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우리집의 여우신령님 7권


 여러 등장인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한계와 정체가 느껴지는 단편 모음집이었다는 것이 최종적인 감상. 여우신령님을 좋아하고, 그들에 의해 펼쳐지는 이야기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한 권이 되겠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굳이 읽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는 다분히 외전격인 성격의 7권입니다.

 애초에 7권은 여기저기에 수록되었던 단편들이 모여서 만들어졌습니다. 심지어 휴대전화용 소설 사이트에 연재되었던 에피소드도 있더군요. 본편의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출연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독립적인 작품으로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이야기 자체는 별달리 본편과 연관성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캐릭터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팬 디스크 같은 느낌이네요.

 그래도 각 에피소드는 대체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나가츠키의 장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휴대전화용 소설 사이트에서 소개되었던 글인데요. 상대적으로 그 내용은 굉장히 짧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오루를 주인공으로 작품이 갖고 있는 신비하면서도 어쩐지 중요한 부분에서 긴장감이 결여된 것 같은 독특한 냄새가 잘 드러나 있더군요. 짧은 글 속에 분위기를 녹여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그만큼 자신의 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모츠키의 장은 온천여행에 당첨된 노보루가 쿠우와 함께 단둘이 오붓한 한 때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허름한 여관에서 수상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애초에 본격 미스터리 같은 것을 기대할 장면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즐겁게 머리를 굴릴 수 있는 상황이 볼만 하더군요. 신령이나 요괴가 등장하는 작품 특유의 배경이 있어서 그런지, 제시된 단서 이외의 결말을 기대하게 만드는 흐름이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쿠우가 제멋대로 날뛰긴 했지만, 방향을 잘 잡아서 그런지 의외로 굉장히 침착한 어른처럼 느껴지더군요.

 처음에 작품의 정체(停滯)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이는 외전에서 만날 수 있었던 캐릭터들의 관계에서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컸던 것이 바로 사쿠라 미사키 양.

 작품 초반에 그녀는 시점은 노보루의 일상과 비일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재미를 부여해주었는데, 쿠우와의 만남 이후 입지가 애매해졌다는 것이 이번의 단편에서도 잘 드러났습니다. 노보루를 짝사랑하는 그녀를 좀 더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면 노보루의 일상에 재미있는 사건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본격적인 사건에는 끼어들지 못한다는(쿠우의 기억 조작 이후) 한계가 설정된 이후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번 단편에서는 유일하게 정상적인 히로인으로서 여자아이다운 귀여운 모습(일러스트를 포함하여)을 듬뿍 보여주고는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입장을 탈출할 가능성을 전혀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작가가 생각이 없는 것일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 생각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죠. 어느 쪽이든 부정적인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무츠키의 장의 어중간하게 부드러운 분위기는 여우신령님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권에서 굉장히 큰 사건을 다룬 이후 쿠우와 코우가 상주하면서, '어떤 이야기든 펼쳐질 수 있는 배경'은 갖추었지만 '어떤 이야기가 펼쳐져야 하는지는 모르는 불확실성'도 생겨나버린 것이지요. 2권에서 6권까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거대한 ing로 이어질 수 있는 실마리는 크지 않았으며, 이는 독자는 물론 작가마저 힘이 빠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전 판타지 소설들이 대부분 '여행'을 주제로 삼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확실하게 주목해야 할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긴 시리즈임에도 활력을 잃지 않는 작품들은 긴 '여행'과 같은 형태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모험이든, 좋아하는 여자아이와 함께하기 위한 노력이든, 숨겨진 악의 세력을 무찌르는 싸움이든간에 말이죠. 여우신령님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에는 성공했지만, 작품 전체가 가져야 할 거대한 줄기를 선택하는 과정이 조금 미숙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물론 아직 실망하는 것은 이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마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작가가 좀 더 원숙한 모습으로, 보다 준비된 뛰어난 장편 에피소드(2~3권가량 이어지는?)로 돌아온다면 이런 염려는 깨끗이 떨쳐버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게 문제......)

by Laphyr | 2008/11/04 17:41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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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keith at 2008/11/04 18:05
재미있게는 읽었지만 묘하게 기운이 빠져서 2권까지만 읽고 그만둔 작품입니다. 어느새 7권까지 나왔군요;
Commented by 제목없음 at 2008/11/04 18:25
늘 이 작품 읽을때 생각을 안하게 되는건데 라피르님의 포스팅에서 다시 느끼게 되네요. 작품 자체의 한계성...
저번달 쯤에 모종의 계기로 2ch 우리집의 여우신령님 BBS를 뒤지게 되었는데 그쪽에서도 "작가가 큰 생각없이 글을 쓴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바 있고 제발 8권좀 나왔으면 하는 리플이 이어진걸 본적이 있습니다. 물건너나 여기서나 좀 작품을 읽으신 분들은 다 느끼는 듯한 공통점인데, 미사키 사쿠라의 위치도 그렇고 작품 자체의 전개도 그렇고 시바무라 진 선생 스스로가 크게 집중해서 쓰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가 꽤 나왔더군요.
시바무라 진 선생이 다른 작품 쓰는것도 있기도 하고(2ch의 여우신령님 팬들의 이야기는 그냥 읽을만한 수준), 여러모로 작품에 크게 집중을 하지 않고 있는것 같습니다. 참 안타까운 부분이죠...

