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방어'의 한계 - 흔일바 5권


 1. 이미지

 
 국가간의 전쟁이나 세력간의 다툼을 주제로 삼는 작품을 보면, 다양한 특성을 가진 부대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조금 느낌은 다르겠습니다만 이러한 작품의 최고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삼국지 연의를 떠올려봐도, '수성의 오나라', '합비 방어의 장료', '저돌적인 공격력, but 성질은 나쁜 장비', '진창성의 명장 학소' 등은 저마다 뚜렷한 이미지를 갖고 있죠. 물론 연의의 이러한 인물들은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한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서 창출해 나가는 소설 속에서도 이러한 방식은 단골처럼 등장합니다.

 가장 쉽게 나누어 볼 수 있는 것은 공격과 방어입니다. 저돌적인 공격성을 갖고 있는 부대, 혹은 장수는 분명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역할은 젊고 혈기왕성한 남성 캐릭터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주인공의 적으로 등장할 경우 잔혹함과 같은 부정적인 모습까지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철벽의 방어 역시 공격에 못지 않게 확실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은 방어전의 대가, 이러한 호칭은 그 울림만으로도 상당한 임팩트를 주죠. 이 역할은 주로 나이가 지긋하고 경험이 많은 노장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적으로 등장하더라도 엄청난 악역으로는 묘사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이외에도 암살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부대, 정찰에 있어서는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부대, 냉철하고 계산적인 상황 판단으로 작전을 구사하는 장수, 돈과 명예만을 바라며 부하들을 벌레 취급하는 장수를 비롯, 다양한 유형이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결국 '어느 한 쪽에 특화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독자 입장에서 모든 것이 평균적인 어중간한 적보다는 무언가 특출난 방식의 적이 등장하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죠. 또한 작가 입장에서도 만능형 장수를 수식하는 것보다, 장단점이 뚜렷한 장수를 수식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2. 적용



 <흔들흔들 일렁이는 바다 저편> 5권에 등장하는 '애국의 방패' 발라하는 전형적인 방어전 특화의 백전노장 입니다. 그가 이끄는 기사단은 거점을 방어하는 전투에 특화되어 있으며, 단 한 번도 방어전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그야말로 '방패'와도 같은 존재이죠. 하지만 책을 읽은 분이든, 안 읽은 분이든, 그가 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결과는 뻔하게 예측이 가능합니다. 주인공이 진다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등장한 '방패'는, 그야말로 밟고 일어설 '발판'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예측입니다.

 

 


 <신이 없는 세계의 영웅전> 1권에서 등장하는 공화국군의 그랜트 장군 역시, 수많은 전투를 경험해온 방어전의 달인으로 묘사됩니다. <흔들흔들~>의 발라하 장군이 <절대 방어> 능력을 갖춘 라그나 '게르힐데'를 내세운다면, 우주함대를 이끄는 그랜트 장군은 방어에 특화된 입방진형으로 주인공의 함대에 맞서죠. 여기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작가는 위압적인 서술을 통해 아군과 적군의 군세 차이, 경험의 차이 등을 강조하려 합니다만, 결국 그것을 꺾어낼 주인공의 능력 찬양에 대한 포석에 불과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향이 모든 작품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공격"과 "방어"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최상급의 방어 능력을 갖춘 선수보다 초일류급의 펀치력을 자랑하는 선수가 복싱 만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 철벽과도 같은 수비력을 가진 스위퍼보다 송곳같은 슈팅능력을 가진 스트라이커가 축구 만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과 같이, 장르는 대륙 판타지로 전혀 다를지언정 "방어" 보다 "공격"에 좋은 이미지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3. 소설에 있어서의 문제점

