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코노클라스트! 1~3권

 (오른쪽은 본래 1,2권까지 일러스트를 맡으셨던 OKAMA 씨 표지의 1권이고, 왼쪽은 kyo 씨 표지의 1권 입니다. 같은 캐릭터를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확실히 작가의 표현대로 '육감적인' 희무녀들을 만나기에는 kyo 씨의 일러스트가 낫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네요.)



 1. 이코노클라스트의 골격?



 이 작품을 읽고, 작가인 사카키 이치로 씨는 의외로 대중적인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판타지 세계를 접해온 한국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었던 <스트레이트 재킷>도 그랬고, 대중적인 모에 요소와 하렘 코드를 잘 융합시킨 <매지션즈 아카데미>도 마찬가지. 폴리포니카 크림슨이야 큰 줄기가 따로 있다고 치더라도, 크림슨만의 매력 역시 배경 설정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죠.

 <이코노클라스트!> 도 비슷합니다.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고 가상의 영웅을 동경하던 한 평범한 고등학생 소년 쇼고가, 갑자기 판타지 세계로 소환되어 구세주로 추앙받으며 '적'과 싸우는 구도를 갖고 있거든요. 이렇게 판타지 세계로 건너가는 형식의 이야기는 따로 예를 들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쇼고는 '적'과 싸우기 위해 '이코노클라스트'라고 하는 거대 로봇에 탑승하게 되는데, 판타지 세계의 사람들은 이것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유일한 파일럿이자 영웅이 됩니다. 로봇이 라이트 노벨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소재는 아닙니다만, 비현실적인 조치를 통해 신경을 동조시킨 로봇과 주인공이 하나가 되어 싸우는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에서 상당히 자주 만나볼 수 있는 얘깁니다.



 2. 쇼고, 범인(凡人)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모습



 '한 줄 짜리 감상은 무조건 쓰레기다!' 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은, 그 한 줄이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작품의 내용을 지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초기부터 판타지 소설을 접해온 독자들은 '현실의 주인공이 판타지 세계로 넘어가는 작품은 저품질 양산형이다!' 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등장했던 차원이동물 작품들이 대체로 독자의 만족을 얻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실제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책 대여점 출고를 목표로 '찍혀진' 작품들 중에는, 작가가 글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준이 낮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답답한 현실에서 판타지 세계로 날아간 주인공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고, 스스로가 현실에서 할 수 없었던 자유분방한 행동을 해나가는 방식이었죠. '작품을 완성시킨다'는 의식보다는, '글을 쓰면서 논다'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수준이 낮은 글들을 대여점에서는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코노클라스트!>에 등장하는 쇼고 역시 처음에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가 꿈꾸던 영웅 -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며 한 손에는 검을, 한 손에는 미녀를 끼고 마왕을 물리치는 남성 - 의 모습은, 초기 국내 판타지 작가들이 작품 내에서 토해낸 스스로의 환상과 무척 비슷합니다. 아니, 애초에 '구세주'인 쇼고를 모시기 위해서 5명의 미소녀가 무녀로 준비되고, 세계를 구할 영웅으로 떠받들어질 준비가 되어있는 만큼 이 작품의 설정이 더욱 노골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쇼고와 함께 날아온 사촌 여동생 카린의 존재를 통해 '영웅' 쇼고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적나라하게 평가하는가 하면, 그토록 바라던 '영웅'의 자리에 오른 쇼고 자신이 겪는 내적 갈등에 대해서도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초기 국내 차원이동물이 '환타지 속의 환타지'를 그려냈다면, 확실히 이 작품은 '환타지 속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다른 세계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 것인가? - 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물음을 통해서 말이죠.

 사실 이 부분도 이미 많은 작품들이 다루어온 문제입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것은 이것, 즉 '현실'의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벽' 으로 보고 있는지, 아니면 떠안고 가야 할 '짐' 으로 보고 있는지의 시각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구도를 갖고 있는 <제로의 사역마> 에서도, 사이토가 루이즈나 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아진 상태에서 지구를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에피소드가 분명히 다루어지고 있죠. 하지만 그는 거기서 '지금의 현실' 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고, 자신을 생각해주는 루이즈에 대한 감정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이후 그려지는 대부분의 사이토는 너무나도 '현실'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이것은 내면의 약한 부분을 극복했다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무척 멋진 모습으로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측은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돌아갈 방법을 모른다는 것을 변명으로 내세운다 해도, 그는 변화를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쇼고 역시 처음에는 인형처럼 아름다운 다섯 명의 희무녀들의 환대를 꿈처럼 여기며, 거대로봇 이코노클라스트를 타고 인류의 적인 '대행자'와 싸우게 되자 기대에 가득 차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후 환타지 세계 속에서의 '현실'을 만나게 되고, 평범한 고등학생 - 우리와 가장 가까운 입장의 주인공 - 이었던 그는 결국 영웅의 꿈에서 깨어나고 말죠. 높은 절벽에서 떨어질수록 아픔이 심한 것처럼, 그는 너무나 큰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깨어지자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수로라도 '인간을 죽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쇼고는, 너무나 평화로운 세계에 살고 있었던 만큼 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사실 지나치게 많은 부분이 이러한 그의 상태를 그려내는 데 할애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라이트 노벨에서는 물론,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을 너무나 쉽게 접해온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주인공이라는 소년이 실수로 인간을 죽였다고 해서 1권이 넘는 분량에 걸쳐 암울 상태에 놓여있는 것은 답답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오히려 그 답답함이, 어떻게 보면 더더욱 '보통사람 쇼고'의 모습을 완성시키는 데는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 취향을 타는 소재, 캐릭터와 구도의 아쉬움


