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1월 08일
나는 라이트노벨이 좋다 - 「사쿠라다 리셋」

작가 : 코노 유타카
일러스트 : 시이나 유우
레이블 : 카도카와 스니커 문고 / NT노벨
라이트노벨이 좋다고 말한다면, 도리어 반문을 들을 수 있다. 그럼 라이트노벨은 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로 시간을 허비했고, 또 허비하고 있다. 소위 '이 쪽'문화에 입문하는 병아리들이 항상 비슷한 화제를 커뮤니티에 던질 때마다 이제는 웃음이 나올 정도랄까.
축구가 뭔데? 잔디 구장에서 11명의 선수가 공을 차며 골을 넣는 것이 축구의 전부인가? 야구는 또 뭐지? 공을 치고 달려 다시 홈으로 되돌아 오면 그만인 게임인가. 그렇다면 장르문학은 또 뭐고, 판타지 소설과 라이트노벨은 뭐가 다르단 말이지? 이걸 고민하는 것은 정말 쓸데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축구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로스 타임에 극적인 결승골을 넣고 흘리는 만년 교체 선수의 눈물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나? 야구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십 수년간 몸 담았던 그라운드를 떠나는 베테랑 선수의 쓸쓸한 어깨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결국 마찬가지다. 라이트노벨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라이트노벨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을 느낀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아니, 그게 바로 라이트노벨이다. 코노 유타카의 「사쿠라다 리셋」은 그런 매력을 너무 감미롭게 전달해 주고 있다.
- 사쿠라다, 이능(異能)의 마을
「사쿠라다 리셋」은 각종 이능이 등장하는 '사쿠라다'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마을의 설정은 매우 흥미롭고 무한하여, 파고 들 수 만 있다면 정말 큰 세계관을 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을 3일분만큼 '리셋'시킬 수 있는 능력, 만진 것은 뭐든 지워버릴 수 있는 능력, 미래를 아는 능력, 고양이와 생각을 공유하는 능력 등, 사쿠라다의 가능성은 무한에 가깝다.
그러나 이렇게 지극히 라노베스러운 배경은 어디까지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이능으로 대결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거창한 비밀을 파헤치려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 작품의 라노베스러움의 절정이 있다.
- 케이, 소마, 그리고 하루키
'기억을 유지하는 능력'을 지닌 케이는, '세상을 3일분만큼 리셋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하루키와 함께 다양한 사건들을 맞닥뜨리며 해결해 나간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에는, '미래시'의 능력을 지닌 소마 스미레라는 소녀의 역할이 존재한다. 무감각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한 케이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진행되지만, 결국 이 이야기에 중심에 있는 것은 한 소년과 두 소녀다.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사쿠라다에 들어온 케이가, 스스로를 속여가면서까지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하루키 미소라라는 감정 없는 소녀다. 또한, 그들을 만나게 해 주고 2년 동안 함께 있을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한 것이 소마 스미레. 리셋, 미래시, 기억유지 - 이와 같은 강력한 능력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핵심은 매우 간단하다.
소마는 케이를 좋아한다.
케이는 하루키에게 한 눈에 반했다.
하루키는 점점 케이를 좋아하게 된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지닌 소녀들의 삼각관계, 그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본질이다. 시스템? 관리국? 능력? 핵심으로 보이는 것 같은 설정들은, 사실은 핵심이 아닌 것이다.
- 뭐가 라노베스러움인가
그냥 연애 요소만 넣으면 라노베스러움인가?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 뿐이고, 어떤 재미를 즐기든 그건 자유 아닌가?
