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6일
'첫인상'에 대한 소고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은 어디서든 쉽게 사용되는 이야기다. 취업의 길이 좁아지고 경쟁이 더욱 심해지는 요즈음에 이르러서는, 호감을 주는 첫인상을 남기기 위한 수많은 저서들을 서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부분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첫인상이란 단어가 평범한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정형적인 영역에서의 힘을 더욱 늘려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곧 일상과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우리는 수많은 첫인상들을 가질 기회를 얻었다. 비단 인간관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화, 도서, 애니메이션, 게임, 음악 등의 콘텐츠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분량으로 제공되면서 첫인상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영역은 더욱 넓어질 수 있었다. 이전에는 전문잡지나 도서를 이용해야 했던 다양한 분야의 평론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심지어 라이트노벨의 경우에는 아예 있는지도 몰랐던 수준에서 만 부대의 시장이 형성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얻었다. 모든 것이 인터넷의 힘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이만한 위치에 도달하기가 어려웠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위에서 언급한 '정보'들도 모두 인간에 의해서, 좀 더 단정적으로 말한다면 인간관계에 기반을 두고 생성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전에는 2차적 정보 제공자(주로 평론가 등)에 대한 정보를 명확하게 얻기가 쉽지 않았는데, 인터넷의 힘은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그 사람과 소통까지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항상 그렇듯, 군중은 강하지만 개인은 약하다. 개개인의 영역에서 No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군중은 강하게 No를 부정하는 집단으로 변모하고, 그렇게 형성된 집단은 스스로 강하기 때문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배척하게 된다. 약한 개인들이 모여 강한 개인을 몰아낸다는 것, 이러한 상황은 역사 속에서도 몇 번이나 반복되어온 어쩔 수 없는 흐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은, 과거에는 힘을 발휘하는 군중 속의 약한 개인이 따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약한 개인은 군중의 힘을 빌려 강한 집단의 목소리를 마치 자신의 의지인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PC통신으로 시작된 인터넷 1세대들이 요즈음의 인터넷 세대들을 혐오하는 것도 이와 다름이 아닐 것이다.
첫인상의 이중적인 활용은 여기서 시작된다. 보다 많은 첫인상들을 접할 수 있는 넓은 가능성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심리에 의한 방어적인 활용은 이윽고 '이미지로서의 첫인상'을 맹신하며 목소리를 보태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a. 가능성의 영역
: 본래대로라면 보다 오픈된 정보 환경 하에서의 첫인상은 제한적이던 과거에 비해 활발하고 자유로워야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잘 알 수 없었던 상대방의 여러가지 정보를 얻기 쉽고,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당연히 유동닉으로 얼쩡거리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간주). 브라운관에 등장한 새로운 여배우에 대해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작품에 대해 결론을 내릴 때 단순히 읽기보다는 검색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b. 첫인상의 방어적 활용
: 히다카 아츠시가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남의 첫인상을 파악하는 것에 못지 않게 자신의 첫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애쓴다(첫인상으로 상대를 간파하는 법,1996). 약한 개인은 스스로가 약하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강한 집단의 목소리를 따라가게 되며, 일정 수준 이상의 대중이 인정한 대상을 자신도 모르게 긍정적 이미지로 받아들이며 첫인상을 형성하게 된다. 그렇게 해야 집단을 따라갈 수 있으며, 약하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고, 스스로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c. 이미지로서의 첫인상
: 그래서 그들이 이용하는 것은 일종의 아이돌, 즉 우상이다. 인터넷 세계의 우상은 다양한 방면에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이 형성되는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역사 속의 아이돌은 아무런 힘이 없어 부정적인 과거의 대명사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21세기는 그러한 우상을 원하지 않는다. 일단 우상은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춰야 하며, 또 그것을 남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시기를 갖추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 우상은 (그 뛰어난 능력과 더불어) 해당 분야에 있어서 상징적인 존재로 떠받들여지며, 그 상황에 이르면 아무리 개인들이 목소리를 내도 지위는 흔들리지 않는다. 자칫 큰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데, 결국 이것은 대중이 우상이 되는 개인에 대해서보다 그 개인이 가진 이미지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다. 아니,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a 와 c에는 분명히 커다란 모순이 있다. 더 큰 문제는 c와 같은 상황이 한두 분야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일정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소위 '커뮤니티'라는 공간에서는 언제나 등장한다는 것이다. 개인들은 커뮤니티의 대세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필요 이상의 충성도를 보이며, 자칫 그것에 반하는 이야기를 했을 경우 내용적인 측면보다는 그 개인의 면모를 보고 판단한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 나타나서 아무리 장황한 반론을 늘어놓아도 별다른 반응이 생기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첫인상으로 상대방을 한정짓는' 경우에 발생한다. 