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액셀월드 3,4권



작가 : 카와하라 레키
일러스트 : HIMA
레이블 : 전격문고, J노블


 3권과 4권이 분권 형식이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감상을 정리합니다. 분권이라고는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과 해결 방식, 결말 등은 1,2권과 크게 다를 것이 없긴 했지만요. 덕택에 4권은 상당한 볼륨에도 불구하고 스피디하기 읽을 수 있었습니다.



- 이미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해버린 아리타 군


: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주인공이 최하층 계급의 구제불능 뚱보였다는 것입니다. 이능과 만나게 되는 주인공은 원래부터 잘나선 안 된다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지만, 얘만큼 철저하게 안습한 경우는 없었죠. 1권에서 흑설공주와 만나기 전까지는 그러한 설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런데 2권 이후부터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4권에서는 아예 극복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극복한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버스트 링커로서의 자아를 형성한 것 같더군요.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난 것은 현실 세계에서 농구부 이시오 군에게 맞으면서 협박당하는 장면에서입니다. 이시오 군은 스포츠계 열혈 타입이라, 소셜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하루유키를 구타하고 협박합니다. 그는 하루유키에게 의혹을 품고 있었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자신의 안위는 관계없이 혼쭐을 내 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소셜 카메라 영역 밖으로 나가려는 하루유키를 불러세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정당한 방법으로 린치를 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거죠. 이에 하루유키는 정당치 못한 구타 사실을 소셜 카메라 영상과 함께 학교 당국에 신고할 수 있었지만, "그 역시 노우미의 영향을 받은 것일뿐, 나쁜 것이 아니다" 라는 멋지도록 주인공스러운 논리를 내세우며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장으로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주인공 조낸 세 모드에 돌입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인지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저 장면 이외에도 학교의 따가운 시선 등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아리타 군의 모습을 보면서, 이미 현실 세계의 자기 자신은 어느 정도 포기해버린 모습으로밖에 비춰지지 않았습니다. 즉, 흑설공주와 함께 할 수 있는 가속 세계에서의 버스트 링커로서는 철저히 해 나가겠지만, 그 외의 것은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노우미 건이 해결된 이후 흑설공주가 "이상한 것은 우리다" 라고 단언한 것이 장난이 아니란 것이죠. 이미 아리타 하루유키에게, 실버 크로우에게 현실은 그만큼 레벨이 떨어지는 공간이 되어버렸고, 버스트 링크가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는 맞아도 "깝 ㄴㄴ 넌 나쁜 게 아냐" 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 겁니다.


- <심의> 시스템, 설정의 허와 실


: 심의 시스템이라고 하는 궁극의 기술을 보면서, 저는 예전에 한창 재미있게 읽었던 <헌터X헌터>를 떠올렸습니다. 곤과 키르아, 레오리오 등 주요 캐릭터들의 모험기와 함께 잊을 수 없는 것은 가장 매력적인 악역 캐릭터, 히소카였죠. 그리고 당시의 소년 만화로서는 굉장히 치밀한 설정으로 생각되었던 '넨' 시스템이 떠올랐습니다. 이 넨이라는 것은 각자의 속성에 따라 강화계, 조작계, 장착계(?) 등의 다른 종류로 사용자를 강하게 만드는 것인데, 웃기는 것은 이것이 작품이 시작된 뒤 꽤나 시간이 지난 후에 등장한 설정이라는 겁니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강한 인물이라고 해도 넨이니 뭐니 하는 건 전혀 언급이 없었고 그냥 강력하게 묘사가 되다가, 헌터가 된 이후 수련을 쌓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기 시작하자 이후의 등장인물은 개나 소나 넨 사용자로 소개되었죠. 히소카 역시 마찬가지로, 초반부터 등장했던 그는 처음부터 압도적인 강력함을 자랑했지만 넨의 사용 같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가, 나중이 되어서야 자연스럽게 "나도 넨 조낸 잘 쓴다능" 모드에 들어섰습니다.


 액셀월드의 심의 시스템 역시 비슷한 느낌입니다. 2권까지는 브레인 버스트의 세계관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설정들을 준비할 수 있었겠지만, 무제한 필드를 2권에서 써 먹고 나니 그 안에서 특별한 걸 다시 발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한 것이 시스템 허용 범위의 한계에 교묘하게 위치한 심의 시스템, 이미지네이션에 의해 다양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설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이 세계의 최강자라고 할 수 있는 레벨 9 유저들이 작품 내에 등장했었다는 사실입니다. 항상 곁에 있는 블랙 로터스는 물론이고, 스칼렛 레인이나 옐로우 라디오 같은 다른 레기온의 '왕'들도 자신들의 위용을 뽐낸 적이 있죠. 하지만 히소카가 헌터 시험에서 넨을 쓰지 않았던 것처럼, 왕들도 심의 시스템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보험은 있습니다. 히소카는 곤을 맛있는 사냥감으로 지칭하면서, 그의 수준에 맞춰주고 있기 때문에 곤이 넨을 쓰지 못했을 때는 넨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심의 시스템 역시, 마음의 상처에서 기인한 것으로 더 후벼 파면 마이너스의 극에 달한다 어쩌구 저쩌구 하는 애매모호한 이유를 내세우며 '심의로 공격해 올 때 이외에는 심의를 사용하지 않는다' 는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웃긴 이야기죠. 심의로 공격하지 않을 때는 심의를 안 쓴다면 대체 언제 심의를 쓰는 걸까요. 누군가 규칙을 깨고 먼저 심의로 공격을 하는 경우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크롬 디재스터처럼 상식과 규칙을 벗어난 괴물을 상대할 때, 엉망진창이 되어 위험에 빠졌던 니코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째서 흑설공주는 '보팔 스트라이크'를 쓰지 않은 걸까요? ......그냥 웃으며 그래,그래. 라고 말해줘야 할 것 같은 심정입니다.


