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2일
문학 비평과 정책 결정 ①
문학 비평과 정책 결정은, 어떻게 보면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는 굉장히 골치아픈 고민들입니다. 문학은 인간 개인에 대해서 주목하는 인문학 계열에 속하고, 정책학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는 사회과학 계열이지요. 기본적인 구성논리가 다르고 그것이 활용되는 영역도 다르지만, 두 고민은 분명히 하나의 공통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better>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문학 비평과 정책 결정의 목적
정책의 결정이 사회에 대한 간섭을 의미하는 것처럼, 문학 비평도 작품에 대한 간섭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정책이 사회에 다양한 방면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 비평 또한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독자에게는 작품에서 좀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될 수도 있고, 작가에게도 피드백 효과를 통해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간섭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두 가지 경우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 즉 어떤 형태로든 시장에 개입하는 행위는 그대로 놔두었을 때보다 규제하는 것이 나은 경우에 모두에게 인정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것을 문학 비평에 비유하자면 가만히 놔두었을 때보다 비평을 통해 독자, 혹은 작가에게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되겠죠. 다시 말해 시장에 문제가 있는 경우나, 작품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한나라 초기, 한고조를 이어 왕위에 오른 효문제는 역시 소하를 이어 승상이 된 조참이 놀기만 하는 것을 보고 다그쳐 따진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조참은, "폐하는 선제에 미치지 못하시고, 저 역시 전 승상 소하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신과 폐하가 할 일은 선대에서 만든 좋은 제도를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슬기롭게 대답했지요. 정책이나 비평 모두 마찬가지로, '문제'를 반드시 나쁜 것을 설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좋은 제도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 역시 정책인 것처럼, 훌륭한 작품에 대해 목소리를 내어 작가와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도 훌륭한 영향력을 가진 비평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처럼 정책 결정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간섭이라면, 문학 비평은 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간섭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문학 비평이 직접적으로 작가의 작품을 향상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낼 때마다 악평을 듣는 작품을 계속 연재할 용기가 있는 강심장의 소유자일 것입니다).
#. 문학 비평과 정책 결정의 문제
하지만 문학 비평과 정책 결정은 이렇게 좋은 목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책에서 추진하는 규제가 과연 효율적인지 아닌지, 비평에서 지적한 부분이 사실인지 아닌지 등, 우리가 매양 일상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부분들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도 두 고민은 공통점을 보입니다.
그것은 문제의 해결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은 정책, 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목소리를 담고 있지 않은 비평입니다. 작년의 대선과 이번 총선에서 우리는 이런 정책들을 굉장히 많이 접했습니다. 꿈인지 정책인지 구분할 수 없는 7% 성장, 당을 막론하고 내걸었던 뉴타운 공약 등이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헛소리들이 많았죠. 이것을 비평에 비유한다면, 알맹이가 없고 단지 방향성만을 가진 '비평을 위한 비평'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명확한 근거가 없는 단순한 '싫은 소리'가 들어갈 수도 있고, 정반대로 자신의 소양과 지식을 자랑하며 논리적으로 '까는 글'이 포함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사회과학과 문학은 다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황의 차이는 있습니다. 정책의 경우 머리 속에서 하는 쓸데없는 망상을 내뱉을 경우 민폐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주어 - 국회의원), 문학에서는 혼자만이 느낀 부분에 대해서 얼마든지 감상문을 써볼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그것을 적용시키는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을 집행하려고 하면 당연히 반발이 생기고, '바람직하지 못한 비평'을 내놓으면 당연히 비판하는 의견이 올라오게 되니까요.
여기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 바람직하지 못한 비평'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시겠지만, 바람직하지 못한 비평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 바람직한 정책과 비평, 그렇지 못한 정책과 비평
바람직한 정책인지, 그렇지 않은 정책인지 구분하는 것은 굉장히 쉽습니다. 왜냐하면 국가 행정은 공익이라는 가치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합부동산세 폐지, 출자총액제도 폐지처럼 많은 사람은 손해를 보고 소수의 사람들만 이익을 보는 정책은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표현됩니다. 하지만 그 정책이 모두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부세가 폐지되면 부동산 경기가 좋아질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고, 출자총액제도가 폐지되면 대기업의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 긍정적인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들이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비평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고, 작품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을 통해 여러가지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책에서 공익이 중요한 것처럼, 비평에서는 타인을 납득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대중적인 의견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대중적이지 않은 의견이라도, 그것이 번뜩이는 재치를 담고 있다면 분명히 설득력을 갖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볍게 읽고 편하게 쓴 감상, 비평에서 그러한 부분이 발견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출총제 폐지가 대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기능과 같이 '일부의 가능성'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책이 모두 일장일단을 갖고 있으면서 '장이 많은'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평가되는 것처럼, 비평 역시 모두 일장일단을 갖고 있으면서 '장이 많은' 비평이 바람직하다고 평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이 경우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에 의해 유발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람직하지 못한 비평이라도 좋은 이야기는 받아들일 수 있는 비판적인 수용의 자세가 요구될 것입니다.)
#. 마치면서
정책 결정이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 사회와 떨어질 수 없다면, 문학 비평 역시 정답이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의 의식과 떼어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고 무조건 포기할 수는 없는 것도 인간의 한계입니다. 장점만 있는 정책을 내놓겠다고 계속 고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모든 이를 이해시킬만한 비평을 쓰겠다고 머리를 싸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이는 물론 감상과 비평이 존재해야 함을 조건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느낀대로 책을 읽으면 그만이지, 그런 걸로 꼭 토론할 필요가 있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께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러한 한계성 때문에 정책학에서는 이상적인 모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문학 비평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기로 하고 글을 마칩니다.
