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향과 IS의 경우를 통해 생각해보는 고자에 대한 의미

 연애를 소재로 하는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소위 고자라고 불리는 남성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정말로 그들이 생물학적으로 불능인지 어떤지는 확인하기 힘들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 양식에서는 대체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속된 말로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고도 표현하는 것처럼, 행동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 공통점입니다.

 


[장난스러움으로 마음을 숨기는 호로]



 <늑대와 향신료>에 나오는 로렌스는 대표적인 고자 캐릭터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귀여운 현랑 호로와 여행을 같이 하면서,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는 모에한 시츄에이션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애초에 호로 자체가 워낙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이긴 합니다만, 로렌스가 고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거기에 있지는 않습니다. 바로 호로가 충분한 호감을 표시하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대응이 굉장히 미적지근하다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죠.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제 밥상을 찾아먹지 못한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호로와 로렌스는 굉장히 잘 어울리는 커플입니다. 둘 사이의 유대는 어지간해서는 떼어 놓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하며, 또 둘 모두 굉장히 양심적이라 서로를 100% 이해해 줄 수 없다는 점에서 걱정을 안고 있다는 것까지,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로렌스가 고민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그 누구보다 호로의 행복을 염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호로와 함께 있고 싶고, 또 그러면 행복하겠지만, 그로 인해 호로가 포기해야 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까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죠. 지나치게 상냥하다고나 까요.

 
 

 물론 이는 어떻게 보면 착한 남자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미 호로에게도 마음은 충분히 있다는 점에서 생각하면 분명히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피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완전한 연애의 형태가 완성되기 전에, 마지막 한 발을 내딛는 것은 분명히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둘의 관계에서 로렌스는 분명히 고자라고 불릴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애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 속에는 이렇게 선남선녀 커플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완벽한(?) 연애의 형태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작품이 드물 정도죠. , 그렇습니다. 우유부단, 고자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것은, 그만큼 많은 히로인들에게 플래그를 꽂고 다니는 하렘계열 작품의 남자 주인공입니다.

 
 

 그들은 대체로 걸어 다니는 페로몬이라도 되는 것처럼,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성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불 같이 화를 내던 아가씨라도 갑자기 물처럼 순해지기도 하고, 분명히 적으로 등장했던 여자 암살자가 사랑에 빠졌다면서 충성의 맹세를 하기도 합니다. 물론, 애초부터 주인공을 좋아하고 있었던 소꿉친구, 막역한 클래스메이트, 동네 누나 등은 기본 탑재 사양이고요. 그런데도 그들은 어떠한 화끈한 짓을 행동에 옮기지는 않으며, 어중간한 선에서 두근두근한 이벤트를 계속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오묘한 가능성은 남겨 두면서 전혀 결단은 내리지 않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고자 주인공이라고 칭하곤 합니다.



[잘 나가는 다양한 히로인들이 등장한 하렘물, IS]

 

 

 최근 인기리에 방영을 마친 IS의 주인공, 오리무라 이치카 군 역시 전형적인 남성 호르몬 덩어리 캐릭터입니다. 소꿉친구인 호우키를 비롯해 린, 란 등 기존부터 호감을 갖고 있었던 여자아이들이 즐비하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처음에는 츤츤거리던 세실리아와 아예 공격을 하던 라우라까지 눈을 하트 모양으로 뒤집는데다, 남장여자라는 무기를 살려 공격해 오는 샤를까지, 그야말로 여성들의 사랑이란 사랑은 모두 독차지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치카는 굉장히 둔해서, 소녀들이 자신을 향해 보이는 구애의 행동들을 잘 눈치채지 못합니다. 두 번 곱씹어 생각하면 너무나 음탕한(….) 샤를의 교묘한 공격이라든지, 갭모에 라우라의 육탄 공격에도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죠.

 

 

 근데, 그렇다고 이런 이치카를 고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호감을 표시하는 캐릭터들이 잔뜩 있다고 해서, 그녀들을 건드리지 않으면 고자라고 설명해야 하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이치카라는 남자애 역시 자신의 생각과 주관이 있는 캐릭터입니다. 주변에서 여자아이가 뭔가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옳다구나~ 하고 넙죽 받아 먹는(?) 모양새를 보여야만 고자가 아닌 걸까요.

 


[하렘물 주인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행동력을 보여준 이치카]



 이미 이치카는 12화에서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을 누구보다도 옆에서 봐 주었고, 수많은 일들을 겪는 가운데서도 항상 마음의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던 호우키에 대한 감정을, 결과야 어찌 되었든 드러내려 했죠. 이치카는 이미 그런 마음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을 것이고, 그 장면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가정을 하더라도 다른 히로인들에 비해서는 훨씬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리라는 추측은 해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미 누군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히로인들이 가능성을 보인다고 해서 감사감사 ^^ 넙죽넙죽 하는 모양새가 과연 정당한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유부단한 모습을 탓할 수는 있겠지만, 히로인들에 대한 호감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해서 고자 취급을 하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진성 바람둥이적(놀아보자?) 마인드가 아닐까 합니다.

 

 호우키를 좋아하는 이치카가 샤를이나 세실리아의 마음을 받아주었다고 한들, 과연 그녀들이 행복했을까요? 절대 아닐 겁니다.

by Laphyr | 2011/04/08 22:08 | = 애니메이션잡담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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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11/04/08 22:32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군요.
Commented by Laphyr at 2011/04/08 22:49
제가 절대로 호우키 파라서 이치카 변호를 해 준다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Commented by 담배상품권 at 2011/04/08 22:52
로렌스는 고자 아닙니다
이미 한번 사고도 친 사람임(?)
Commented by Laphyr at 2011/04/08 23:26
이젠 인정해 줘야겠군요..
그렇지만 진짜 이미지가 한 번 굳어지면 잘 안 바뀌는 것 같네요..
Commented by 담배상품권 at 2011/04/09 09:59
로렌스는 일편단심이라 그렇지 결국에 가선 할거 다했음요.
거기에 첫경험이 야외(?)임
Commented by 코모리 at 2011/04/08 22:55
바람둥이 마인드가 인기 있는거군요..!? 고백을 받아들이면 끝이니까요. 왠지 알거같습니다 흠흠.
이치카 같이 눈치없는 캐릭을 둔탱이라고 하지만 실은 다 알고있을거야..그래..
Commented by Laphyr at 2011/04/08 23:26
알아도 모르는 척~ 자기는 아닌 척~ 뭐 그러면서 실리는 다 챙기는..?
굉장히 짜증나지만 어떻게 보면 또 매우 똑똑한 그런 마인드인듯....
Commented by 코모리 at 2011/04/08 23:30
여자를 꼬실줄아는거군요 ㅎㅎ
Commented by Gior Chirico at 2011/04/08 23:59
절대로 호우키 파 십니다(........)
Commented by mysholic at 2011/04/10 11:14
'골 결정력'이라는 것이, 누구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ㅎㅎ '무슨 얘기일까!'하면서 기대감을 갖고 잘 보았습니다.^^ 재미있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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