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스즈미야 하루히의 경악(전,후)



작가 : 타니가와 나가루
일러스트 : 이토 노이지
레이블 : 카도카와 스니커 문고, NT노벨


 4년 만에 돌아온 하루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전편의 부제와도 같이 반가움과 미묘함으로 분열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품 특유의 확실한 흡입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4년 동안 묵혀뒀던 마무리를 지었다는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겠지만, 역시 너무 오랜만에 나왔다는 부분 때문에 생기는 미묘함은 감추기 힘들었습니다. 하루히는 변하지 않았지만, 제가 변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 <경악> 에피소드는 4년의 텀 정도는 무시하고 있는, 똑같은 '하루히'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하면, 더 특별한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않았다는 것이죠. 하루히 시리즈가 얻은 초 메이저급 네임벨류 때문에 '그런 작품이 이 정도야?' 라는 식의 감상도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뛰어난 작품은 트렌드의 변화와 상관없이, 언제나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정리하자면, <스즈미야 하루히의 경악>은 이전에 하루히를 사랑해 왔던 독자들을 위한 최고의 선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여기서 포인트를 주자면, <하루히 시리즈>를 사랑해 왔던 독자가 아니라, '스즈미야 하루히' 쪽에 애정 포인트가 높았던 독자들의 만족감이 더 높을 것이라는 점 정도일까요.

 (아래 리뷰 내용은 노골적인 내용 누설은 피하고 있습니다만, 읽은 후의 감상이라는 면에서 어쩔 수 없는 내용 누설이 있을 수 있으므로 본편을 재미있게 감상하실 분은 여기까지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작품 특유의 매력적인 흡입력은 건재


 하루히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평범한 보이 밋 걸 구도를 갖추고 있긴 하지만, 쿈의 독백으로 대변할 수 있는 독특한 서술 방법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는 재미를 주고 있었습니다. 하루히 시리즈 이후로는 비슷한 느낌의 열화판들을 곧잘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만, 이러한 형태를 통해 스토리 전개 + 트랩 설치를 멋지게 해 나가는 작가는 별로 없었습니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머리를 싸매게 되는 '시간' 이라는 소재가 메인이 되고 있는 분열 - 경악편에서도 이러한 장점은 그대로 드러납니다.

 사실 4년의 공백을 가장 염려하게 만들었던 것은 이 부분입니다. 이미 캐릭터가 잡혀 있는 SOS단의 멤버들이야 작가가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제 몫을 다해 줄 것이지만, '분열'시켜 둔 시간축의 이야기를 잘 매듭짓는 것은 어중간해서는 - 하루히 시리즈의 인기가 있는만큼 - 안 좋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4년 간의 고민이 빛을 본 것이든, 아니면 작가 후기에 나온 것처럼 시간의 경과 따위는 전혀 관계가 없이 그냥 본인이 게을러서 그랬던 것이든, 9권과 10권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은 이전 하루히 장편 시리즈들에 못지 않게 훌륭했습니다.

 

 2. 신규 캐릭터 추가를 통한 소재 회수는 50/50


 그러나 아쉬웠던 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4년 전(...) 분열 리뷰를 쓰면서 제가 높은 점수를 주었던 부분은 바로 신규 캐릭터의 등장을 통한 이야깃거리의 생성 & 기존 캐릭터의 속성 재부여라는 측면이었습니다. 사사키, 쿠요우 등의 인물들의 등장을 통해 SOS단측의 인물들과 대립을 시킴으로써, 자칫 고착화 될 수 있는 캐릭터의 역할들을 뒤섞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네 명과 네 명이 대립구도를 펼치는 가운데, 몇몇 인물은 뛰어난 활약을 보였지만 또 몇몇 인물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점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먼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타치바나 쿄코와 코이즈미 이츠키 입니다. 타치바나는 이전 '음모' 편에서도 흑막(?)으로 등장했었고, 이번에도 이야기를 갖고 와서 주도하는 모습으로 등장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주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소재들을 생성한다는 것을 뜻하고, 이는 다시 말하면 그만큼 캐릭터 어필의 기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중반까지는 충분히 가능성을 흘리고 다녔지만, 후편에서 그것을 전혀 회수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철저히 이용당한 가련한 여자아이라도 되었다면 차라리 나았겠지만, 어영부영 조용히 무대에서 퇴장해 버리는 신세였죠. 

 그에 반해 코이즈미는 그 어느 때보다 쿈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독자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상황들을 제공하기도 했고, 나중에 가서는 그답지 않게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호감도를 높여 주었습니다. 그의 감정의 분출 방향성은 굉장히 단편적이라 유치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하루히와 SOS단을 좋아하는 입장의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시원한 장면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캐릭터의 성격상, 그만큼 솔직한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 작품이니까요.


