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글로리어스 던 1권 - 티,티세코옷~! -



작가 : 쇼지 타카시
일러스트 : 시키 도우지
레이블 : HJ문고, L노벨

 기대했던 작품이 재미가 없으면 실망이 큰 것처럼,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 재미있으면 기쁨이 크다는 것을 오랜만에 실감했습니다. 또한, 표지에 혹했다가 내부 일러스트가 엉망이면 기분이 나쁘지만, 표지를 보고 기대를 버렸다가 내부 일러스트가 예쁠 경우 즐거움이 두 배라는 것도 느끼게 해 주는군요. 그런 의미로, 특별부록인 '카드'는 차라리 흑백 일러스트를 채색하여 제작해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어쨌거나 훑어봅시다.


 1. 소재와 스케일 - 전형(典型)과 향수

 
 작가도 후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라이트노벨 시장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를 찾아보기가 요즘 굉장히 힘들어졌습니다. 한 때 판타지 계열의 작품군이 맹위를 떨칠 때는 비슷한 느낌으로 어깨를 나란히 한 시기도 있었지만, 라이트노벨의 대세가 학원 이능으로 옮겨간 이후로는 '정통'이라고 부를만한 스페이스 오페라는 찾아보기 힘들었죠. 전격문고에서 <신이 없는 세계의 영웅전>이 3권으로 짤리고, 동 작가에게 바로 학원 이능 미소녀물 <카구야>를 쓰게 한 것도 현실 파악에 도움이 되는 케이스가 될 것입니다.

 그런 뜬금없는 타이밍에, <글로리어스 던>은 광활한 우주를 고향으로 살아가는 bio 크래프트 소녀와 지구인 소년의 만남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bio 크래프트, 즉 우주선 그 자체가 미소녀로 변한다는 설정은 언뜻 신선하지만, 이미 소개된 전함 - 홀로그램을 통한 미소녀 인격 소재와 겹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요. 어쨌거나 이 작품은 본격 SF로 보기에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쉽게 접할 수 있는 boy meet girl 계열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 미묘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바로 관건이 됩니다.

 전형적인 것은 식상함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안정적인 재미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bio 크래프트들은 체스의 계급에 따라 2개의 귀족 계층과 4개의 시민 계층으로 나뉘고 있는데, 히로인인 '티세'가 속한 계급을 보면 확실히 전형적인 전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각각 주어진 '드릴'을 이용해 거대한 bio 크래프트들이 우주전을 벌이고, 천문단위 규모의 공간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모습 등은 과거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스페이스 오페라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줬습니다. 내적으로는 요즘 유행하는 코드, 외적으로는 과거의 향수라고나 할까요? 어느 한 쪽도 신선하지 않다는 것은 약점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굉장한 매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2. 캐릭터 - 눈 가리고 아웅, 눈 뜨고 아웅?


 부제(...)에서 강조한 것처럼, 저는 완전히 티세에게 꽂혔습니다. 감상하는 작품 숫자가 늘어나면서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점점 많아져도 '꽂히는' 캐릭터를 찾기는 그만큼 어려워지고 있었는데, 요 bio 크래프트 공주님(?)은 정말 너무나 깜찍하군요. 우주선에게 반했다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불끈'하던 코우다이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것이 현재의 제 심정.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실 <글로리어스 던>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모습은 캐릭터 설정에서도 드러납니다. 주인공 코우다이는 아버지가 실종된 바람에 젊고 매력적인 어머니 히로미와 함께 살고 있으며, 글래머에 미소녀인 소꿉친구 케이코는 '창문을 넘어 방으로 들어오기' 스킬을 자연스럽게 시전하는, 게임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소녀이지요. 게다가 우등생에 믿음직한 타카오 & 효에이 라는 친구들 + 케이코와 학년 내 미모 1,2위를 다투지만 요상한 말투로 산통을 깨는 미소녀 아오루의 존재로 이루어지는 '평범하지 않은 지인 그룹' 까지, 학원 이능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골 구성이 선사되죠.