교류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정보 파악이 끝날 경우, 그 상대방에 대한 랭크를 매기고 이후의 대응을 거기에 맞춰간다는 것이다.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정보가 있더라도 일단 랭크가 매겨지면 그 사람의 속성을 변경하려 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 등에 의한 변화로 추가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애써 모른 척한다. 똑같은 의견을 내놓아도 A랭크를 매긴 사람의 이야기라면 박수를 치며 찬양하지만, C랭크를 매긴 사람의 이야기라면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거나 혹은 애초의 랭크 파악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을 수도 있는데, 위에서 이야기한 우상 이야기와 함께 생각한다면 이러한 현실이 인터넷 내에서 얼마나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단적인 예가 얼마전에 이오공감 등에서 큰 소동을 일으켰던 C님이 될 것이다).
이는 '첫인상'이라는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사람을 간파하려는 시도가 어줍잖게 이행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당연히 상대방을 파악하면 인간관계는 쉬워질 수 있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것을 이끌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랭크를 매기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로, 예를 들어 "사교성 C랭크, 씀씀이 A랭크, 수줍음 A랭크" 와 같은 친구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접근하여 친해진다는 방향으로 플랜을 설정한다면 양자에게 모두 긍정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방어적인 첫인상 활용'이 남발된 나머지, 상대방에 대한 랭크를 제멋대로 매긴 후 그것에 의거한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 것이 문제이다.
과연 이것이 옳은 방향일까. 요즈음의 기업에서도 종종 신입사원에 대해 "스펙은 출중하지만 일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와 뉴스거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일을 하기 위해서 기술을 배우는 것인데,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기술을 쌓았다는 말이 되어, 간단히 본말전도의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인상 파악이란 상대방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원활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원활한 인간관계는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듣고, 또 대화를 나누며, 양자에게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과 다름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랭크에 따라 사람을 나누고,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겠다면(혹은 정형화된 이야기만 한다면) 그것이 본말전도가 아닌 그 어떤 상황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10년 전에 꼴통이었던 친구가 벤처기업 사장이 되어 나타났다고 벼락출세했다고 빈정대는 뒤떨어진 인간과 정도의 차이만 있지 마찬가지인 상황이 아닐까.
일을 하면서 더더욱 실감하고 있는 첫인상에 대한 생각을 좀 정리해 봤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징징글로 보일 수도 있겠는데, 솔직히 짜증이 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써킹하던 사람이 얘기하면 오오 핥짝핥짝 하다가 듣보잡이 얘기하면 뭐니 좀 많이 봤네? ... 식으로 반응하는 꼬락서니들이 좋게 보이지 않는 건 맞는 말이잖아요?
오덕오덕거린다고 일반인들보러 무시하지 말라는 태도를 보이면서, 그 오덕들 사이에서도 분야를 따라 가르며 진지 오덕 vs 재미 오덕으로 나눠 놓고 무시해대는 모양새 보면 참 가관입니다. 초성체 쓰고 커플링 해 대면 무조건 만만한 앤가요 무슨.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우리는 수많은 첫인상들을 가질 기회를 얻었다. 비단 인간관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화, 도서, 애니메이션, 게임, 음악 등의 콘텐츠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분량으로 제공되면서 첫인상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영역은 더욱 넓어질 수 있었다. 이전에는 전문잡지나 도서를 이용해야 했던 다양한 분야의 평론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심지어 라이트노벨의 경우에는 아예 있는지도 몰랐던 수준에서 만 부대의 시장이 형성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얻었다. 모든 것이 인터넷의 힘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이만한 위치에 도달하기가 어려웠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위에서 언급한 '정보'들도 모두 인간에 의해서, 좀 더 단정적으로 말한다면 인간관계에 기반을 두고 생성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전에는 2차적 정보 제공자(주로 평론가 등)에 대한 정보를 명확하게 얻기가 쉽지 않았는데, 인터넷의 힘은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그 사람과 소통까지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항상 그렇듯, 군중은 강하지만 개인은 약하다. 개개인의 영역에서 No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군중은 강하게 No를 부정하는 집단으로 변모하고, 그렇게 형성된 집단은 스스로 강하기 때문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배척하게 된다. 약한 개인들이 모여 강한 개인을 몰아낸다는 것, 이러한 상황은 역사 속에서도 몇 번이나 반복되어온 어쩔 수 없는 흐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은, 과거에는 힘을 발휘하는 군중 속의 약한 개인이 따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약한 개인은 군중의 힘을 빌려 강한 집단의 목소리를 마치 자신의 의지인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PC통신으로 시작된 인터넷 1세대들이 요즈음의 인터넷 세대들을 혐오하는 것도 이와 다름이 아닐 것이다.
