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작안의 샤나 12권


 샤나는 초기에 정말 재미있게 보던 작품이었습니다. 다소 단정적인 문체가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플레임헤이즈라는 소재와 미소녀 검사라는 설정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죠. 거기다 이토 노이지 씨의 미려한 일러스트까지 더해지니 자연스럽게 '아끼고 싶은' 작품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이미 인간이 아닌 유지, 그를 통해 변해가는 샤나의 귀여운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요시다 카즈미의 부상입니다. 샤나-유지 라인과는 번외로 플레임헤이즈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관계의 덧없음에 대해서 보여주는 매저리 - 사토, 다나카 콤비의 존재와는 다르게, 요시다는 작품이 성립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샤나와 유지 사이에 싹트기 시작한 친밀감, 우정 이상의 감정이지요.

 캄신이 등장했던 에피소드 이후, 요시다는 확실히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서 '그들'의 세계에 얼굴을 내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녀 개인의 마음에 달린 문제일뿐, 현실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사토와 다나카도 비슷한 단계를 뛰어넘었고 - 매저리가 소라토의 검을 던져주었던 에피소드 -, 적으나마 매저리에게 힘이 되어주면서 어느 정도 자신들의 입장을 확고히 한 상태죠. 하지만 요시다는 조금 이야기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녀가 중요한 위치에 놓였던 적도 있지만 그것은 특정 에피소드에 한정되었을 뿐, 상황을 생각해볼 때 '유지를 좋아한다'는 사실 외에는 요시다가 샤나 - 유지 사이에 끼어들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 냉정한 사실이죠. 

 12권에서, 피레스는 제3자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것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요시다가 충격을 먹을 수 밖에 없었던, 궁극적인 이유는 역시나 유지의 우유부단함입니다. 그가 정말로 샤나와 함께 홍세의 무리들과 싸워나갈 결심을 한 것이라면, 샤나에게 친밀감,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라면, 요시다를 위해서라도 진작에 현실적인 대화를 나누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마치 '아직 인간인 척' 요시다의 감정에 대해서 명확하게 대처하지 못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인간이었던 시절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을테지요.

 객관적으로 생각해서, 11~12권을 통해서 벌어진 청추제는 현재의 유지가 얻어낼 수 있는 한정된 상황에서의 일종의 유희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비단 캐릭터인 유지의 입장에서만 생각해볼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작안의 샤나』의 스토리를 감안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발 마스케의 움직임이 본격화되어 있고, 영시미아의 능력마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학원제'라고 하는 이벤트를 즐긴다는 것 자체가 얼음장 위를 애써 괜찮은체 하면서 걸어가려는 행위와도 같다는 얘기죠. 이것은 깨질 수 밖에 없는 평화이며,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행동들이 우습게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저를 실망시킨 것은 샤나의 행동이었습니다. 샤나는 피레스의 날카로운 한 마디에 충격을 받은 요시다에게 솔직한 대화를 통해 현실을 입증시키기는 커녕,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여자애'라는 동질감을 갖고 그녀를 위로해줍니다. 이것은 샤나라는 캐릭터의 연애노선을 통해 생각해봐도, 작품 전체의 연애스토리를 감안해봐도 전혀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한 명의 남자 캐릭터를 두고 질질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연애 쟁탈전을 하는 두 히로인의 이야기는 작품을 지루하게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 있으며, 이 작품에서는 그 곳(연애 노선)에다 모든 정성을 쏟아부을만한 여건도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연애 코미디 물에서도 두 여자 주인공이 한 명의 남자 주인공을 놓고 이야기를 질질 끌어가면 지겨워지는데 - 니노미야 군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납니다. 지겨워지다 못해 끝을 내지 못하니까 새 캐릭터를 등장시킨다는 극단의 수를 쓸 수 밖에 없었죠 - , 더욱 커다란 스케일의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는 이 작품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은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습니다.