물론 즐기는 방식이야 사람 나름이다. 이 작품은 충분히 머리 싸매며 읽기에도 적합하고, 또 설정 놀음을 하기에도 재미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케이 - 소마 - 하루키 세 사람의 이야기에 주목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렇게 감상을 하면서 내가 바라던 즐거움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루키는 로봇처럼 감정이 없는 소녀였다. 그에 반해 소마는 매우 활달하고 거짓말처럼 명랑한 소녀. 이 두 사람은 결과적으로 같은 소년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 방향과 진도는 정반대에 가까웠다. 미래를 알고, 결말을 알고 있는 소마는, 어떻게든 케이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케이의 앞에 서 있는 그녀는 매우 강하지만, 아무도 없는 낡은 호텔방에서 혼자 잠들 때의 묘사는 소마가 얼마나 가녀린, '사랑에 빠진 소녀'에 불과한지 잘 알 수 있게 해 준다.
반면에 항상 곁에 있다는 베스트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하루키의 이야기는 좀 더 솔직하다. 마치 아기 같이, 그녀는 하나씩 하나씩 삶에 필요한 감정을 습득해간다. 케이를 위해서 도시락을 싸 주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기뻐하나, 케이가 소마에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고는 화도 낼 수 있도록 변해가는, '사랑을 배우는 소녀'의 모습. 소마가 자유롭고 자극적인 매력을 자랑한다면, 하루키는 지켜주며 챙겨주고 싶은 캐릭터일 것이다.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이 <카도카와 스니커>문고에서 나오지 않은 작품이라면, 라이트노벨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노골적으로' 이 소녀들의 매력을 전달해 줄 수 있었을까? 5권 334페이지에서 나왔던 것 같은, 숨막힐 듯한 두 소녀의 대립 장면 -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야말로, 「사쿠라다 리셋」의 근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 를 이만큼 표현해 낼 수 있었을까.
이 '노골적'은 당연히 요즘 유행하는 가볍고 값싼 러브 코미디 류의 '그것'과는 굉장히 다른 스펙트럼을 지닌다. 요즘의 라노베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이게 뭐야? 겨우?'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정도의 '노골적'이야말로,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라노베스러움'의 근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홀라당 벗기고, 10페이지만 지나면 남자 주인공에게 푹 빠지고, 그런 노골적과는 다르다는 것).
판매량은 정말 안습이고, 국내에서 이 작품을 즐겁게 읽는 독자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은 라노베스러움을 보여주는 데 있어 분명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가볍기만 하고 일러스트로만 사람을 낚는 작품들이 넘쳐나는 시기에, 판매량이라는 현실에 밀려 새로운 작품들도 그 트렌드를 따라가는 시기에, 이와 같은 작품을 선사해 주고 있는 작가와, 국내에 들여오고 있는 레이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 by | 2012/01/08 20:16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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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갈 수 없는 장애물이죠
전 이쪽 논쟁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손 놓고 있는 주의이긴 합니다만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말았으면 하는 생각도 있는건 사실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찬양하고 대중화 시킬려는 시도가 반대로 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랄까요
이제는 달관하고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나가고 보니 항상 나오는 소리만 나오고 비슷한 얘기만 나오고....
그래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 되어 버리는 거지요.. 일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말씀하신대로 필요 이상의 열정을 쏟기에는 상황이 받쳐주질 않네요.
최근 읽은 장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라 그런지 라피르님 감상이 하나하나 와닿네요. 잘 읽었습니다^^
민감한 이슈였지만 하필 묻히게 된 작품 중에 하나라는 게 정말 아쉽네요. 발매 속도라든지 하는 부분도 있어서, 저도 1권을 본 이후에는 2~4권은 몰아서 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봤기 때문에 캐릭터 쪽으로 더 유심히 주목을 한 것 같기도 하구요.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시고, 또 감상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역시 책 읽으며 가장 좋을 때는 같은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본작의 본질이 삼각관계라는 것도 충분히 설득력있는 해석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보면 소마의 이루어질 수 없는 발버둥이 안구에 습기차게 만드는군요.
소마의 능력도 그렇고, 상황도 그렇고, 말씀하신대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발버둥이라는 점이 가련하고 안타깝죠. 하지만 또 일개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덧없는 투명함이 그녀의 매력인 것 같기도 해서, 그녀가 행복한 소녀였다면 지금만큼의 매력을 느낄 수는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