 사실 '뒤가 없는 화끈한 공격력'이라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인 스타일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프로토스를 상대하는 저그 박성준 선수와 김준영 선수의 모습을 대비해 본다면 분명히 박성준 선수의 승리에 열광할 수 있는 것은 맞겠죠. K-1에서 긴 리치와 맷집을 바탕으로 좋은 성적을 자랑했던 섀미 슐트 선수가 인기가 별로였던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하지만 소설에 있어서는 다릅니다. 언제나 비슷하게 구축된 이미지가 등장하고, 또 그것이 한정된 결과만을 초래하고 있다면, 그건 이미 식상하다는 욕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샤나, 루이즈 이후 양산되는 츤데레 미소녀들이 욕을 먹는 이유 역시, 그녀들의 행동이 이미 독자가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하다는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방어"의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 '누구에게도 패배할 수 없었던 방어의 대가'를 주인공이 꺾어 낸다는 사실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패배할 것 같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이지, '방어형 장수는 결국 패한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버린다면 안 나오느니만 못한 이벤트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이 문제는 '방어'는 결국 패한다 - 이런 간단한 지적이 아니라,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뻔히 예측이 가능한 내용이 나온다면 흥미가 떨어진다는 것을 참인 명제로 놓았을 경우, 결국은 '작품이 재미가 없다'는 치명적인 감상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흔들흔들~> 5권의 발라하는 이런 면에서 정말 재미없고 실망스러웠으며, 쥬라가 이길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 수 있었기 때문에 - 과정 또한 전혀 납득할 수 없음 - 전체적인 흥미도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이미지'의 폐해는, 비단 대륙 판타지에 한정되는 내용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by Laphyr | 2009/03/18 18:20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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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악몽의현 at 2009/03/18 19:51
방어가 패한다라니!! 방어가 얼마나 위대한데!!!!
Commented by Skeith at 2009/03/18 20:29
읽으면서 공감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 소설 중에서도 방어에 특화된 사람은 결국에는 패배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사실 '공격과 방어는 표리일체' 라는 말도 있는데 방어를 잘하는 누군가는 방어'만' 잘하고 공격에 대해서는 1류가 아닌 것처럼 묘사 된다는 것이 난감합니다. 방어를 잘한다는 것이 방어를 '특히' 잘한다는 것이지 결코 공격을 못한다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죠.
형 말씀대로 어느 한 분야로 특화시켜 놓고 그 부분만 부각 시키는 것이 주인공의 강함을 잘 나타내기 때문에 방어를 잘하는 이들의 수모가 끊이지 않나 싶습니다. OTL
Commented by 지나스 at 2009/03/19 00:05
전쟁물에 등장하는 방어의 이미지...에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 하네요.

크게, 크게, 크게 보면, "결국 라스트 보스는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 까지 이어지겠죠.
"중간보스는 주인공이 랩업하기 위해 존재한다." 는 보너스.

전기물이 됐든 전쟁물이 됐든 일단 주인공이 죽어버려서야 의미가 없으니만큼(...가끔 죽어버리지만;;)
일단 적으로 등장하는 인물, 혹은 집단의 미래는 비슷비슷하다고 봐도 되겠죠.
그래서 이 부분의 뻔함을 감추기 위해 빠른 문체, 화려한 연출, 의외의 반전 등이 필요한 거구요.
양작과 범작, 졸작의 차이는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창과 방패의 격돌을 쓴다면(실험작 한 번 써본 적 있네요;;),
방패를 강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버릴 겁니다.

전력의 차이는 확실한 상황. 하지만 무언가를 위해 있는 힘껏 방패를 향해 돌진하는 창(주인공)과,
뭔가의 이유(예로 부패권력) 너덜너덜해졌지만 명장의 통솔로 있는 힘껏 창을 막는 방패(라이벌)의 대결.

각자가 품고 있는 것을 내걸고 전력으로 싸우는 모습이 멋지게 그려진다면
설령 주인공이 반드시 이겨야 할 상황이라 라이벌의 패배가 확실하다 해도 독자는 읽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여기서 라이벌이 이기고 주인공에게 새로운 길이 보이는 반전까지 겹친다면 크리티컬 히트.

뭔가 잘난 것처럼 적었는데;; 그런 뜻이 아니라 이런 전개도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아. 글 쓰고 싶어지네요;;
Commented by Laphyr at 2009/03/19 16:52
크게 보신 내용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방어 잘한다고 나왔다가 깨지는 애 >>>>>> 조낸 폼잡으며 등장하며 등장했다 죽는 보스
인 것이 현실이죠.. (훨씬 사례가 많다는 의미)

말씀하신 것처럼 양쪽 모두를 부각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으나, 사실 이 부분도 제가
지적하고 싶은 전쟁물의 나쁜 예 중에 포함됩니다.
아무리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졌다고는 해도, 양쪽을 모두 멋지게만 그려버린다면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스타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팀 vs 내가 싫어하는 팀의 구도에서 나오는 승리가 가장 멋지고 짜릿하지,
괜찮은 팀 vs 멋있는 팀의 구도에서 나오는 경기는 내용 자체가 재밌을지언정 끝나고 나면 별 감동이 없다는 겁니다. 이건 비단 스타 뿐만 아니라 스포츠 경기 전체에 통용될 수도 있겠네요.

뻔함을 감추기 위해~ 이 부분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제가 욕하는 위 작품들도 결국은 그걸 못해서 욕을 하고 싶은 거니까요.

