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크루트 스타리그 36강 - 박지수의 타이밍을 깨부순 공명토스

 요즘들어 르까프 선수들의 활약 덕택에, '설정 안티'의 재미를 듬뿍 맛보면서 즐겁게 경기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윤열 선수를 중심으로 하는 팬택-위메이드 안티였다면, 제대 이후로는 르까프 안티를 설정하니 매 경기마다 비 르까프 선수를 응원하게 되니 흥미진진하네요. 그만큼 개인리그 & 프로리그에서 고루 활약해주고 있기 때문이겠지만요.

 어쨌거나 요즘에는 그 선두로 꼽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박지수 선수였습니다. 이제동 선수는 기세가 조금 꺾인 느낌이 있는 반면, 박지수 선수는 한창 기세가 좋고 안티질을 하기 좋은 종족 테란이니까요. 오늘도 WCG 예선과 스타리그 36강에 모두 출전하면서 저를 즐겁게 해줬습니다.

 온게임넷에서 엄옹이 추상적인 별명을 갖다 붙이길 좋아한다면, MBC게임에서는 그럴듯한 수식어를 끌어다가 자막처리하여 시청자의 뇌리에 선수의 별명을 강제입력 시킵니다. 그 유명한 '날카로운 빌드의 귀재 블레이드 테란'도 MBC게임의 자막에서 태어났고, '히든 조커'라는 김구현 선수의 별명 역시 거의 MBC게임 내에서만 사용되는 비공인 별명이죠.

 박지수의 별명은 '타임 어태커' 역시 비슷한 맥락입니다. 원래 날카로운 타이밍은 대 저그전에서 진영수 선수가 자주 선보이며 닉네임 비슷하게 얻긴 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별명으로 붙일만한 특징인가? 싶은 생각을 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적절한 시기를 찔러서 공격하며 승리하는 선수가 보여주는 타이밍은 항상 뛰어난 경우가 많은데, 굳이 그런 경우의 수가 많다고 '타임 어태커'라고 과장된 별명을 붙일 필요가 있었는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스타크래프트 매니아가 아니라 라이트한 시청자이기 때문에, 빌드와 인구수, 기본적인 타이밍 등의 전문적인 지식을 따질 수는 없습니다. 박지수 선수가 갖고 있는 '타이밍'이란 것이 분명 일반 테란 유저가 보여주는 그것과는 빌드상이나 기본적인 마인드와 다르다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겠죠. 제가 그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저는 그것을 차라리 '공격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병력으로 상대를 압도하며 한 번에 미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저그와 프로토스에 비해, 테란이란 종족은 원래 자리잡기와 느린 전진이 특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타종족에 비해서 테란 유저는 빠른 러쉬&공격성보다는 안전한 멀티와 확실한 전진을 추구하곤 하죠. 대 프로토스 전에서 전상욱 선수와 박성균 선수가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주며, 어떻게 생각하면 정석으로까지 여겨지는 테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박지수 선수는 조금 달랐습니다. 올해 70% 이상의 승률을 보여주던 프로토스 전에서, 그는 '멀티는 언제나 최악의 선택은 아니다' 라는 김동준 해설위원의 지론을 무시하듯 '끝낼 수 있을 때 항상 공격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습니다. 물론 그것은 멀티 위주로 플레이하는 양산형 선수들이 많아진 요즘 트렌드에 반하는 것이었으며, 수준급 프로토스 유저들이 보기에도 그런 '타이밍'은 분명히 엄청난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공격성이라는 것은 항상 위험성을 갖고 있습니다. 옛날 파이어뱃으로 러커를 잡아먹던 폭렬테란 김동진 선수의 몰락이나 작년 변형태 선수가 보여준 광속탈락의 모습에서 비춰지는 것처럼, 방어와 느린 전진이 특징인 테란 종족이 스타일리쉬한 공격성으로 높은 성적을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오늘 박영민 선수와의 경기에서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WCG 예선에서 보여준 김택용 선수와는 완전히 다른 공명토스의 지략에 의해서 말입니다.

