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간상인 - 불로불사, 팝니다.



작가 : 미즈이치 케이
일러스트 : 카즈아키
레이블 : 가가가문고, J노블


 <시간상인> 시리즈는 가가가문고의 수작으로서, 일본 내에서도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입니다. 작가인 미즈이치 케이의 데뷔작인 <휴대폰이 된 나>는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적이 있지만, 레이블 문제 등으로 인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죠. 다소 호오가 갈릴 수 있는 소재의 데뷔작에 비해, <시간상인>은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내세웠습니다.


 1. 독특한 옴니버스 방식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중심인물인 시간상인 토키타, 그의 조수 카나타를 중심으로 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10년 간의 불로불사를 제공하는 주역임에는 분명하지만, 작품 속의 이야기 자체는 그 10년의 불로불사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고민과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죠. 이것은 기본적으로 국내에 소개된 다른 대표적인 옴니버스식 라노베인 <키노의 여행>, <사신의 발라드>, <사후편지> 등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상인 토키타와 카나타는 자신들이 불로불사를 팔고 있는만큼 둘 다 불로불사의 인물이라는 설정을 갖고 있어, 어디든 존재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몇 살인지도, 언제부터 살아왔는지도 알 수 없는 그들의 설정 덕택에 '불로불사'를 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굉장히 자유로워지기 때문이죠. 이는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 누구에게나 편하게 전달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를 완성한 것으로, 설정의 승리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시대극이 쓰고 싶으면 중세의 토키타와 카나타를 그릴 수도 있으며, 심지어 스페이스 콜로니가 등장한다고 해도 딴죽을 걸 수 없는 구조니까요.

 덕택에 이 작품은 무엇이 소재로 등장하더라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째서 주인공 곁에서만 사건이 일어나는가, 저런 만남이 있을 수 있다니 너무 작위적이다라든가 하는 식의 의심을 품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시간상인은 1900년대에 사는 소녀에게 불로불사를 선사할 수도 있고, 그것 때문에 인생이 바뀐 그녀의 후손과 2000년대에 재회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본적으로 설득력을 갖출 수 있는 이야기의 구조는, 다양한 상상력을 작가와 독자 모두가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습니다.


 2. 교묘한 크로스오버


 옴니버스 방식의 구조에서 각 이야기간의 크로스 오버는 언제나 쾌감을 주고, 이것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으면서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엇갈림의 미학을 선사하는 카도노 월드를 비롯하여, 키노와 시즈가 같은 나라에서 만난다거나 하는 장면은 평범하지 않은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그것이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바로 위에서 이야기 한 '시간상인'의 독특한 설정 덕택이죠. 그들은 누구에게나 불로불사를 팔 수 있고, 작품 속의 세계관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10년동안 늙지 않는 연예인이 있다면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는, 그런 유명한 풍문이라는 설정이니까요.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시간상인과 거래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존재할 수 있다는 복선을 깔아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인생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모두가 각각 다른 옴니버스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던 인물들과 이야기들이 모이는 클라이막스의 연출은 그만큼 대단했죠.

 4장에서는 두 개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쉽게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건 사실 함정에 가깝죠. 작가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제한하면서 이끌어 낸 마지막 장면에서는 깔끔하게 뒤통수를 얻어 맞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점수를 더 주고 싶은 것은, 그것이 단순한 충격과 경악만을 주기 위한 수수께끼는 아니었다는 점이죠. 마지막 장면이 던져주는 다양한 메시지에 대해서는, 굳이 이 작품이 '불로불사'라고 하는 매력적인 소재를 메인으로 채택하고 있지 않더라도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3. 다양하지만 부족한 캐릭터성


 <시간상인> 시리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상인 토키타와 조수 카나타는 기본적으로 둘만의 만담이나 상황 설명 등으로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이는 두 사람이 각 스토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지 않다는 특징을 나타냅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부상당 골동품점> 의 경우, 주인공 토키야와 사키가 직접적으로 사건에 얽히면서 각 사건의 조연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모습까지도 점점 드러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것과는 방향성이 다르고, 이는 결국 캐릭터를 제대로 드러낼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각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쁘지 않고, 각자의 이야기의 주인공다운 면모를 보이면서 잘 그려져 있습니다. 이웃 모 님의 말씀처럼 이성이 없는 것 같은 캐릭터들이 만연하는 요즘 추세를 감안한다면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목적성을 지니고 있기에, 결코 입체적인 캐릭터로는 상정될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캐릭터의 골자를 지켜가야 하는 것은 토키타 & 카나타라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두 캐릭터에게 이러한 면과는 다른 임무를 부여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불로불사의 이능'을 다루는 미남 & 미소녀 조수의 활약을 기대하는 독자분들께과는 잘 맞지 않는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종합적으로 이 작품은 단순 진행형 옴니버스 방식이 아니라 머리를 쓰면서 이야기도 즐길 수 있는 두 가지 재미를 주는 양작입니다. 엄청난 비밀이 얽힌 작품은 아니지만 소소한 퍼즐을 맞추는 재미가 있으며, 뒷이야기 역시 고리타분한 치유계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라이트노벨이라고 하기에는 캐릭터성이 약한 편으로, 그러한 부분을 기대하고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by Laphyr | 2010/08/20 18:06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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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노란개구리 at 2010/08/20 20:29
오호~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도박이 성공한 느낌이군요. 라피르님 리뷰는 꽤나 신뢰가 간달까, 지난번에 본 거짓말 시리즈 진짜 딱 그대로던데요... ㅠㅠㅠ 전 이 작품의 소재 자체에 흥미가 동하고 있으니 캐릭터성이 좀 약해도 상관 없겠네요. 오오 기대된다~
Commented by Laphyr at 2010/08/21 00:20
와우 리뷰에 신뢰가 간다니 매우 감사한 칭찬이십니다.. 사실 취향이 어느 정도 비슷하지 않으면 완전히 빗나갈 수도 있겠지만요! 소재 자체에 흥미가 동하시는 거라면 충분히 재밌게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기대하신 만큼 감상도 기대를..
Commented at 2010/08/20 23: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Laphyr at 2010/08/21 00:16
으앜ㅋㅋㅋㅋㅋㅋ 뭐 이래 ㅋㅋㅋ 첨엔 와 멋있다 하면서 들었는데 갈수록..... 으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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