Commented by sonkohan at 2009/03/20 19:42
방어전을 통한 승리의 묘미도 상당한데 말이죠..실제 역사에서도 멀리 갈 것 없이 임진왜란의 "진주성대첩"과 "행주대첩"이 방어전으로 승리를 한 경우고..
으음..뭐, 뛰어난 주인공 팀이 어떻게든 이기는 뻔한 스토리는 나중에 가면 식상해진다는 생각을 가지는데, 아쉽죠..이기더라도 지는 모습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재미일텐데 말이죠..흔일바의 아쉬운 점이, 전체적으로 보면 대하소설 같은데, 막상 보면 쥬라를 너무 부각시키는 듯한 원맨스타일의 느낌이 들더군요..1,2권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입니다만..^^;;

p.s : 링크 신고하겠습니다~
Commented by Laphyr at 2009/03/22 18:23
1,2권을 읽고 저도 "설마, 이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서 굉장히 아쉽습니다.
스타크래프트에서도 화끈한 공격에 못지 않게, 정말 말도 안되는 방어력으로 역전에 성공하는 경기들이 더 멋진 경우도 많은데 말이죠..

애초에 흔일바는 주인공 일행이 너무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거의 처음부터 지면 그냥 끝!!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위기가 닥치기가 어렵죠. 대하소설 같은 느낌을 주고는 있지만, 결국은 원맨 + 한 나라 쇼라는 느낌? 이건 비슷한 <하늘종>에서 반대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잃을 것이 있는 주인공과, 그렇지 않은 주인공은 굉장히 다르니까요.
Commented by 사화린 at 2009/03/22 14:27
흠, 흔일바(이렇게도 이 작품을 줄여부를 수 있겠군요 -_-ㅋ;;) 5권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확실히 인물의 획일성에 있어서는 그런 문제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이게 '공격형 인물'보다는 '방어형'에서 더 눈에 띄는건,
공격에 비해 방어가 가지는 특성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공격은 보통 '다음'이 있죠. 공격적인 성향의 인물이 화끈하게 공격을 펼칠때는,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보게됩니다. 공격을 성공하거나, 혹은 실패해서 다음을 노리거나.

그런데, 소설에서 일반적으로 '방어'는 그 다음이 없거나, 설사 있더라도 공격측에 비해 압도적으로
힘든 상황으로 이어지게되죠. '이번에 못막으면 끝이다-' 라는 거랄까요..



인간의 상상력은 끝이 없으니, 얼마든지 새로운 인물 유형을 창조해내는 것도 좋습니다만,
저는 여기가 바로 작가의 기량이 발휘되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네요.

흐름과 결과가 뻔해도, 그 과정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독자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요소를,
작가의 기량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세워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방어로 유명한 장수가 '적'으로 나왔다면,
결국 그것은 스토리 전개상 '뛰어넘을 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분명한 한계이죠.

그렇다면 그 뛰어넘는 과정을 더 박진감넘치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스토리의 의외성과 반전만이 독자들을 몰입시키고 전율케하는 것은 아니니말이죠..




- p.s : 개인적으로 저는, '기본 스펙'에서부터 이미 차이가 극심해서 '결과'는 이미 주인공 일행의
    승리를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완전히 몰입해서 볼 수 있게 한
    '델피니아 전기'를 참 좋아합니다.
Commented by Laphyr at 2009/03/22 18:17
그게 결국은 필력이겠죠. 뻔한 것임에도 뻔하지 않을 것 같지 생각하게 만들고,
결과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함에도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느낌은 언급해주신 <델피니아 전기>가 굉장히 잘 보여주고 있고, 국내 작품에서는 <묵향>의 2부, 다크 레이디에서 그런 느낌이 묻어나왔다고 봅니다.

말씀해주신 공격과 방어에 대한 '일반적인 특성'이라는 것 자체도 조금 문제가 있죠. 물론 언급해주신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일반적인 사고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

공격하면 실패해도 다음이 있고, 방어하면 실패하면 끝이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게 일반적이긴 한데, 실제는 대부분 그렇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게임으로 예를 들자면 총을 들고 적진에 총공격을 펼친다! 공격 실패 = 죽음 = 게임 스코어 상실이라는 개념도 분명 존재한다는 거죠. 많은 분들이 이것을 무슨 RPG나 전략 시뮬레이션처럼 공격 실패 = 위기 = 방어 = 위기 극복 후 다시 공격 이런 공식을 생각해 버리는데, 실제로 현실은 오히려 FPS 게임처럼 공격 실패나, 방어 실패나 어차피 목숨을 잃는 것은 똑같은 경우도 존재한다는 것을 잘 인지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공격했다 실패해도 잘 막아 역전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방어했다 실패해도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역공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말입니다..
Commented by 사화린 at 2009/03/23 08:14
결국 말씀해주신 부분도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말씀해주신대로 '그렇지 않은 경우' (그러니까 공격 실패가 그대로 끝이 되버리는 경우라던가
방어에 실패해도 잘 가다듬어 역공에 나서는 경우) 도 있긴 합니다만,
소설에서 일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경우는 아니니 말이죠.
(아예 없는건 아닙니다만, 사람들의 인식이 그러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소설에서 일반적으로
행하는 공식이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라 생각되네요.)


말씀해주신 '특별한 경우'는 오히려 삼국지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비라는 칠전팔기의 인물때문에 말이죠 -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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