이 7권에 이르러서 결국 단행본 하나 나오는데 1년 넘게 간격이 벌어져버렸습니다. 2ch쪽에서도 연재 중단인가 말이 많았는데 일단은 좀더 기다려 보자는 결론을 내고 있고 저도 팬으로서 기다릴수 밖에 없다는 상태 그대로 입니다. 다른건 다 좋으니 제발 빨리 8권 나와줬으면 싶네요.


감상:역시 팬이라면 읽을수 밖에 없는 수준의 재미는 있음. 문제는 올해안에 8권 발매 예정이 없다는거...
Commented by 사화린 at 2008/11/04 18:27
요즘 느끼는 건데, 외전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게 아닐까 싶네요.

고식처럼 캐릭터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데에 집중하는 외전이 있는가 하면,
9S처럼 캐릭터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데서 그치지않고 본 스토리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종류도 있고 말이죠..
Commented at 2008/11/04 18: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악몽의현 at 2008/11/04 19:10
재미는 있지만, 좀 많이 가볍죠. 그리고 사쿠라 같은 경우는 아마 비일상과 일상에서 일상의 대표 캐릭터로 계획한 거 같은데.... 여러 의미로 약하죠.
Commented by 타즈 at 2008/11/04 19:43
저는 갈수록 다운되는 모습에 보고 실망감을 감출수 없었습니다.
7권 후에 후속권이 나오지 않고 있고, 시바무라 진씨가 다른 작품에 열의를 가지고
집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완결을 깔끔하게 해 주었으면 하는데 7권 후기가 또 좀 의미심장 하지요.
일단 기다리고는 있는데 너무 길어지는 느낌입니다.
Commented by Laphyr at 2008/11/05 01:19
Skeith// 아니 그래도 2권까지는 기운이 빠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3~4권의 이야기는 나름 긴장감도 있었던 것 같고 말이야..;; 아쉽구만

제목없음// 아 제목없음 님이 댓글을 써주시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는데 역시 장문의 리플을ㅋ
어쨌거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뿐입니다. 좀 더 꾸민다면 얼마든지 멋진 이야기가 나올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는데... 사실 이렇게 기대하게 만드는 배경이 완성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말이지요.
2ch 쪽의 반응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저희들이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를바가 없는 것 같네요. 작품에 좀 더 애정을 쏟아주시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다른 작품이 대박인 것도 아니고 =_= 뭔가 큰 스토리 하나 준비하고 계신 것이면 좋겠습니다.

사화린// 고식은 뭐 까놓고 말해서 팬서비스 같은 느낌입니다. 나인에스는 치밀하게 본편과도 이어지는 이야기가 백미인것 같구요. 솔직히 여우신령님 7권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그냥 완성된 캐릭터를 갖고 작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느낌만 있는 것 같습니다.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있지 않았다면, 솔직히 이런 이야기는 팬픽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겠지요.

악몽의현// 사쿠라가 어떤 의미에서 약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캐릭터 자체의 포텐셜을 작가가 제대로 이용해주지 않는 것을 굉장히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은 즉, 캐릭터의 매력 자체는 충분하다고 느꼈다는 것이죠. 사용을 제대로 못하는 부분이 약하다고 말씀하신 건가요?

타즈// 다른 작품도 열의를 갖고 집필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텀이 너무 긴 것이 사실이죠. 소재는 특이하지만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고.. -_-;
7권 후기를 쓸 당시에는 다른 작품 발매 전이었으니 그 쪽에 더 신경을 쓰고 계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니 한 쪽이라도 좀 팍팍 내주는 모습을 보여주시면... 패러사이트 문이나 하늘종으로 외도하다가 음양의 도시 5권을 내주는 와타세 소이치로 씨처럼 기대라도 할텐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결국 at 2017/09/17 14:10
결국 2017년, 시바무라씨는 일반 소설에 전념하는군요.
시간의 세월동안 잊히지 않는 아쉬운 작품이였습니다.
Commented by Laphyr at 2017/10/04 18:49
그렇게 되었군요.
라노베 작가분들도 이제 10여년이 지나면서 많이 다른 길을 걷는 분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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