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나코의 시나리오 : "헌신"의 희곡

 

작가: 타카기 아츠시
일러스트 : 사사모리 토모에
레이블 : 카도카와 스니커 문고, NT노벨


 한창 '츤데레'라는 소재가 유행하기 시작하기 전에는, 겉으로는 쌀쌀맞지만 속으로는 상냥한 히로인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쌀쌀맞은 태도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얄팍한 가면으로 변질이 되었습니다. 초기의 츤데레 캐릭터들들에게서는 숨겨진 '데레'를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던 반면(대표적인 예로 스즈미야 하루히), 최근의 츤데레 캐릭터들은 언제 새침하게 굴었냐는 듯 순식간에 사랑스러운 모습만을 보여주곤 합니다. 

 이 작품의 히로인 나나코를 어떤 속성으로 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망설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을 좋아하는 데, 그것을 비뚤어진 방향으로 표현하는 것은 얀데레의 전형적인 형태니까요. 그렇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시나리오'를 감상하다 보면, 과연 그것이 비뚤어진 것인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과연 그녀를 얀데레, 혹은 츤데레 캐릭터라고 구분할 수 있는 걸까요.


 (마지막 문단에는 치명적인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1. 나나코와 츠보테의 관계


 주인공 츠보테 아키라는 자신의 의지를 제대로 표명하지 못하고, 결과가 나온 후에야 생각을 하는 수동적이고 평범한 남자아이입니다. 이러한 성질 때문에 그는 반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친구였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는 등, 사실 매우 변변찮은 성격의 주인공이죠. 그에 반해 나나코는 작중에서도 몇 번씩이나 등장하는 묘사와 같이, 매우 총명하며 주위로부터 사랑을 받는 똑똑한 여자아이입니다. 외모는 물론 속해 있는 위치까지, 두 사람은 너무나 상이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더없이 평범한 츠보테라는 소년이 나나코에게는 누구보다도 특별한 존재로 각인되었다는 점입니다. '감춘 돌 알아맞추기'라는 계기를 통하여 두 사람은 서로의 솔직한 부분을 조금씩 드러내게 되었고, (아마도) 둔감한 츠보테에게는 그것이 별 의미없는 시간에 불과했겠지만 조숙했던 소녀 나나코에게는 그 무엇보다 행복한 나날이었을 겁니다. 둔감하다는 것만 빼면요.

 작품의 서술이 대부분 주인공 츠보테의 입장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보낸 시간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요즘의 흔한 라노베들처럼 왜 히로인이 주인공을 좋아하는지 이유를 좔좔 설명하지도 않고, 누가 보기에도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애정을 어필하지도 않죠. 그렇지만 이 시간은 작품 속의 그 어떤 장면보다도 포근한 시간이었으며, 이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이후의 사건에 대한 나나코의 입장 및 태도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후의 사건이란 당연히, N의 등장과 괴롭힘이 등장하는 시간입니다. 


 2. 나나코의 방어 시나리오


 N이라는 소년의 등장에 의해, 두 사람만의 시간은 완전히 소실되고 맙니다. 이것을 서술하는 츠보테는 그야말로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나코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화가 나고 안타까운 상황이었을 겁니다. 한 술 더 떠 세토라고 하는 소년 집단과도 츠보테가 어울리게 되는 악재가 계속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나코가 선택한 것은, 드러나지 않는 방어 시나리오 였습니다. 츠보테가 카드 게임에 빠져 나나코에게 전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자,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세토를 이용하고 또 속이는 장면은 이 소녀가 얼마나 깜찍하고 음흉한지를 보여주는 사건인 동시에, 또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인지를 드러내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아이가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계략을 꾸미는 모습은 정말 '깜찍하다'는 표현이 잘 들어맞을 것입니다.

 츠보테가 집단 괴롭힘에 노출이 된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의 편에 서서, 방어 시나리오를 전개합니다. 구기대회 도주 사건, 식물관 견학 사건 등에서 그녀가 펼친 전략은 어느 정도 위험성을 갖고 있어, 츠보테를 위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렇게 나서서 행동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세토 일행에게 굴욕적인 폭행을 당하기까지도 하면서, 좋아하는 남자아이를 위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방어 시나리오를 펼치는 소녀를, 누가 음흉하다고만 말할 수 있겠습니까.


 3. "헌신"의 희곡


 가장 중요한 것은 결말이자, 시작입니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나나코는 분명 반전을 보여줬습니다. 사랑이든 애증이든 공포든, 어떠한 방법으로도 '그'의 마음 속에 자신을 남길 수 있다면 어떤 행동이든 괘념치 않겠다는 '저주'라고 하는 사랑의 형태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역시 츠보테를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츠보테 외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왔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이든, 그에게만 솔직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죠. 하지만 나나코의 마지막 '시나리오'는, 츠보테에게조차 자신의 비뚤어진 모습을 비추는 안타까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나리오는 누구보다 사랑하는 소년의 회복을, 그녀 자신의 감정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헌신"의 희곡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날 의심하게 만들어서, 절대 잊을 수 없도록 만든다 - 라고 하는 저주. 과연 나나코 자신은 그런 것을 바랐을까요. 모든 사건의 진상이 담겨 있는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저는 마치 나나코가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지만, 커다란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 계속해서 소년을 도와주었으며, 3년 동안 매일매일 빠짐 없이 문병을 왔고, 결국에는 뇌사 상태에 있던 츠보테가 의식을 회복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나리오를 써 멋지게 성공시켰습니다. 말로만 주인공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히로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이런 사랑스러운 여자아이를 만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추리물의 느낌을 풍기고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조금 다릅니다. 왜냐하면, 겉으로 드러난 '사건의 진상'에 대한 추리를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바로 나나코 양의 헌신적인 마음에 대해 추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핀트를 잘 맞추지 못하면 전혀 재미가 없을 수 있지만, 잘 이해하며 읽는다면 색다른 재미와 히로인을 만날 수 있는 수작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by Laphyr | 2011/08/06 21:14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핑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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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레뮤 at 2011/08/06 21:31
저도 이 작품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터라 선 리뷰부터 읽어볼까..하다가

마지막 문단에 치명적인 누설이 있다기에 바로 스크롤 내렸..)
Commented by ReSET at 2011/08/06 21:35
나나코에 대한 깊은 사랑이 느껴지는군요. 이해합니다(...)

좀 더 두 사람의 관계가 도로도로했다면 좋았을 텐데, 취향에 비해 상상에 맡기는 담백한 면이 너무 강했던 것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좀 아쉬웠어요. 그래도 참 좋은 작품.
Commented by 슬견 at 2011/10/12 18:49
정말 다 공감되는 말입니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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