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개와 가위는 쓰기 나름



작가 : 사라이 슈운스케
일러스트 : 나베시마 테츠히로
레이블 : 패미통문고 & NT노벨



 제12회 엔타메 대상(패미통 문고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신인 작가의 작품입니다. 미려한 일러스트의 미소녀와 개의 투 샷을 메인에 넣음으로써 비일상적인 러브 코미디에 대한 환상(?)을 심어 줬지만, 실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드립과 태클로 이루어진 정통 말장난 류의 작품. 작품에 대한 기대 방향에 따라 큰 실망이 있을 수도 있고, 오히려 의외의 재미가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 말장난

 이 작품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과 히로인이 주고 받는 말장난입니다. 비정상적인 독서광이라는 설정의 주인공, 그리고 가위를 들고 다니는 위험한 폭력 히로인의 조합은 솔직히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만, 문제는 그 텐션에 있습니다. 받아들일 수 있으면 충분히 재미가 있으나, 받아들이지 못하면 오히려 짜증이 난다는 겁니다.

 이러한 장르의 정점 중 하나에 서 있는 니시오 이신의 모노가타리 시리즈는 이러한 템포의 조절이 절묘합니다. 얼핏 의미없어 보이는 말장난이 이어지는데, 독자 입장에서 모든 대화를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니시오 이신은 그것을 알고 있고, 때문에 중간중간 그것을 희석할 수 있는 장면들을 삽입하곤 합니다. 센조가하라는 괜히 츤데레가 아니며, 칸바루의 18금 발언은 단순한 캐릭터 메이킹이 아닙니다. 히타기 님의 '데레', 칸바루의 섹드립은 캐릭터 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지루할 수 있는 말장난의 양념으로써 작용을 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배려가 부족합니다. 드립과 태클, 보케와 츳코미 대사들은 어느 정도의 재미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의 무언가가 없어요. 히로인 키리히메는 툭 하면 "개가 맛있을까?", "개 전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너, 죽어보는 게 어때?" 등의 수준 높은(?) 드립을 치고 있습니다만, 장면 전환이 되어도 그녀는 항상 난폭한 그녀인 채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주인공이 개라고는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은 개가 아니라 독자라는 점은 배려가 되어야 합니다.


- 설득력

 라이트노벨에는 소재에 따라 설득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아빠 말 좀 들어라!>의 사코 선배의 로리 사상이라든지, <하느님의 메모장>의 히로의 여성 편력은 독자가 납득하지 않아도 스토리 진행에 문제가 없으며, 또 작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독특한 설정이 작품의 메인을 차지하게 된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왜, 어째서? 하는 납득 없이 무작정 달려 나가는 것은 충분히 위험하다는 겁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과 히로인이 모두 굉장히 유별납니다. 책을 조금이라도 읽지 않으면 미쳐버리는 고교생 주인공, 쓰기만 하면 정신이 나가 버리는 작가 히로인, 이들의 사상을 일반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죠. 적어도 왜 책을 좋아하는지? 그가 좋아하는 책의 매력이 대체 무엇인지? 하는 단계에 대한 포석이 있지 않으면, "책을 좋아하니까!" 라는 내용을 답으로 제시해 봤자 공감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좋아하냐고?"

 하나의 단계가 생략되어 있으면, 작가의 감성과 독자의 감성에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클라이막스에서 작가가 아무리 열혈 시츄에이션을 만들었다 한들, 이해가 되질 않거든요. 이 작품에서는 "책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 처음부터 생략되어 있고, 그걸 설명하려는 노력도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덕택에 주인공의 죽음에 관련된 에피소드의 전말, 마무리는 너무 거칠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죠.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의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범인의 범죄 동기 설명" 부분에서, 범인이 "흑흑 나는 이 사람이 너무 죽이고 싶었다구! 야들야들한 구릿빛 피부를 보면 칼로 베어버리고 싶은 게 사실이잖아. 당연한 거야!" 라고 설명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걸 듣고 피해자의 아들이 "음. 맞습니다. 이해가 갑니다. 비록 제 아버지는 죽었지만, 저는 저 사람을 용서하겠어요." 라고 말한다면 참 재미있겠죠. 아무리 피해자 아들 또한 구릿빛 피부를 보면 칼로 베어버리고 싶은 취향이 있었다고 초장부터 설명을 한들, 저렇게 마무리가 되면 납득이 되겠습니까.



 저는 이 작품을 폭력녀 - 개가 된 주인공의 러브 코미디 요소가 가미된 스릴러로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작품 자체가 너무 난폭하더군요. 캐릭터도 난폭하고, 작가가 자신의 의지만을 독자에게 관철시키려는 서술 방법도 난폭합니다. 하지만 이건 작가의 데뷔작이고, 또 1권입니다. 근원이 되는 문제는 해결된 이상, 한 사람과 한 마리의 커플(?)이 어떤 이야기를 펼쳐갈지에 대해서는 기대를 남겨 둘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그만큼 말장난 자체에 대한 센스는 뛰어나고, 캐릭터도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키리히메가 궁극의 츤데레(얀데레?)로 변신할 수만 있다면야, 저는 이 작품에 대한 1권의 혹평을 철회할 생각이 있습니다(...). 1권의 분량을 희생한 '츤츤츤츤츤츤' 이었다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2권이 아주 많은 의미로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Summary]
 