첫인상의 이중적인 활용은 여기서 시작된다. 보다 많은 첫인상들을 접할 수 있는 넓은 가능성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심리에 의한 방어적인 활용은 이윽고 '이미지로서의 첫인상'을 맹신하며 목소리를 보태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a. 가능성의 영역
: 본래대로라면 보다 오픈된 정보 환경 하에서의 첫인상은 제한적이던 과거에 비해 활발하고 자유로워야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잘 알 수 없었던 상대방의 여러가지 정보를 얻기 쉽고,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당연히 유동닉으로 얼쩡거리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간주). 브라운관에 등장한 새로운 여배우에 대해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작품에 대해 결론을 내릴 때 단순히 읽기보다는 검색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b. 첫인상의 방어적 활용
: 히다카 아츠시가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남의 첫인상을 파악하는 것에 못지 않게 자신의 첫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애쓴다(첫인상으로 상대를 간파하는 법,1996). 약한 개인은 스스로가 약하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강한 집단의 목소리를 따라가게 되며, 일정 수준 이상의 대중이 인정한 대상을 자신도 모르게 긍정적 이미지로 받아들이며 첫인상을 형성하게 된다. 그렇게 해야 집단을 따라갈 수 있으며, 약하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고, 스스로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c. 이미지로서의 첫인상
: 그래서 그들이 이용하는 것은 일종의 아이돌, 즉 우상이다. 인터넷 세계의 우상은 다양한 방면에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이 형성되는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역사 속의 아이돌은 아무런 힘이 없어 부정적인 과거의 대명사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21세기는 그러한 우상을 원하지 않는다. 일단 우상은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춰야 하며, 또 그것을 남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시기를 갖추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 우상은 (그 뛰어난 능력과 더불어) 해당 분야에 있어서 상징적인 존재로 떠받들여지며, 그 상황에 이르면 아무리 개인들이 목소리를 내도 지위는 흔들리지 않는다. 자칫 큰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데, 결국 이것은 대중이 우상이 되는 개인에 대해서보다 그 개인이 가진 이미지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다. 아니,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a 와 c에는 분명히 커다란 모순이 있다. 더 큰 문제는 c와 같은 상황이 한두 분야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일정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소위 '커뮤니티'라는 공간에서는 언제나 등장한다는 것이다. 개인들은 커뮤니티의 대세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필요 이상의 충성도를 보이며, 자칫 그것에 반하는 이야기를 했을 경우 내용적인 측면보다는 그 개인의 면모를 보고 판단한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 나타나서 아무리 장황한 반론을 늘어놓아도 별다른 반응이 생기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첫인상으로 상대방을 한정짓는' 경우에 발생한다. 교류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정보 파악이 끝날 경우, 그 상대방에 대한 랭크를 매기고 이후의 대응을 거기에 맞춰간다는 것이다.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정보가 있더라도 일단 랭크가 매겨지면 그 사람의 속성을 변경하려 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 등에 의한 변화로 추가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애써 모른 척한다. 똑같은 의견을 내놓아도 A랭크를 매긴 사람의 이야기라면 박수를 치며 찬양하지만, C랭크를 매긴 사람의 이야기라면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거나 혹은 애초의 랭크 파악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을 수도 있는데, 위에서 이야기한 우상 이야기와 함께 생각한다면 이러한 현실이 인터넷 내에서 얼마나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단적인 예가 얼마전에 이오공감 등에서 큰 소동을 일으켰던 C님이 될 것이다).
