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봄바람이 남긴 꽃 (from 더블오 온리전)

 타이틀이 애매합니다. 5월 30일 더블오 온리전에서 소개된 ㅎㅊㅈㅅ 님의 작품이긴 합니다만, 저는 아무래도 다른 경로를 통해서 이 작품을 접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래도 뭐 어떤 경위가 되었든 읽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1. 동인 아이템


 저는 기본적으로 2차 창작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갖고 있는 특정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멋대로 변환되는 모습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거든요. 이건 애정이나 집착의 영역과는 조금 거리가 있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보수적인 저의 성향과도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원작자에 의한 변화는 당연히 납득이기에, "누구누구를 그렇게 하지 마세요!" 라는 식으로 원작자를 욕하는 경우가 있는 캐릭빠들의 입장과는 정반대가 될 것 같네요.

 근데 조금은 모순되는 얘기이긴 한데, 가끔은 제 취향과도 맞는 2차 창작물을 발견하고 불타오를 때가 있습니다. 완전히 생각이 일치했다고나 할까요? 작품을 보면서 "어, 이러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그대로 구현된 것 같은 팬픽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호감이 가더라구요. 원칙적으로는 맞지 않지만, 근거를 따져 보면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팬픽을 꺼리는 이유가 '스스로 갖고 있는 이미지를 망칠까봐' 인데, 그것이 망쳐지지 않는다면 굳이 꺼릴 필요는 없다는 애매한 상황이 되니까요. 


 2. 장미물, 커플링, 남x남


 남성팬이 백합물을 보면서 '미소녀 ㄳㄳ'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여성팬의 경우에도 장미물을 보면서 '미소년 ㄳㄳ' 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근데 애매한 차이가 있는 것은 얼마나 작중의 내용을 반영했는가? 의 여부입니다. 상대적으로 남성팬들은 특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정상커플을 내버려두고 백합커플을 밀지는 않지만, 여성팬들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는데요,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실제로 어떻게 등장했는지?' 의 여부입니다.

 별다른 연줄(?)이 없는 두 남성 캐릭터를 무조건 게이로 만드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스토리가 없는 미연시를 뽕빨게임이라고 까도 할 말이 없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커플링은 일반적인 팬들의 입장에서는 불만스럽고 비정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만 뿌리를 둔 2차 창작은 확실히 소수의 호응만을 얻게 된다는 겁니다. 반대로 원작의 내용에 충실하면서, 그 가능성의 영역에서 확장된 스토리를 써 내려간다면 어떨까요. 건담 더블오는 그러기에 딱 좋은 원작 스토리를 지니고 있었고, 거기서 탄생한 것 중 하나가 <봄바람이 남긴 꽃> 이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3. 본격 감상


 이 작품은 록온을 여성 캐릭터로 변환시키고, "엑시아 땅" 이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 잘 알고 계시는 세츠나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비추고 있습니다. 엑시아 땅은 표지에서도 볼 수 있는 세츠나를 빼닮은 귀여운 소녀인데요. 두 사람 딸입니다. (...)

 록온이 마이스터가 된 이유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복수심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예전의 자신과 비슷한 세츠나의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을 했겠죠. 어찌 보면 너무나 순수한 그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너무나 올곧은 그의 자세에 안타까움이 생겨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ㅊㅈㅅ 님은 엑시아 땅을 낳은 것에 록온 자신과 관련된 의미를 많이 부여하셨지만, 저는 동시에 그것이 세츠나에 대한 어떤 메시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적어도 세츠나가 그녀를 찾아왔다는 시점에서 계기는 마련된 거겠죠.

 '정답으로 향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라는 가능성을, 엑시아 땅은 제시해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츠나도 록온도, 각각의 굳건한 신념을 갖고 있었기에 실현될 수는 없었던 또 하나의 과정을 말이죠. '그 상황' 에서 록온은 결국 복수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세츠나가 다르게 행동했다면 <새끼건담 성장기록부> 의 배경은 톨레미가 아니라 평범한 가정집이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얘깁니다. 말도 안 되는 엔딩이며 정답이라고 하기엔 애매할 수 있지만, 한 작품의 주인공이 아닌 그들의 인생의 주인공으로서의 가치에 무게를 둔다면, 오히려 그 쪽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결국 세츠나가 '그런 녀석'이 아니었기에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말이지요.