#. 문학 비평과 정책 결정의 목적
정책의 결정이 사회에 대한 간섭을 의미하는 것처럼, 문학 비평도 작품에 대한 간섭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정책이 사회에 다양한 방면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 비평 또한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독자에게는 작품에서 좀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될 수도 있고, 작가에게도 피드백 효과를 통해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간섭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두 가지 경우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 즉 어떤 형태로든 시장에 개입하는 행위는 그대로 놔두었을 때보다 규제하는 것이 나은 경우에 모두에게 인정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것을 문학 비평에 비유하자면 가만히 놔두었을 때보다 비평을 통해 독자, 혹은 작가에게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되겠죠. 다시 말해 시장에 문제가 있는 경우나, 작품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한나라 초기, 한고조를 이어 왕위에 오른 효문제는 역시 소하를 이어 승상이 된 조참이 놀기만 하는 것을 보고 다그쳐 따진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조참은, "폐하는 선제에 미치지 못하시고, 저 역시 전 승상 소하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신과 폐하가 할 일은 선대에서 만든 좋은 제도를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슬기롭게 대답했지요. 정책이나 비평 모두 마찬가지로, '문제'를 반드시 나쁜 것을 설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좋은 제도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 역시 정책인 것처럼, 훌륭한 작품에 대해 목소리를 내어 작가와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도 훌륭한 영향력을 가진 비평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처럼 정책 결정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간섭이라면, 문학 비평은 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간섭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문학 비평이 직접적으로 작가의 작품을 향상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낼 때마다 악평을 듣는 작품을 계속 연재할 용기가 있는 강심장의 소유자일 것입니다).
#. 문학 비평과 정책 결정의 문제
하지만 문학 비평과 정책 결정은 이렇게 좋은 목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책에서 추진하는 규제가 과연 효율적인지 아닌지, 비평에서 지적한 부분이 사실인지 아닌지 등, 우리가 매양 일상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부분들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도 두 고민은 공통점을 보입니다.
그것은 문제의 해결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은 정책, 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목소리를 담고 있지 않은 비평입니다. 작년의 대선과 이번 총선에서 우리는 이런 정책들을 굉장히 많이 접했습니다. 꿈인지 정책인지 구분할 수 없는 7% 성장, 당을 막론하고 내걸었던 뉴타운 공약 등이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헛소리들이 많았죠. 이것을 비평에 비유한다면, 알맹이가 없고 단지 방향성만을 가진 '비평을 위한 비평'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명확한 근거가 없는 단순한 '싫은 소리'가 들어갈 수도 있고, 정반대로 자신의 소양과 지식을 자랑하며 논리적으로 '까는 글'이 포함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사회과학과 문학은 다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황의 차이는 있습니다. 정책의 경우 머리 속에서 하는 쓸데없는 망상을 내뱉을 경우 민폐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주어 - 국회의원), 문학에서는 혼자만이 느낀 부분에 대해서 얼마든지 감상문을 써볼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그것을 적용시키는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을 집행하려고 하면 당연히 반발이 생기고, '바람직하지 못한 비평'을 내놓으면 당연히 비판하는 의견이 올라오게 되니까요.
여기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 바람직하지 못한 비평'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시겠지만, 바람직하지 못한 비평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 바람직한 정책과 비평, 그렇지 못한 정책과 비평
바람직한 정책인지, 그렇지 않은 정책인지 구분하는 것은 굉장히 쉽습니다. 왜냐하면 국가 행정은 공익이라는 가치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합부동산세 폐지, 출자총액제도 폐지처럼 많은 사람은 손해를 보고 소수의 사람들만 이익을 보는 정책은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표현됩니다. 하지만 그 정책이 모두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부세가 폐지되면 부동산 경기가 좋아질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고, 출자총액제도가 폐지되면 대기업의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 긍정적인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들이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비평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고, 작품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을 통해 여러가지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책에서 공익이 중요한 것처럼, 비평에서는 타인을 납득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대중적인 의견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대중적이지 않은 의견이라도, 그것이 번뜩이는 재치를 담고 있다면 분명히 설득력을 갖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볍게 읽고 편하게 쓴 감상, 비평에서 그러한 부분이 발견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출총제 폐지가 대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기능과 같이 '일부의 가능성'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책이 모두 일장일단을 갖고 있으면서 '장이 많은'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평가되는 것처럼, 비평 역시 모두 일장일단을 갖고 있으면서 '장이 많은' 비평이 바람직하다고 평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이 경우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에 의해 유발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람직하지 못한 비평이라도 좋은 이야기는 받아들일 수 있는 비판적인 수용의 자세가 요구될 것입니다.)
#. 마치면서
정책 결정이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 사회와 떨어질 수 없다면, 문학 비평 역시 정답이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의 의식과 떼어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고 무조건 포기할 수는 없는 것도 인간의 한계입니다. 장점만 있는 정책을 내놓겠다고 계속 고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모든 이를 이해시킬만한 비평을 쓰겠다고 머리를 싸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이는 물론 감상과 비평이 존재해야 함을 조건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느낀대로 책을 읽으면 그만이지, 그런 걸로 꼭 토론할 필요가 있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께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러한 한계성 때문에 정책학에서는 이상적인 모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문학 비평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기로 하고 글을 마칩니다.
# by | 2008/11/22 01:50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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