 그러나 얘네들은 스스로 그걸 '까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애초에 케이코와 아오루는 미소녀임에도 게임 매니아로 미연시까지 섭렵, 주인공 코우다이조차 생각치 못하는 '설정, 호감도, 이벤트, 루트' 등의 이야기를 꺼내는데요. 이건 사실 케이코 -> 코우다이를 향한 메시지가 아니라, 작가 -> 독자를 향한 선수치기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뻔하다고 욕할 수 있는 부분을 스스로 선수를 쳐, 그 뻔함조차 재미의 한 부분으로 흡수하려는 의도죠. 물론 이 기법(?)은 잘못 사용하면, 캐릭터가 하나의 인물이 아니라 작가가 준비해 둔 말을 내뱉는 인형으로 여겨질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십수년의 경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그러한 솔직함 자체를 충분히 캐릭터의 성격으로 잘 소화시켜 냈죠. 이는 케이코에 주목하면서 작품을 읽으시면 어떤 느낌인지 납득이 가실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메인 히로인 티세의 매력입니다. boy meet girl 작품에서 당연히 girl에 해당하는 메인 히로인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골라잡기 하렘물이 유행하는 요즘에는 오히려 사건의 진행과 함께 등장하는 서브 히로인들의 인기가 더 높아지는 기현상도 심심찮게 발생하죠. 전격문고의 <M.I.B>를 가장 최근의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그렇지만 <글로리어스 던>은 옛날 작품이라서 그런지 - 1권 발매가 2006년 9월입니다 -, 확실히 매력적인 티세 만들기에 주력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양팔을 좌우로 벌리고 파닥파닥' 거리는 것이야말로 티세의 트레이드 마크! 그 외에도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갑자기 차렷 자세를 하거나, 머리를 도리도리 흔드는 등 그녀의 움직임 묘사는 굉장히 많이, 또 귀엽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단순히 '우주인'으로 치부하려는 케이코에게 양팔을 파닥파닥 흔들며 "우주인 아닙니다. bio 크래프트 입니다. bio 크래프트." 라고 주장하는 티세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안아주고 싶더군요(...). 단, 이러한 매력을 완전히 캐치하려면 당당하기 걷ㄱ..가 아니라 '상상하며 읽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대화만 읽을 것이 아니라, 어떤 포즈로 대사를 하는지를 말이지요.


 3. 번역


 이 작품의 번역자는 박정원 씨로, L노벨에서 <크레이지 캥거루의 여름>, <칼리> 등을 번역하셨습니다. 이전 작품들이 그다지 유명세를 타지 못해 박정원 씨의 번역이 그다지 화제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번에 글로돈을 읽으면서 '역시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는 '짱'이라는 호칭이 번역의 경지를 넘어 타이틀에도 거부감없이 쓰이는 현실 속에서, 츤데레/쿨데레와 같은 단어를 그대로 가져오자는 의견이 더 많은 현실 속에서, '티세 짱, 티세 상' 이라는 텍스트를 '티세야, 티세 양' 으로 번역하고, 츤데레를 새침부끄로 당당히 표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거든요.

 전에 오경화 씨의 '팜므파탈 in 스즈미야 하루히짱의 우울' 사건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 번역을 하는 입장에서는 없는 단어라고 무조건 일본어를 갖다 쓰지 않고 바꾸려고 노력하는 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팜므파탈의 경우 한국어로 번역한 것도 아니고 뜻도 일치하지 않으므로 결과에 대한 비난은 들어야 하겠지만, 얀데레를 번역하려고 궁리했다는 사실 자체까지 욕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는 거죠. 크게 보면 말투 역시 번역자에 의해 재창조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같이 한 캐릭터의 비중이 큰 작품에서는 더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박정원 씨가 손을 본(?) 티세는 만족스럽게 귀여웠지만(콩깍지 120%).

