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페이트 제로 16화

[삐졌어, 관심없어, 알아서 해! ...라고 말하는 듯한 아이리의 아가씨 모드!!]


 16화의 주인공은 케이네스..였죠? (...) 그렇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키리츠구가 말하는 지옥 같은 전장이라는 것을 재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성배전쟁을 통틀어 가장 '전쟁'스러운 에피소드였던 것 같습니다. 거기서 세이버와 키리츠구 두 사람의 이념이 대립하는 장면을 멋지게 그려냈네요.
 (※저는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기에, 아래 감상은 전적으로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것으로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일단 케이네스가 리세이를 죽이는 장면에서부터 이번 에피소드의 키워드가 '냉혹한 전장'에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리세이가 고토미네 건담을 시켜서 토오사카를 지원하는 것도 기사도를 따지자면 엄격한 위반이지만, 좀 더 시야를 넓혀 본다면 큰 룰 안에서는 규율을 지켜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새신의 탈락 작전, 은밀한 지원, 캐스터 토벌 기획 등, 뒤게 켕기기는 하지만 '정당한 수단'인 것으로 속여 토키오미를 도와주려 했죠.

 그런데 그런 리세이를, 케이네스가 방심한 틈을 타 총으로 쏴서 죽여버린 것입니다. 마술사 세계에 속해있긴 하지만 토키오미와는 달리 굉장히 현실적인 케이네스다운 수법이었고, '여기는 그런 곳이다'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들죠.

 그런 케이네스의 외도로 시작한 에피소드는, 마찬가지로 빈틈을 노린 키리츠구와 마이야의 작전에 의해 케이네스, 솔라우 커플이 파멸하는 과정을 그려가게 됩니다. 그 한가운데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사도의 정점을 걷는 두 서번트의 정정당당한 싸움이 있었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외도 위에는 사도(邪道)가 있다는 것을 16화 전체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분노에 찬 디르뭇드(녹천광)의 일갈, 그리고 멍하니 선 세이버.]


 분노한 디르뭇드(?아직도 모름)의 소멸 후, 케이네스와 솔라우마저 죽여버린 키리츠구를 향해 드디어 세이버는 욕설(?)을 내뱉게 됩니다. 고귀한 기사도 정신을 갖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장이라도 명예롭게 죽어가야 한다는 신념의 그녀에게, 사기와 협박으로 승리만을 손에 넣는 키리츠구의 비열함은 도저히 견디지 못할 수준이었겠죠. 그렇지만 드디어 키리츠구도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명예롭게 죽어간다고 한들 죽음은 죽음, 그것을 멋지게 포장하는 것은 '영웅'들의 죄악이며 전장 자체가 지옥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

 어릴 때부터 기사도 정신과 함께 살아온 중세 유럽의 소녀 아르토리아와, 어릴 때부터 살육의 전장에서 자라온 중년 키리츠구의 이념은 이렇게 엇갈릴 수밖에 없었죠. 세이버의 입장에서는 그녀의 말도 맞지만, 군필자의 현대적인 감각(...)으로는 키리츠구의 이야기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같은 유명한 전쟁영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갈등을 다룬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1차적인 감정마저 배제해 버리는, 전쟁이란 없어져야 할 슬픈 것'이라는 결론으로 매듭지어지는 경우가 많았죠.



 위 장면의 카메라 연출은 거의 없다시피 하여, 성우의 연기력으로 커버를 해야 되는 구도였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크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작품 초반부터 강조되어 온 세이버 - 아이리 - 키리츠구의 애매한 구도가 잘 드러났으며, 극단적인 캐릭터 배치로 인한 대립하는 느낌 역시 잘 살아났다고 봅니다. 단, 문제는 대사입니다.