이는 '첫인상'이라는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사람을 간파하려는 시도가 어줍잖게 이행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당연히 상대방을 파악하면 인간관계는 쉬워질 수 있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것을 이끌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랭크를 매기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로, 예를 들어 "사교성 C랭크, 씀씀이 A랭크, 수줍음 A랭크" 와 같은 친구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접근하여 친해진다는 방향으로 플랜을 설정한다면 양자에게 모두 긍정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방어적인 첫인상 활용'이 남발된 나머지, 상대방에 대한 랭크를 제멋대로 매긴 후 그것에 의거한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 것이 문제이다.
과연 이것이 옳은 방향일까. 요즈음의 기업에서도 종종 신입사원에 대해 "스펙은 출중하지만 일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와 뉴스거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일을 하기 위해서 기술을 배우는 것인데,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기술을 쌓았다는 말이 되어, 간단히 본말전도의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인상 파악이란 상대방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원활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원활한 인간관계는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듣고, 또 대화를 나누며, 양자에게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과 다름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랭크에 따라 사람을 나누고,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겠다면(혹은 정형화된 이야기만 한다면) 그것이 본말전도가 아닌 그 어떤 상황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10년 전에 꼴통이었던 친구가 벤처기업 사장이 되어 나타났다고 벼락출세했다고 빈정대는 뒤떨어진 인간과 정도의 차이만 있지 마찬가지인 상황이 아닐까.
일을 하면서 더더욱 실감하고 있는 첫인상에 대한 생각을 좀 정리해 봤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징징글로 보일 수도 있겠는데, 솔직히 짜증이 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써킹하던 사람이 얘기하면 오오 핥짝핥짝 하다가 듣보잡이 얘기하면 뭐니 좀 많이 봤네? ... 식으로 반응하는 꼬락서니들이 좋게 보이지 않는 건 맞는 말이잖아요?
오덕오덕거린다고 일반인들보러 무시하지 말라는 태도를 보이면서, 그 오덕들 사이에서도 분야를 따라 가르며 진지 오덕 vs 재미 오덕으로 나눠 놓고 무시해대는 모양새 보면 참 가관입니다. 초성체 쓰고 커플링 해 대면 무조건 만만한 앤가요 무슨.
# by | 2009/10/16 19:03 | = 경교대 생활일지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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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일때야 그나마 좀 나은데 사회생활 할때, 특히 면접이나 다른 바이어를 본다던지, 일의 오퍼를 놓고 다툰다던지 할때 오프라인 나가서 박살나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니까요.
사람은 알아갈수록 진국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요즘 알아야 될 사람은 너무 많고, 시간은 없다보니 다들 혓바닥만 살짝 담그고는 "난 이 국의 맛을 다 알아" 라는듯이 행동하는 세상이 된게 너무 슬프네요.
말씀하신것처럼 만날 기회가 많아지기에 이런 부분들이 희생되는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지막 정리부분은 정말 공감되네요.
제가 그래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지 못하는 이유랄까요. (N모 카페라던지, S모 커뮤니티라던지)
뭔 말을 해도 과연 지구인과 대화를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워요.
받아들여지고 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이에서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우습습니다.
개인적으로 넓고 얕은 것보다 좁고 깊은 사귐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제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녀석들은 정말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안 그랬던 친구가 사회에 나가서 그렇게
변해가는 모양새를 보니 씁쓸하기도 하더군요.
그 지구인 드립은 어떤 사람을 말씀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거 또 술자리에서 얘기할만한 꺼리가
늘어난듯..
나누거나 무시하는건 확실히 보기 안좋더군요.
군대에서는 어? 내가 이렇게 사람이랑 잘 어울렸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고.. (물론 어느 정도
계급이 올라간 다음이었지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찝어 주셨습니다. 사실 이 포스팅이 어떻게 보면 굉장이 논리정연해 보이는데,
사실은 제가 갖고 있는 어떤 한 불만을 멋지게 포장하기 위한 목적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불만을 최저로 토로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그 효과를 위해서지요.
너무나 매서우십니다 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