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별을 쫓는 아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인 <별을 쫓는 아이>를 보고 왔습니다. 용산 CGV에서 자막판으로 봤는데, 주말이라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자리가 차는 등 관람객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자주 등장하는 애들 줄줄 끌고 와서 보는, 그런 가족 형태의 관람객이 많은 것이 아니라, 젊은 층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아래 감상은 줄거리 요약이나 누설 등은 생각하지 않고, 느낀 부분만을 간략히 정리.


 작품은 평범한 모범생 소녀 아스나가, 아가르타라고 하는 신비한 세계에서 찾아온 슌이라는 소년이 만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케찰코아틀'의 습격으로 인해 갑작스런 비일상에 직면한 아스나에게 있어서, 슌의 존재는 동경하던 왕자님과도 같이 느껴졌겠지요. 아버지가 없는 환경 + 반에서 1등이라는 배경과 함께, 그녀가 비밀기지를 만들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 온 것은 그만큼 비일상에 대한 동경이 컸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야기가 이 만남을 통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이별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는 아스나와 모리사키 두 사람의 주인공이 존재하고, 결국은 이들의 성장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상실의 아픔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차이점은 그 시기에 있었습니다. 모리사키 선생님의 성장통은 바로 그 상실 자체였으며, 아스나의 성장통은 상실을 계기로 하여 평소부터 꿈 꿔 왔던 비일상에 대한 동경의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감독에서는 커플이 잘 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전례가 있긴 하지만, 제 생각에 이 작품에서는 연애 코드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 아스나에게 있어서 슌은 소녀심을 두근거리게 만든 존재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범생'으로 살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존재이기도 합니다. 슌에 대한 애정이 아무리 깊었다고 한들, 평범한 여자애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을까요. 모리사키도 여행 중간에 "너는 이 여행이 즐거운 것 같구나" 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아스나에게 있어서 아가르타 탐험은 많은 경험을 통한 일종의 자아 찾기가 되었던 셈입니다. 그녀가 처한 상황 및 빠릿빠릿하게 살아 왔던 모습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내세울 수 있는 진정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은 모리사키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라고하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행동했고, 끝까지 그것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는 '바깥 세상의 인간' 의 용기를 보여줍니다. 아가르타의 사람들이 자연의 섭리에 몸을 지나치게 맡기고, 죽음마저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는 정반대죠. 그는 죽음마저도 돌파하여야 할 목표로 삼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결국에는 목적을 이루어 내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스나와 함께 한 여행 과정에서 그도 많은 것을 느꼈고, 또 바뀌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10년 동안 아내를 살리기 위한 일념으로만 살아왔던 남자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갈 각오를 하였다는 것은, 성장이라는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겠죠...... 근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좀 보여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신 역시 아스나 일행과 얽히면서 아가르타의 삶의 방식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성장을 이룩합니다. 아스나와의 연애 요소는 찾아보기 쉽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할 수 있고(이는 아가르타의 방식과는 정반대죠), 또 소중한 누군가의 죽음을 막기 위해 "살아있는 자가 더 소중하다"는 일갈을 토해낼 수 있게 된 그의 존재는, 앞으로의 아가르타에 있어서 매우 큰 영향력을 갖게 되겠죠. 모리사키 혼자만 아가르타에 남았다면 아무런 상징이 되지 않겠지만, 두 사람이 함께 돌아갔다는 것은 그러한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소 불만스러웠던 것은 너무 이별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주연급 캐릭터들은 모두 이별로 인한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위의 세 명은 물론이고, 아스나의 엄마, 마나, 마나의 할아버지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캐릭터들을 쓰면서도 다시 이별을 통한 성장이라는 클리셰를 사용하였다는 것이 좀 안타까웠죠. 적절한 수준에서 애가 끓도록 만들어 줘야 되는데. 

 특히 미미의 건이 그랬습니다. 어차피 미미와 연관이 있는 케찰코아틀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등장할 것이었다면, 굳이 거기서 한 번의 이별을 더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아가르타의 낡은 생활관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장을 하면서, 정작 아가르타 식의 윤회를 통해 결정적인 도움을 얻었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미가 사실은 거대한 케찰코아틀의 일부였고, 그 케찰코아틀이 도와주러 등장했다거나 해도 별로 문제는 없었지 않을까요.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두 가지의 이야기를 동시에 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시원하지 못한 결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스나 쪽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가르타 이야기 쪽은 위의 미미 건 때문에 아리송 할 뿐이네요.


 @이족에게 유괴되었을 때, 두다다다다 달려오는 마나의 모습은 정말 귀여웠습니다. 정말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이후로도 아스나를 졸졸 따르며 아~아~ 아아~ 하고 웅얼거리는 모습이 너무너무 귀엽더군요. 목소리도 정말 귀여웠는데, 알고 보니 히다카 리나였네요. 역시 귀엽다...

 @주역들은 관심이 없어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단역 중에서 두 캐릭터는 목소리 구분에 성공. 신이 두 번째 사명을 받고 마을을 떠날 때, 붙잡는 마을 처녀A 역할이 이토 카나에. 다소곳한 캐릭터지만, 그래도 목소리에 힘이 들어있는 특색은 살짝 살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아스나 엄마 역할의 오리카사 후미코. 뭐 예전에도 아줌마 역할을 안 하신 건 아니지만.. 감상은.. 역시 세월이 많이 흘렀다 ㅜㅡ..

 

by Laphyr | 2011/08/27 23:03 | = 애니메이션잡담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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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keith at 2011/08/28 01:10
배경 존잘(;)이라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답게 배경 보는 재미도 쏠쏠하더라구요ㅋㅋ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움직이는게 흥미로운 부분임과 동시에 약간 루즈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미미도 너무 좋았는데 허무하게 ㅂㅂ해서ㅠㅠ
재미있게 봤는데 한 번 더 보라고 한다면 역시 닷핵 퀀텀을 한 번 더 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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