 이 파트에서의 대사는 세이버, 키리츠구 두 사람의 신념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그만큼 중요하고, 그들이 어떠한 얼굴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현장감을 전달하는 것도 좋은 애니화의 한 예일 것입니다. 그렇긴 하나, 시간이 짧고 내용이 워낙 중요하다는 것이 걸림돌이 됩니다. 세이버를 비췄다, 키리츠구를 비췄다 한다면 그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대에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내용을 모르는 이에게는 '대사를 듣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겠죠. 화면이 멈추어 있었던 덕택에, 대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원작을 알고 있는 분들께는 좋은 연출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TVA를 통해 공개되는 것이라면, 두 사람이 대립하는 이유의 근원을 이토록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장면에 대해, 어느 정도는 배려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싶고, DVD/BD 발매 시에는 원작 팬들을 위한 배려가 들어간다면 더욱 좋겠다 싶더군요.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쨌거나 가장 잔혹한 느낌을 주었던 16화를 기점으로, 성배전쟁은 조금 더 전쟁스러운 인상을 담게 되었습니다. 키리츠구의 냉혹함이 강력하게 드러나는 화에서, 고토미네 건담은 유열의 감정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는(...) 것도 인상적인 구도가 아닐까 싶네요. 많이 남지는 않았는데, 이제부턴 조금 더 하드하게 달려가 봤음 싶네요.
 

by Laphyr | 2012/04/23 00:13 | = 애니메이션잡담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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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키다리아저씨 at 2012/04/23 00:30
빨리 호구왕님 멘붕된 얼굴을 보고싶습니다
Commented by exnoy at 2012/04/23 03:30
근데 총 쏘는게 케이네스 다운 수법은 아니라고 봐요.
초반에 마술에 대한 자부심이 쩔어서 기계문명은 쓸 생각도 안 했던걸 생각하면 지금의 케이네스가 몰락할 만큼 몰락했다는걸 보여줄 뿐이라는 기분이 듭니다.
Commented by Laphyr at 2012/04/23 19:36
음 그렇네요. 말씀하신대로 케이네스다운 수법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겠네요.
단지 그런 자긍으로 넘쳐나던 마술사조차 진정한 전장 속에서는 기계문명 따위에 의지해버릴만큼 지옥과 같다는 걸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네요~
Commented by 엑스트라 at 2012/04/23 08:02
심판관을 먼저 쏜 케이네스에게 어울리는 최후였으니 키리츠구를 원망할 이유는 없다는.
현실의 전쟁은 미친자들만이 한다는 현실을 세이버는 이해했으면 좋겠는데....
Commented by Laphyr at 2012/04/23 19:37
먼저 규율을 어긋나는 지독한 거짓말을 한 셈이니..
옛날의 전쟁이 정말로 명예로 넘쳐났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이버에게도 분명히 문제가 극심합니다..
Commented by RuBisCO at 2012/04/24 01:10
무슨수로든 반드시 제거해야할 적이 상대인 만큼 고자생성자(...)의 계략이 나쁘지 않았다고 봅니다.
상대가 좀 운이 나쁜것으로 동정표를 사는 창시타[...] 진영이라는게 까이는 주요 이유같긴 합니다.
Commented by Laphyr at 2012/04/24 07:00
사실 성배전쟁쯤 되는 '이유 있는 싸움'에 나섰으면서 명예 운운하는 것은 그만큼 전략의 가짓수가 줄어드는 심각한 문제가.. 이번 창시타는 이미지가 나쁘지도 않다보니 이렇게 불쌍하고 키리츠구가 더 나빠보이네요 ㅜ
Commented by 레뮤 at 2012/04/24 14:38
정말 내용적으로는 다 알고있지만서도

성우분들의 연기나

작품의 연출력때문에 안볼수가 없는 작품

GOOD!
Commented by Laphyr at 2012/04/25 18:53
헐 내용적으로는 이미 알고 계시는군요 (...)

역시 빠른 전달력!
Commented by 레뮤 at 2012/04/26 17:02
아무래도 소설을 읽었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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