 아키바 거리의 10% 전력만 투입해도 승리할 수 있는 싸움이기 때문에. 


 만약 해변캠프 멤버들이 조금 더 절실한 상황에 몰렸다면 어땠을까? 어떠한 이유를 계기로 귀환마법을 쓸 수 없는 존에 들어갔다거나, 고레벨 유저들이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거나. 굳이 "마음만 먹으면 10분 후에 아키바 거리로 귀환을 쓰고, 웃는 얼굴로 해산할 수 있다"와 같은 묘사를 넣을 필요가 있었을가?
 
 만약 고블린 왕의 귀환 이벤트에서, 1만의 고블린 군세를 전멸시키지 못하면, 시스템을 초월하는 강력한 고블린 왕이 몬스터로 등장한다는 설정을 강화했으면 어땠을까? 굳이 "1,000명의 유저가 나서서 10마리씩만 잡으면 되는 간단한 일" 이라고 지속적으로 독자를 안심시켜 줄 필요가 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WOW에서도 힐러(성기사,사제)를 주로 플레이 했기 때문에 파티의 스테이터스를 살피는 플레이는 수년간 경험을 했었지만, 5% 단위로 10초 앞을 예측, 10% 단위로 30초 앞을 예측, 과 같은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는 묘사에는 정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토노 마마레 작가의 작품에서는 '별 것 아닌 상황을 마치 대단한 것처럼 묘사하는' 상황을 많이 찾아볼 수가 있는데 - 예를 들어 마오유우의 극광도 탈환작전 같은.. - 로그호라의 전투연출은 그 정점을 찍는 듯 했다. 

 전투 자체가 재미가 없어도 구실이 있다면 학살이라도 오히려 재밌겠지만 - 1권에서의 PK들과의 싸움이나, 2권에서의 하멜른 길드를 일방적으로 쳐 부술 때의 쾌감과 비교해 보시면.. - 위와 같은 이유로 구실조차 갖추질 못하니, 정말 지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6권까지 다 사 놨으니 안 볼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1~2권에서 느꼈던 두근거림을 다 잃어버린 듯 해서 매우 허탈한 느낌.

by Laphyr | 2013/11/23 23:37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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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waterwolf at 2013/11/23 23:54
고블린 왕의 귀환 이벤트의 경우, 사실 모험자들의 신변안전과는 크게 무관하죠. 그건 시로에의 연설에서도 나옵니다.

문제는, 모험자들은 이세계에서 주변인물에 불과합니다. 시로에의 2권 회의 마지막 대사에서도 나오지만, "모험자는 어디까지나 이 세계의 손님"인겁니다. 실제로 모험자들이 사용하는 서비스, 소비 물품의 기초 재료같은건 전부 대지인들이 공급하고 있죠. 모험자들은 큰 나무의 가지 끝에 핀 화려한 꽃 몇송이고, 대지인들은 나무 가지와 잎사귀인거죠. 고블린 왕의 귀환에서 모험자들은 자기 살길 찾을수 있다지만, 대지인들이 죽어나가는걸 방치했다가는 나무 밑둥부터 썩어들어가게됩니다. 나무가 썩는데 꽃이 살길 바라는건 무리죠.

5권 내용이 대지인과 모험자들의 관계성에 대해서 다시 나오게 되고, 6권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대격변에 대해서 나오게 됩니다.
Commented by Rain at 2013/11/24 00:17
'대지인도 인간이다'라는 이야기는 2권부터 계속 나오고 있고,그런 의미에서라면 미노리 팀의 방어전이 무의미한 건 아니었지요.언제라도 귀환해버릴 수 있으면서도 그들은 대지인을 지키기 위해 아키바의 주력 원정대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준 셈이니.

'게임 자체의 이모저모를 다루는 재미'라면 '중견 레벨용 퀘스트'가 딱히 재미를 저해하는 요소도 아닐 텐데요...
Commented by 지나스 at 2013/11/24 15:18
원작 안 보고 애니만 본 입장에서,
"죽지 않는다" 와 "몬스터가 큰 위협이 되지 않을만큼 레벨이 높다" 를
어떻게든 풀어서 긴장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루즈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적으신대로라면 역시나군요.

역시 원작은 아직 못본 상황에서 윗분들 리플에 끼어들기는 좀 조심스럽습니다만,
라피르님이 지적하신 건 방어전의 의미가 아니라 그게 전혀 긴장되지 않는 어렵잖은 퀘스트라는 것 같군요.

설령 엘더테일의 존망이 걸린 전투라고한들,
그게 고랩 파티 몇 개 레이드 들어가면 클리어되는 중급 퀘스트여서야 의미가 없죠.
더구나 이 게임, 아직까지는 "아무도 안 죽"지 않습니까. 좀 어려우면 계속 도전하면 되는데 뭐.
Commented by Laphyr at 2013/11/30 22:28
지적해 주신 내용이 정확히 맞습니다.
위에서 말씀을 해 주신 부분들도 맞는 얘기긴 한데, 저는 시로에와 아카츠키 (90랩)의 모험을 보고 싶지 미노리의 모험 (30랩), 그것도 시로에가 오면 그냥 쫑나는 모험을 보고 싶지는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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