 11권,12권을 통틀어 가장 한심스럽게 느껴진 표현은 다름 아닌 '바람의 서신' 이라는 자재법과 피레스 자신의 현신을 암시하기 위해서 할애되고 있는 3줄의 문장들이었습니다. 각각 11권, 12권 말의 반전을 담당하고 있는 두 소재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기 위해 '~는 ~한다, ~는 ~을 건넌다' 라는 식으로 전혀 상관없는 설명들이 상당수 본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만.... 물론 그 의미를 알기 전에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긴 했습니다만, 각각의 본체가 등장하고 나니 참 어이가 없더군요. 그야말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대단한 것이 아닌 것을 대단한 것처럼 멋들어지게 묘사하는 작가의 표현법의 진면목을 본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하나 더 추가하자면 유지에 대한 수식 정도가 있겠군요. 작가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나서 성장한 그의 모습을 나타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는 애초에 유지가 갖고 있었던 '평범하다'는 속성과 맞물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화제의 미소녀와 얽히고, 질투를 받는 입장에 놓인데다 관록이 있어보이는 '평범남' 이라니... 마치 '두툼한 근육을 갖추고 있지만 병약해보이는' 이라는 표현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발 이제는 요시다와 얽힌 만들어진 학원 환경에서의 소꿉놀이는 그만두고, 조금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by Laphyr | 2008/06/21 21:56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7)

트랙백 주소 : http://Laphyr.egloos.com/tb/194406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타즈 at 2008/06/21 22:47
샤나도 다 사놓은 입장에서 빨리 읽기시작해야되는데 최신간으로 가면 갈수록 평이 호평보다는 혹평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어찌해야될지를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샤나 보다 더 읽고 싶은 작품들이 수두룩하게 있다는것이 더욱 이 작품을 접하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구요.
(일례로 단장의그림도 보고싶고, Missing도 보고싶고, 성계전기 라피르님도 보고싶고 등등)
Commented by 크라켄 at 2008/06/21 23:42
음 뭐가 걱정되고 뭐가 불만이신지 대충 보니까...
이제 한 두세권 지나면 마음에 들어하실 전개가 터지는군요
기대해주세요 크리티컬 터집니다
Commented by Laphyr at 2008/06/22 00:48
타즈// 그러고보니 저도 볼려고 샀던 책들이 자꾸 밀리고 있어서 =_= 확실히 이것저것 즐길거리가 많으니까 한권보고 또 한권 잡기가 쉽지가 않아지네요. 새로 뭔가를 시작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크라켄// 오오 ㅜㅜ 그거 다행입니다 정말 이대로 나간다면 금서목록처럼 눈물을 머금고 중단해야 하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캐릭터성 하나만큼은 정말 아껴주고 싶은 작품인지라 스토리가 계속 이런 식만 아니라면 후속편을 기대해볼만 하겠네요.
Commented by 핌군 at 2008/06/22 10:15
이번권은 그저 장마가 오기 전에 잠시 맑은 날 이라는 이미지였는데.
작가입장에서는 주인공들이 겪는 마지막 일상이라는 의미로 쓴 것이 아닐까?
Commented by Laphyr at 2008/06/22 17:45
그렇게 생각하기엔 여러모로 '꾸미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많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진행되는 이야기들도 많고 말야.
마지막 일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에피소드 자체를 쉽게 읽고 단순하게 받아들이려는 것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데..?
Commented by at 2009/01/27 05:14
대단하군요...... 저도 보다가 현재 8권까지 사놓고 보고있지만 초반에 등장했던 그 멋지고 관록의 포스를 느끼게해주던게 점점 사라지고 있군요. 빠른탭포의 스탭을 밟는듯한 느낌의 구절이 없는 느낌입니다. 어느 소설이라 마찬가지이겠지만 갈수록 점점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것이 아닌 엮어 나가기위한 구실로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대작일수록 맺고,끊는것이 좋아야하는데 말이죠.여튼 이렇게까지 멋진 읽은후의 정리를 잘해놓은사람도 드문것 같네요^^
Commented by Laphyr at 2009/01/27 19:06
칭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확실히 아끼던 작품인만큼 그에 대한 실망도 더 커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이 어느정도 좋아지면 애정으로 보는 독자의 경우와는 달리, 매 권 다른 느낌을 받아가면서
여러 작품을 비교해가는 독자에게는 그러한 식상함이 어느 작품에서나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샤나는 이 이후에 외전 말고는 읽지를 않았습니다. 그만큼 매력이 떨어졌다고나 할까, 아니면 궁금증이 사라졌다고나 할까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