 4. 여체화 잡담 및 ㅎㅊㅈㅅ 님의 타 작품 Gravity 짤막감상


 위에서 길게 늘어 놓았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이번 동인지를 받아들고 가장 놀랐던 것은 바로 '록언니'의 퀄리티였습니다. 지금까지도 ㅎㅊㅈㅅ 님의 몇몇 그림을 홈페이지에서 접하긴 했지만, 이렇게나 거부감 없는 캐릭터로 완성된 모습을 보니 새삼 애정보정의 무서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_-; 어쨌든 중요한 부분은 '거부감 없는 캐릭터' 라는 것. 아무리 BL을 용인할 수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남x남 보다는 남x여 커플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개념인(?)의 입장에서는 록온이 아름다운 누님 캐릭터로 재탄생된 것이 굉장히 반가웠다는 거지요.

 가끔씩 이러한 성반전이 프로의 작품 속에서도 이루어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올해 1월 GA문고에서 복간된 <카라미티 나이트>의 경우, 원래는 남자였던 주인공을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로 바꾸면서 백합 코드 & 남성 독자층의 관심을 동시에 노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그런 정상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성반전을 통해 캐릭터의 스텐스를 바꿈으로써 원작에서 아쉬웠던 감정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불꽃의 미라쥬> 의 카게토라가 애초에 기가 센 '아가씨' 였다면... 하는 상상처럼 말이죠.

 Gravity 때도 그랬지만, 확실히 ㅎㅊㅈㅅ 님의 작품들은 '원작의 코드를 크게 훼손시키지 않는다' 는 점에서 제 취향과 잘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의도적이신지, 아니면 본인의 취향이 은연중에 작품의 방향성에 영향을 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식으로 제공되는 2차 컨텐츠라면 코어하지 않은 매력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겠죠. 다른 only지 작품들은 감상하지 못해 아쉽기도 합니다. 다른 only전 참가자 분들의 마인드도 이러한 쪽이 많은 것인지, 조금은 궁금증이 생기는군요.

 

by Laphyr | 2009/06/17 05:01 | = 경교대 생활일지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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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작은길 at 2009/06/17 14:09
엄마 저 이분 무서워효ㄷㄷㄷㄷㄷㄷ
제목에는 감상이라고 써있는데 내용은 감상이 아니잖아요ㄷㄷㄷㄷ
Commented by Laphyr at 2009/06/17 14:22
헐 왜여 나의 느낌이 부족한가요 ㅜㅡ;;
그림은 아무래도 전문분야가 아니다보니 컷 어쩌구 그런 얘기는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Commented by 히이라기 at 2009/06/17 23:40
어마 저 이분 무서워효ㄷㄷㄷㄷㄷㄷ22222
제 더러운 욕망을 채우려 만든 뻘책에 이런 정성스런 리뷰를 써주시다니ㅋㅋㅋㅋㅇ<-<;;
제 가 ㅎㅁ에 헉헉하긴 하지만 원작 캐릭터 망가뜨리면서까지 ㅎㅁ질을 하고싶진 않아서 최대한 원작을 존중하려고(나름;) 하는데 인정해주시니 감사합니다ㅎㅎ 책 내용이 아니라 소재나 설정에 대해 이야기 들은 건 처음인데 이렇게도 보이는군요 신선하네요 오오...
사실 세츠나랑 록온은 동인필터 빼고봐도 워낙 얽혀있는 관계인지라; 제가 파는 커플링 쪽은 대부분 원작 루트 따라가는 분들이예요. 그리고 다들 저보다 괴물이신 분들이죠. 다음 모임 때 책 몇 권 보여드릴까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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