 쿠요우와 천개영역, 그리고 나가토 - 아사쿠라 - 키미도리의 정보통합사념체의 대립이 어중간하게 마무리 되었다는 점 역시, 이번 에피소드가 결국 분열 - 경악편의 마무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한계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뒤통수를 서늘하게 만드는 타니구치와의 밑밥이나 아사쿠라의 부활 등의 장면은 이쪽의 이야기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만, 결국 이번 에피소드 안에서 만큼은 한껏 긴장감이라고 하는 풍선을 팽팽하게 불다가 슬쩍 바람을 빼 버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굉장히 객관적으로 작품을 바라봤을 때의 평가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는 전후 관계가 어떻게 되든, 누구보다 멋지고 큰 풍선을 불었다가 한 방에 뻥 터뜨리며 화려한 엔딩을 보여주는 것을 선호할 수 있겠죠. 그런데, 하루히를 정말 좋아하고, 하루히 시리즈 때문에 라노베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 입장에서는, 오히려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직 타니가와 나가루라는 작가가 이만한 풍선을 불 수 있는 사람이고, 또 풍선 역시 중간에 바람이 새어 망가지는 퇴물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3. 하루히와 사사키


 사실 '등장에 비해 퇴장이 아쉬운 캐릭터'라고 한다면 사사키가 1등을 놓치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두 번째 항목에 넣지 않고 따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만큼 사사키라는 캐릭터가 등장한 것과 하루히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의 변화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열'편 리뷰에서 저는 이 사사키라고 하는 캐릭터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둔 나머지, 분열이라고 하는 현상 자체에 그녀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쉽게도 사사키는 그만한 비중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경악'편에서만큼은 쿈과 독자에게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하루히 시리즈의 주요 에피소드에서는 결코 하루히가 주인공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주로 나가토의 활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나가토와 더 깊게 얽히고 있는 쿈의 모습이었지요. 그런데 분열 - 경악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으며, 그 트리거가 되고 있는 것이 사사키의 등장이었던 것입니다. 예쁘고 매력적인 사사키는 하루히가 갖지 못했던 '쿈과의 과거'라고 하는 무기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하루히에게 있어서는 결코 달가운 사실이 아니었겠죠. 이에 알파 루트에서는 그 자신이 직접 관여하여, 또 베타 루트에서는 더 큰 사건을 유도하여, 결과적으로 쿈에게 다가왔던 사사키라고 하는 가능성을 제거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다소 비약일 수 있겠습니다만, 이미 하루히는 신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며 이번 경악 전후편을 통해 그러한 능력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코이즈미나 아사히나 선배(대)가 아는 것 이상으로, 치밀한 알파와 베타 루트를 모두 경험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 능력을 실감할 수 있는 시점이죠. 그렇다면, 후지와라의 음모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힌 가냘픈 소녀의 모습을 연출하게 된 것은 누구의 의도였을까요. 1년 이상씩이나 사귀면서, 남들 앞에서 보란듯이 개인교습을 해 주기도 하고, 그럼에도 떡하니 예전에 알던 미소녀를 자신 앞에 드러내고 있는 멍텅구리 같은 남자아이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장님답지 않은 지나치게 분홍빛 망상일까요?


 시간이라고 하는 어려운 소재와 세력을 이루는 신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로 다소 복잡해진 면이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분열 - 경악편의 가장 큰 키워드는 사사키와 하루히의 대립이었습니다. SF 요소들이 섞인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이 연출되어 있긴 하지만, 결국 그것은 지금보다 긴 머리카락의 특유의 향기를 풍기면서, 단장님과는 어울리지 않는 상냥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미래의 하루히의 '승리'를 의미하는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사사키라고 하는,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타까운 면이 많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죠. 그녀에게 있어서 쿈은 누구보다 가까운 남자아이였지만, 고등학생이 된 쿈의 곁에 있는 태양과 같은 여자아이에게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으니까요. SF 요소가 메인이 되는 이야기 흐름에서도, 하루히와의 분홍빛 싸움에서도 철저하게 패배해 버린 후, '친구' 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 갈 수밖에 없었던, 경악편의 비련의 히로인이라고 표현한다면 그녀에게 있어서 조금 위로가 될지 모르겠네요.



 종합적으로 저에게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위 감상은 '너무 보고 싶은 것만 봤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렇게 숨겨진 연애 코드가 없었다면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는 지금의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내고 또 만족을 하는지는 독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겠지요.
 
 쩌는 긴박감의 SF 요소가 섞인 소설, 독특한 소재를 갖고 개성있게 풀어내는 하루히만의 매력, 이러한 수식어를 붙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기본적으로 이번 에피소드가 '원래 하루히를 좋아하던 사람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괜히 거창한 의미 갖다 붙이면서 작품에 의무감 부여할 필요 없이 말입니다.
 

by Laphyr | 2011/06/05 23:41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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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구라펭귄 at 2011/06/06 12:02
정말 담권이 나오긴 할까요[...]
Commented by Laphyr at 2011/06/06 14:16
나왔으면 좋겠싶습셉슾.....
Commented by 초효 at 2011/06/06 14:10
쿈 이놈이 사실 모든 사건의 주범 같은데 말입니다...(이세계인 일지도...)
Commented by Laphyr at 2011/06/06 14:16
우리 세계의 인간이라거나 (.......)
Commented by 레뮤 at 2011/06/06 15:55
어디서 얼핏본 감상글에선

작가후기라거나 경악 분위기라던가가 하루히시리즈는 더이상 안나온다! 라는 느낌이었다던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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