- 장점 : 주인공과 히로인이 주고 받는 대화의 센스가 뛰어나다.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경우에는 순식간에 읽어 내려갈 수 있을 만큼, 신인답지 않은 템포를 보여준다. 
- 단점 : 전체적인 소재의 설득력이 부족하다. 덕택에 캐릭터의 매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그들의 독특한 성격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감동 혹은 모에를 느낄 겨를이 없다.
- 장르 : 라이트 미스터리 판타지 코미디
- 캐릭터 특징 : 주인공과 히로인 모두 집착형 성격, 말싸움에 능한 비슷한 스타일. 히로인은 얼굴 없는 유명 미녀 작가라는 매력적인 설정이 있으나, 그것은 배경으로만 사용하된 센조가하라 형 폭력녀 컨셉이다. 주인공 역시 '개'가 되었다는 독특한 설정이 있지만, 이는 언어유희의 도구가 될 뿐 직접적인 소재로 사용되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소재는 좋으나, 잘 펼쳐 나가지 못한 아쉬운 케이스.

by Laphyr | 2012/01/29 17:56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핑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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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ain at 2012/01/29 18:15
흡인력이 없지는 않았는데...아무래도 단점 쪽이 꽤 강하게 느껴졌습니다.하다못해 주인공이 개가 아니었다면 좋았겠는데.
Commented by Laphyr at 2012/01/29 18:27
개가 되었다는 설정을 좀 이용해 먹던지 (러브 코미디 쪽으로) 했으면 몰라도, 이건 그냥 "개 전골이 맛있을까?" 정도의 개그 말고는 전혀 이용하질 않아서 안타깝더군요.
말씀하신 약간의 매력 요소 때문에라도 일단 2권까진 볼 생각입니다.
Commented at 2012/01/29 19:4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Tao4713 at 2012/01/29 20:37
주인공이 개가 되면서 히로인에게 생활의 모든 면에서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관계가 좀 신선했고, 일상 파트는 좀 취향이라서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습니다만, 일상 외의 파트에서의 전개가 심각하게 별로였고 전체적으로 내용이 좀 중구난방한 면이 있더군요. 후기보니까 작가가 두 분이던데, 그래서 그런가.......--
Commented by Laphyr at 2012/01/29 23:27
중구난방에 애매모호한 느낌이 확실히 있었지요..!! 일상 파트의 템포가 취향에 잘 맞으셨던 것 같습니다. 저도 가끔씩은 "오 이건 재밌는 드립인데?" 라고 느끼는 부분도 있었고, 때문에 기대를 했습니다만. 마무리가.. 마무리가 어쩔 꺼야 작가양반 ㅜㅜ
Commented by 카운터 at 2012/01/29 21:18
일상파트는 신인치고는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배틀부분이 독자로서 납득하기 힘들정도로 아무 개연성이 없이 이뤄지더군요.

그 부분은 상당히 마이너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중간까지는 그럭저럭 잘 읽혀진다가

마지막이 그러니 후속권을 살 의욕이 좀 많이 떨어졌습니다. 안 그래도 NT에서 곧 개와 가위 2권이 나올것 같던데..
Commented by Laphyr at 2012/01/29 23:32
네 목록을 보니 다음 달 신간 예정이더라구요. 빠른 시일 내에 2권을 내 주는 걸 보면 물 건너에서도 기본적인 인기는 있는 것 같지만 (드라마 CD라든지), 저로서는 말씀하신 것처럼 나름대로 괜찮은 일상 파트에서 연애 요소가 포함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은 읽기 힘들 것 같습니다.

작가가 두 명이라는 점이 개연성 부재에 영향을 준 것일까요? 납득도 안 되고, 뜬금없으니, 도저히 몰입을 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Commented by 노란개구리 at 2012/01/29 23:08
주인공이 책덕인 것도 그렇고 마지막의 그 전개도 그렇고 어차피 하고싶었던 얘기는 독자와 작가의 관계에 대해서였던 것 같은데 그럴거면 주인공이 굳이 개여야 할 필요가 있나 싶더군요. 말씀하신대로 주인공이 개가된 건 그냥 개전골 드립을 위해서였던것 같기도 하고...OTL
개인적인 인상은 "소재는 잘 뽑았는데 그 외에는 중구난반으로 어수선하구나"정도였는데... 장단점이랑 매력포인트를 제대로 짚어서 감상글 쓰신 거 보고 감탄했습니다 ㅎㅎ
Commented by Laphyr at 2012/01/29 23:36
그렇습니다 이 작가는 자기가 얘기하고 싶은 건 뇌내에서 종결시켜 버리고 2차적인 것들을 끄집어 내어 작품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칭찬의 말씀 감사합니다만, 저는 개구리님이 말씀해 주시기 전까지 '독자와 작가의 관계'가 메인일 수 있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했었네요.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 보니 작가가 뭘 하고 싶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고. 전 정말 뭐야?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
Commented by 레뮤 at 2012/02/01 19:28
음 이작품 읽고싶긴한데.. 하고 고민 하던차에 라피르님 리뷰로 해답을 얻고 갑니다

모노가타리 시리즈같은 장르라길래 조금 기대했는데 전 패스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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