by Laphyr | 2009/05/12 18:28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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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onkohan at 2009/05/12 19:34
우와..벌써 감상하신건가요? 빠르시네요..^^;;
티세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츤데레 특성 말고도 저런 귀여운 모습까지..;;
저도 번역에 관해서는 "짱"이라는 호칭을 좀 국내에 맞게 바껴서 나오길 바라는 사람중의 한명입니다만..이걸 그냥 고유명사로 봐야한다는 의견도 있고 말이죠..으음..어찌되었건 번역은 좀 무리없이 볼 수 있겠군요.
Commented by Laphyr at 2009/05/12 22:31
안피소 2권과 함께 입수해서 먼저 화장실에 가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티세코의 매력에 이끌려 바로 완독해버렸네요. 츤데레는 뭐 아니지만 어쨌거나 구매하셨다면 재밌게 볼 수 있으실 겁니다.
이전 시리즈들도 그렇고, 확실히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드는 번역자 중 한 분!
Commented by 악몽의현 at 2009/05/12 19:47
벌써 감상하셨군요. 그런데 전형적인 스토리라... 저는 sf물을 별로 안 좋아해서 안 사게 될듯.... 그리고 번역은 저희 업계 쪽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죠. 아, 그런데 궁금한게 있는데요. 혹시 황금 카드 당첨되셨어요?[응?]
Commented by Laphyr at 2009/05/12 22:32
어쩔 수 없다는 것은 그냥 대충 봐도 상관이 없다는 의미신지?
그리고 황금카드 그게 뭥미 먹는거임? 우걱우걱 (...)
Commented by 세이앤드 at 2009/05/12 21:36
별로 관심을 안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괜찮나 보네요. 구입을 고려해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Laphyr at 2009/05/12 22:34
어지간하면 객관적으로 구매 조언을 해 드리고 싶지만 워낙에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발견한 상황이라 ㅜㅜ 지금은 뭐라 말씀을 드려도 티세 찬양이 되어버릴 듯. 양팔을 파닥파닥... 으으으윽..
Commented by Skeith at 2009/05/12 22:26
sf물인가요?! 은근 좋아하는 장르인데 잘됐군요. 게다가 정발인듯 하니 당장 이번주에라도 가서 질러야겠습니다. <카르발키아 대전기>였던가요?? 이녀석도 sf계열인데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런데 괜찮은 sf물이라니 기대가 크군요.
Commented by Laphyr at 2009/05/12 22:35
게다가 그냥 SF도 아니고, 드릴이닷 드릴!!
드릴로 상대 우주선을 들이받는, 그런 원시적인 플레이. 미사일이나 빔도 없는 건 아니라는데, 상대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드릴 뿐! 이 어찌 로망이 아니더냐.
Commented by 리셋⁴ at 2009/05/12 22:47
정통파면서도 요새 은근히 드문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인지라, 평소의 팔러시를 깨고 질러볼 생각이였습니다. 괜찮은 작품이라고 하니 정말 다행이에요 엉엉. 저 스페이스 오페라 조, 좀 많이 좋아한다능 >ㅃ<?!?!

구입은 한번에 지르는 성격인지라, 네코소기 막권 발매를 기다리고 있네요. 파우스트 좀 빨리좀 내..-_-;;
Commented by Laphyr at 2009/05/12 22:57
저도 원래는 한 번에 지르는 성격이지만 이번에는 J노벨 발매일을 종잡을 수 없는 관계로 --; 먼저 질러버렸네요. 개인적 호감이 많이 가는 작품은 정말 뭐라 추천하기 힘들기도 합니다. 티세만 저 모습을 유지해준다면 우주전 따위 바라지 않습니닷 ㅜㅡ;
Commented by 핌군 at 2009/05/12 23:21
재미있나보구만...너를 믿고 지르겠어!
Commented by 티오 at 2009/05/16 18:36
캐릭터 모에 계열 소설인가요...후어어 =ㅁ=....... 우주전보다는 모에인거군요... 호음...

번역에 대해서는 음..... 전 나름 '새침부끄'라는 표현이 마음에 드는데 말이죠... =ㅁ=;;;

아닌 분들이 더 많은듯 하네요 =ㅁ=;;;

짱이나 상에 대해서는.....솔직히 저는 모르겠어요 =ㅅ=;; 이런 책을 읽은 주 고객층을 생각한다면

원문을 그대로 가져오는게 좋겠지만... '대중성'을 생각한다면 언젠가는 고쳐야 한달까??
Commented by Laphyr at 2009/05/17 00:34
저도 마음에 들더라구요. 귀엽지 않나요 새침부끄..
냉정부끄는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Commented by 윤소현 at 2009/11/23 14:16
작가 후기와 번역 얘기에서 공감합니다~!
Commented by Laphyr at 2009/11/23 17:57
노력 자체가 중요한 것이니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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