 
 배경 설정이 비슷하다고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소재를 사용함에 있어서 한계는 올 수 있습니다. <이코노클라스트!> 역시 조금은 다른 작가의 관점을 통해 영웅의 모습을 다르게 그려내고는 있지만,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상대적으로 실망스럽더군요. 환타지 세계로 넘어온 영웅과, 그것을 주모한 집단 - 레니게이드 - 가 취해야 하는 행동이 한정적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제일 아쉬운 것은 쇼고의 갈등에 못지않게 작품의 전면에 드러나 있는 제1의 희무녀, 멜리니의 마음고생 입니다. 그녀는 5명의 희무녀 중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과 미모를 갖춘, 이른바 히로인 캐릭터 입니다. 오직 구세주를 모시는 것만을 위해 살아온 그녀는 처음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만을 중시하지만, 괴로워하는 쇼고를 보면서 그녀 역시 혼란을 겪게 되는데요.

 그녀가 겪는 혼란이란 다름 아닌 스스로의 이중성 문제입니다. 울며 슬퍼하는 쇼고에게 상냥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멜리니와 그가 괴로워 하면서도 '대행자'를 물리치는 모습을 보고 차가운 웃음을 흘리는 멜리니, 목적을 위해 자라온 지금까지의 이성과 막 깨어난 상냥한 감성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죠. 쇼고의 고민과 맞물려 그녀의 고민 역시 작품의 흐름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답이 너무 뻔히 보이는 갈등이라는 지적을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쇼고를 소환하고 이코노클라스트를 만든 장본인, 비밀결사 레니게이드 수장들의 면모입니다. 총 5명으로 이루어진 수장들은 간단하게 '가장 뛰어난 리더', '말만 앞서고 머리는 빈 수장 x 2', '강직한 무인', '젊지만 무얼 꾸미는지 알 수 없는 인물' 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만... 이들을 통해 진행되는 음모 역시 너무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흥미를 잃을 수 있습니다. 말만 앞서고 머리는 빈 수장들이 사실 실세였다면 모를까, 지금의 전개로는 어떤 캐릭터에 의해서 사건이 진행되고 갈등이 생겨날지 뻔히 보이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이코노클라스트 그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작가는 "이번에는 로봇물을 써봤습니다." 라고 스스로도 부끄러운 듯 후기에 적어놓았는데요. 사실 아무리 엄청난 묘사능력을 갖춘 작가라 하여도, '거대 로봇의 전투'를 실감나게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마법과 과학 기술이 묘하게 융합된 모양의 이코노클라스트 역시 예외는 아니죠. 가장 아프게 꼬집는 말은 역시 '취향을 많이 탈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될 것 같습니다.

 숨 가쁘게 중계되는 작업원(건담으로 따지자면 아스토나지 같은 애들이겠죠)의 대사, 폭음 소리와 함께 결합 부위의 폭약 탄피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모습, '기적(여기서는 마법과 비슷한 의미)'의 힘을 사용한 의사신장이 분리되는 표현 등은 분명 실감나고 현실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걸 즐길 수 있느냐? 없느냐? 의 문제일 것입니다. 메카닉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에반게리온이나 건담(요즘 나오는 슈퍼로봇 계 건담들 말고 옛날 꺼)류 작품을 떠올리며 '오오오!' 하고 마음 속으로 탄성을 지를 수 있겠지만.. 그게 재미없다면 그냥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일 뿐이니까요. 

 
 4. 추천 & 비추천

  
 하지만 이 작품이 굉장히 쉽게 읽히는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션 감상 이후 책을 접했던 폴리포니카 크림슨보다 술술 읽히는 느낌이었으며, 그 속에서는 어느 정도 대중적인 흥미 요소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 '나는 라이트 노벨에서조차 현실을 찾고 싶지는 않다'는 분에게는 그다지 권장하고 싶지 않네요. 그런 분들이라면 쇼고의 행동에 공감이 가기는 커녕, 짜증만 나실 것 같습니다.

by Laphyr | 2008/09/17 01:30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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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셸먼 at 2008/09/17 02:32
어라라, 전 스트레이트 재킷의 세계관이 무지하게 신선했는데 말이에요;;
Commented by Laphyr at 2008/09/17 02:39
세계관 + 등장인물을 생각해본다면 그다지 참신한 편은 아니었죠.
비일상과 연결되는 과거를 감춘 남자 주인공과, 돌아올 현실을 의미하는 히로인의 구도였으니까요.

물론 기계와 마법이 공존하며, 구속구와 마족이라는 독특한 개념이 큰 부분을 차지했었던 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K-2 소총이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K-10 (은 없지만;) 을 멋지게 묘사했다고 전쟁물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tmhr at 2008/09/17 11:01
스토쟈케랑 스테프리랑 세계관이 묘하게 연동되는것이 무척 쇼킹했던 기억이 납니다.

것보다 최근작 디스퍼레이트 시리즈는 약간 스토쟈케같기도 하고 말이죠...

키미보쿠도 5권치고 꽤 재밌는 작품이었습니다.
Commented by 靑河瀾 at 2008/09/17 21:59
앞으로 이야기 다이제스트를 보니 굉~장히 생각보다 다크하다고 해야될까..... 확실히 우리나라 이고깽물에 비해서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쇼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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