 1경기는 박지수 선수의 무서운 기세 & 공격성을 잘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기세가 한창 좋은 선수들은 종종 신들린듯한 방어능력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상대의 견제만 잘 막고 공격을 갈 수 있다면 내가 무조건 이긴다는 자신감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의 박지수 선수 역시 그랬고, 많은 터렛으로 리버를 무사히 막아낸 이후에 경기는 그의 페이스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죠. 사실 상대의 리버를 안전하게 막아낸 상황이니 멀티를 하더라도 이길 가능성이 높았지만, 에그만 빼면 워낙 러쉬거리가 짧은 플라즈마 맵이었기에 박지수 선수의 공격은 도저히 막힐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해설진은 "이 타이밍이 박지수의 타이밍이에요!" 라고 외쳤지만, 솔직히 트리플 커맨드를 하면서 천천히 조여가도 이미 테란이 이길 가능성이 높은 경기였다는 겁니다.

 그런 박지수 선수의 공격성은 2경기에서 큰 낭패를 봅니다. 리버-투팩으로 묘하게 빌드가 갈린 상황에서 어떻게든 중반으로 넘어가는데, 묘한 타이밍에 캐리어로 전환한 박영민 선수의 선택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겁니다. 멀티 후 역언덕의 구조를 갖고 있는 왕의 귀환은 테란이 한 번 조이면 플토 입장에서는 멀티를 먹기 정말 힘든 맵이며, 만약 박영민 선수가 지상군 위주로 나갔다면 다수 탱크를 확보한 박지수 선수가 무난하게 이겼을 겁니다. 

 하지만 박지수 선수는 너무 자신의 공격만을 생각했고, 아카데미를 늦게 짓고 정찰을 소홀히 하면서 경기를 그르쳤습니다. 스타는 '내가 잘하는 것'만큼이나 '상대가 어떻게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한데, 박지수 선수는 한창 기세가 좋은 선수가 범하기 쉬운 '내 플레이만 잘하면 이긴다'는 맹신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자신감이 승리를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3경기에서는 다시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박영민 선수가 평범한 힘싸움보다는 전략을 건 후의 운영을 즐기는 선수라는 것을 인식했다면, 어떤 전략을 걸어올지를 고민하던가 적어도 충분한 정찰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지수 선수는 배럭을 밑으로 날린다던가, 혹은 엔지니어링 베이를 상대본진 근처에 지어서 날리는 시도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고 결국 박영민 선수의 다크에 심각한 타격을 입어버립니다. 물론 그 이후에 보여준 자리잡기나 전투를 하는 능력이 발군이긴 했지만, 이미 올멀티 체제를 갖춘 프로토스 박영민 선수의 아비터 쇼, 걸어들어가서 스톰을 쓰는 템플러 등의 모습을 빛나게 해줄 뿐이었죠.

 결국 2,3경기는 상대의 약점을 파고든 박영민 선수의 준비된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박지수 선수가 오늘 무려 8경기를 치렀다는 것도 감안하긴 해야겠지만, 엄옹이 개인적으로 물어봤다고 했을 때의 대답이나 그의 성향을 감안해봤을 때, 오늘이 단판 승부였다고 해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을지는 미지수라고 보는 편이 옳겠죠. (멀티하면서 천천히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

 아레나 MSL 4강에서 이영호 선수가 박지수 선수에게 패배한 것도 결국 상대의 특징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의 플레이만을 이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팀킬 & 맵밸런스 문제가 있는 결승전은 제외하더라도) 오늘 있었던 WCG 김택용 선수 역시 비슷한 맥락이고요. (특히 1경기의 경우 1번에 정찰이 되지 않았더라도 초반 병력을 많이 생산하는 박지수 선수를 상대로 빠른 게이트 전략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토스'의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는 지략형 박영민 선수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되었고, 이는 앞으로 박지수 선수를 상대하는 선수들에게도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분석당하면 분석당할수록 스타일리스트는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스타판의 현실이니 말입니다.

by Laphyr | 2008/08/08 21:12 | = 온라인/비디오게임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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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피식 at 2008/09/07 19:34
피식.. 자알~ 일꼬 갑니더. 공부나 할까나 난.
Commented by Laphyr at 2008/09/08 00:13
피식// ㅇㅇ 나도 요즘은 공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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