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강각의 레기오스 1권


 다른 작품 감상을 쓸 때도 몇 번씩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라이트 노벨에서도 개연성과 당위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떠한 비난을 받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정의소녀환상이 잘 보여준 사례가 되겠지요. 무난한 치유계라면 모를까, 조금 특별한 이야기가 펼쳐질 때 그것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면 여러 부분에서 독자에게 비판을 받는것은 피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강각의 레기오스를 읽으면서, 그러한 부분을 굉장히 부드럽게 처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세계는 오염수 등에 의해 종말에 가까운 상황에 몰려 있으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장소인 '레기오스' 라고 하는 엄청난 물건은 연금술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설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거기다 이 '레기오스' 들은 각자 상업 도시, 학원 도시, 무예 도시 등 고유의 전문적인 특징을 갖고 있고, '영역 싸움' 이라는 이름 하에 도시의 사람들끼리 전쟁을 벌이고 있죠. 그 전쟁은, '오염수의 위협에 맞서 특수능력에 눈을 뜬' 인간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독특한 환경 아래에서의 학원 배틀물을 펼쳐내려고 굉장히 무리를 한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들이 어떻게 특수능력에 눈을 떴는지, 오염수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레기오스 사이를 운행하는 버스의 존재이유는 무엇인지, 주인공인 레이폰이 싸움에 휘말려드는 가장 큰 계기인 영역싸움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 100% 납득하기엔 어려운 부분들이 지적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자연스러운 설정과 이야기 진행으로 그러한 지적이 나올만한 타이밍을 최대한 지우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어설픈 부분이 있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 수 있는 아슬아슬하게 독특한 세계관인데, 이것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세밀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에 파고들 틈이 없다는 것이지요. 약간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어지는 이야기가 그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흥미롭다면, 충분히 잊어줄 수 있는 것이 라이트 노벨이라는 장르이니까 말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작가의 소설이나 작가 지망생들의 연재작들을 읽다보면, 설정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이나 어설픈 문장력은 둘째쳐도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 중 하나가 이러한 개연성의 영역일 것입니다. 작가는 재미있다고 쓰고 있는데, 독자는 왜 여기서 이런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지 모르므로 즐길 수 없다는 것이죠. 강각의 레기오스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훌륭한 도입부를 갖고 있으며, 이야기 자체도 상당히 흥미롭기 때문에 즐겁게 2권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글루스 가든 - 라이트노벨을 읽어봅세

by Laphyr | 2008/10/30 02:25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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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사화린 at 2008/10/30 05:56
확실히 강각의 레기오스는 '개연성'부분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 외의 부분에서 아직까지 눈에 띄는 모습이 보이지 않음에도
다음권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이죠 -_-ㅋ


글의 진행이나 인물의 행동에 대해서 무리하는 부분이 없으며,
세계관 또한 '많은 즐길거리'를 보장하고 있기에 앞으로가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Commented by 타즈 at 2008/10/30 06:30
드디어 읽으셨군요. :>
저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것이 "왜 인물들이 이런 일을 하는가" 에 대한 이유가
인류를 몰아붙이는 배경에 있다고 짚었는데 개연성이라는 단어로 축약해 볼 수도 있네요.

확실히 레기오스 시리즈는 너무 깔끔해서 소름돋을 정도의 작품이니까요 -_-b
Commented by Laphyr at 2008/10/30 10:35
사화린// 솔직히 구성 자체만 놓고 보자면.... 욕 먹는 먼치킨 학원물과 큰 차이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과거를 갖고 있는 주인공은 등장 처음부터 킹왕짱 세고, 주변에는 여자가 자연히 꼬이고 있고, '실력은 있지만 협동이 안되는 문제아 집단' 요런 소재도 엄청 흔한 거니까요.

말씀하신대로 무리하는 부분이 없어서 저런 요소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고, 결국 등장하게 될 다른 부분에도 기대를 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타즈// 배경을 포함해, 강각의 레기오스에서 가장 잘한 부분은 '무대를 잘 설치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네요. 어떤 작품이든 그 배경을 독자들에게 펼쳐보이는 과정이 중요한데, 그런 부분이 너무 매끄럽게 잘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국식 양산형 판타지를 쓰는 작가들이 꼭 한 번 교과서로 삼았으면 싶은 느낌이랄까요?
Commented by 지나스 at 2008/10/30 12:46
내년 첫쿨 애니로 발표도 났고... 1권 정도는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 중입니다(으음).

설정의 빈공간은 어느 정도 용납하지만 개연성의 부족은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입니다만...
(개인적으로 나인에스 8권 같은 것. 머리 좋은 인간이 아무도 없더라.)
개연성으로 설정이 덮이는 거군요. ...흥미롭네요(여러가지 의미로).
Commented by 까초니 at 2008/10/30 16:23
흔한 캐릭터 설정들이지만, 작가의 실력인지 이야기 진행이 너무나 깔끔했습니다.
애니화도 진행되고 있으니 빨리 2권이 읽고 싶어지더군요.
Commented by Laphyr at 2008/10/30 21:18
지나스// 1권만을 본 감상으로도 애니에 정말 걸맞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절한 판타지에 다양한 캐릭터, 전투 씬 등 애니에서 갖추어야 할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니까요. (솔직히 1권만으로는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요..)
저도 의도적으로 빤히 들여다보이는 허술한 그물 - 그러나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 같은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편이긴 한데, 이 작품은 좀 용서가 되더군요.

까초니// 맞는 말씀입니다. 이런 것을 바로 실력이라고 표현해야겠죠.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며, 타즈님의 말에 의하면 5권 이후가 더욱 재미있다고 하니 더욱 기대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keith at 2008/10/30 22:36
아, 이거 무지하게 재미있게 읽었죠. 지금도 2권이 나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간만에 라노베중에서 멋진 녀석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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