- 트라우마를 극복한 타쿠무 / 대상급 연기자 치유리


: 치유리의 연기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애초에 '그런' 것이었다면 어째서 '그' 타이밍에 '그런' 행동을 해야 했는지, '그런' 말을 해야 했어야 하는지 따지고 싶은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원래부터 작가의 목표는 그녀를 통해서 독자를 속이는 것이었으니까요. 치유리의 능력이 치유라고 하니까 굉장히 잘 어울리는구나, 라고만 생각했으나 따지고 보면 확실히 잘 어울리는 어빌리티입니다. 여기서는 그녀를 욕할 것이 아니라, 면밀하게 장면 세팅을 잘 해서 독자를 속인 작가를 칭찬해줘야겠죠. 물론 그 칭찬을 해 주는 동시에 치유리라는 캐릭터는 철저한 도구적 인물로 전락하고 맙니다만... 도저히 뭘 생각하는 아이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렇게 되면 정답이 명확히지니 오히려 편하긴 합니다.


 4권에서 정말 멋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이언 파일, 타쿠무였습니다. 하루유키가 날개를 빼앗겨서 징징거릴 때 그는 언젠가부터 생겨난 박사 이미지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줬죠. 게다가 흑설공주가 보듬어 주고, 치유리가 단추를 풀면서 응원해주는 하루유키와는 달리 타쿠무 이 녀석은 이제 완전히 고독한 전사에 가깝습니다. 물론 동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가 선을 긋고 자신을 고독이라는 이름의 속죄의 영역에 밀어 넣어버렸죠. 이런 캐릭터, 정말 좋습니다. 이 작품 안에서 주관이 가장 확실하고 논리적인 캐릭터는 아마도 이 녀석이 아닐까 싶어요.

 4권에서 보여준 활약도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위험을 당하고 또 그것을 극복함에 있어 결정타를 먹인 것은 실버 크로우였지만, 타쿠무가 없었다면 아마 50%도 해 내지 못했을 겁니다. 당사자는 아니지만 지극히 당사자에 가까울 정도로 열의를 보이고, 또 그만한 성과를 보여주는 사이언 파일의 믿음직스러움이 잘 강조되는 에피소드였습니다.


 사실 실버 크로우는 이번 에피소드에서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적인 주인공은 조연들이었습니다. 흑설공주야 조연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스카이 레이커나 사이언 파일, 라임 벨이 없었다면 그런 활약은 전혀 있을 수가 없었겠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위에서 언급한, 아리타 군의 변모에 대해서는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그 자신이 성장하며 변화해 가는 것과, 주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니까요.



 그래도 여전히 뒷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이 작품의 힘인것 같습니다. 적절한 복선의 배치와 신규 캐릭터의 등장 등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가는 것이 보이는 설정이긴 하지만 과연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의심케 하니까요.

by Laphyr | 2010/08/10 22:53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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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레뮤 at 2010/08/11 03:42
액셀3,4권을 같이 읽으려고 3권 읽는걸 미뤘고 4권도 바케모노가타리上권이랑 같이 주문했더니 일주일전 이어야 도착을 했네요(...) 타쿠무가 독고다이로 빠져드는게 안타깝지만서도, 저래야만 활약상이 돋보이니(..)
저도 후닥 읽어야겠네요 3,4권 달리기!
Commented by Laphyr at 2010/08/12 14:13
4권이야 확실히 좀 늦게 나오긴 했죠. 7월 신작이지만 J노블의 특성상 분량이 많아서 뒤로 밀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던데요 (...) 소아온과 달리 액셀월드는 비축분이 없으니까 더 기대가 큽니다.!
Commented by Skeith at 2010/08/11 19:52
레알 타쿠무가 진 주인공 같았습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현실세계에서도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괜춘하더군요. 하루유키 요놈도 최소한 식사를 조절하는 모습만 보여줬어도 좀 나았을텐데...현실과 게임의 양립에 대해서는 하루유키보단 타쿠무의 태도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Commented by Laphyr at 2010/08/12 14:14
그래 맞아. 뭔가 이야길 안 해서 찜찜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걸 잘 짚어 줬네. 현실과 가상에 임하는 태도가 너무 달랐지? 하루유키는 완전 현실 쪽은 포기하고 흑설공주가 있는 가상에만 충실 & 그녀만 만나면 오케이라고 여기는 것 같은데.. 이러다 의외로 잔혹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나는 그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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