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21일
[감상] 인크루트 스타리그 36강 H조 - 돌아온 총사령관
오늘의 송병구 선수는 네임 벨류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플레이를 통해 증명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의 원종서 vs 박수범 전에서 눈을 완전히 버렸기에 더더욱 오늘의 경기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의미에서는 원종서 선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_-;
이번 36강 체제의 눈속임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만, 피씨방 리거에 대한 동정론에 대한 반론으로 오늘과 같은 조편성을 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1경기에서 승리한 이학주 선수의 시각에서의 생각이긴 하지만, 적어도 24강 위치에서 기다리는 송병구 선수보다 오히려 플토전만 연습하면 되는 테란의 입장이 괜찮지 않았나 싶기도 했거든요. 병구 선수가 인터뷰에서도 신 맵의 연습이 부족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가 올라올지 모르는 전 스타리거의 입장도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더군요.
어쨌든 1차 경기에서는 이학주 선수가 "테란"의 모습을 잘 보여줬습니다. 서기수 선수가 프로리그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인상적인 힘으로 대항하긴 했지만, 솔직히 1경기에서 뻔한 셔틀 공격을 감행한 모습이나 3경기 안드로메다에서 온리 질드라로만 테란의 지상병력을 상대하려는 모습은 "아직 양산이구나" 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더군요. 물론 드랍쉽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이학주 선수가 잘한 면도 있었겠지만, 르까프 테란들이 프로리그 개인전에서 보여줬던 특색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뭐 솔직히 이 부분은 이학주 선수가 오래된 선수이지만, 하부 리그까지 제대로 챙겨보지 않았던 제가 선수의 특징을 잡아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지만요.
오늘 경기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최종진출전 1경기, 이학주 vs 송병구 in 플라즈마 였습니다.
아무래도 1차전 서기수 선수와 비교를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셔틀로 견제를 시도했고, 나중에는 결정타를 위해 캐리어를 준비했죠. 근데 한 선수는 완전히 실패했고, 또 한 선수는 멋지게 승리했습니다.
사실 요즘 플토 vs 테란전에서는 웬만큼 넓은 센터를 가진 맵이 아닌 이상, 테저전에서 뮤탈 테러가 나오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태운 셔틀이 자주 등장합니다. 뮤탈이 테란의 진출을 늦추고 후속 병력을 끊어먹으면서 저그의 3가스 확보 혹은 체제 변환을 통한 승리공식을 세워나가는 것처럼, 테플전의 셔틀 플레이 역시 견제를 통해 자원 수급을 방해하거나 병력을 끊어 진출을 늦추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도 그런 장면이 정석적으로 연출되다보니, 그것을 "꼭 거쳐가야만 하는 단계"로 여기는 듯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등장한다는 부분입니다. 1차전 1경기에서 보여진 서기수 선수의 셔틀은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레이스가 있는 것을 이미 확인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소수 병력 드랍은 '나 이렇게 공격할 의도가 있으니까 병력 함부로 전진하지 마' 라는 어필을 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했습니다.
셔틀 드랍을 통한 견제는 테란 선수로 하여금 '아, 상대의 견제 공격이 무서우니 좀 웅크려서 수비를 할 필요가 있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격 시도에 의한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고, 서기수 선수의 견제는 '저 선수에게 심리적으로 내가 공격하려는 것처럼 느끼게 해야겠다' 는 것이 뻔히 보이는 공격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드랍된 병력들은 제대로 컨트롤되지 않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적 본진에 올라간 드라군은 가만히 서서 건물 때리다가 뒤따라 올라온 벌쳐에게 허무하게 맞아죽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최소한 적의 본진이라도 더욱 살피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승리를 위한 선수의 의지가 아니었나 싶어요.
어쨌든 그에 반해 송병구 선수는 약간 느린 타이밍의 리버 견제를 통해 7시쪽 멀티를 안전하게 확보하고, 지상군을 뿜어낼 수 있는 체제를 완비합니다. 테란의 전진을 견제로 최대한 늦추고, 충분한 병력을 확보한 다음 정면에서 조이기 라인을 뚫어낸다는 정석적인 플토의 승리공식을 그대로 보여주더군요. 뭐 첫 번째 교전에서 리버가 빨리 죽은 흠이 있긴 했지만, 그 이후로 보여준 중앙 교전 + 후방 교란은 그야말로 조이기 라인을 형성하며 전진하는 테란을 상대하는 교과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2경기는 초반부터 어느 정도 기울어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 위원이 말한 '기세'라는 부분에 대해서 경기 내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들도 인간인 이상 그런 부분에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죠. 탱크 뒤에 숨어서 총도 안 쏘던 마린의 모습, 캐리어가 나올 때까지 까맣게 칠해져 있던 이학주 선수의 7시 맵 화면 등은 그런 부분이 많이 작용했다는 것이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임원기 선수만 두 번 꺾고 올라간 마재윤 선수에게 '부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봤을때 이학주 선수를 꺾은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WCG 예선과 스타리그 36강을 통해, 특징이 없기에 '무결점의 총사령관'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가 유연성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 박지수 전에서 예상치 못한 지형을 이용한 패스트 캐리어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오늘 왕의 귀환 경기는 초반 4드라군 푸쉬 성공 이후 굳이 캐리어를 가지 않아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캐리어 전환을 통해 '완벽한' 승리를 거둔 점에서 그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엄 위원이나 캐리 해설도 이야기한 것처럼, '패배의 충격이 오래갈 수 있는', '벽이 느껴지는' 그런 경기를 이학주 선수에게 선사한 것은 덤이라고 할 수 있겠고 말이죠.
뭐 '송병구의 테란전은 원래 강력하다' 는 이야기를 반론으로 할 수 있겠고, '대 저그전에서는 아직 A급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도 제가 발견한 유연성이 아직 제대로 여물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테란전은 원래 강력했어도 완벽하지는 않았으며, 융통성 측면이 부족했다는 것은 대 이영호 전에서의 패배들이 말해줬습니다. 운영의 묘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유연성, 센스가 필요한 만큼, 이러한 모습은 분명히 병구 선수가 긍정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저그전은 더더욱 극복이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_=)
# by | 2008/08/21 02:59 | = 온라인/비디오게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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