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1월 29일
[감상] 개와 가위는 쓰기 나름

작가 : 사라이 슈운스케
일러스트 : 나베시마 테츠히로
레이블 : 패미통문고 & NT노벨
제12회 엔타메 대상(패미통 문고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신인 작가의 작품입니다. 미려한 일러스트의 미소녀와 개의 투 샷을 메인에 넣음으로써 비일상적인 러브 코미디에 대한 환상(?)을 심어 줬지만, 실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드립과 태클로 이루어진 정통 말장난 류의 작품. 작품에 대한 기대 방향에 따라 큰 실망이 있을 수도 있고, 오히려 의외의 재미가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 말장난
이 작품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과 히로인이 주고 받는 말장난입니다. 비정상적인 독서광이라는 설정의 주인공, 그리고 가위를 들고 다니는 위험한 폭력 히로인의 조합은 솔직히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만, 문제는 그 텐션에 있습니다. 받아들일 수 있으면 충분히 재미가 있으나, 받아들이지 못하면 오히려 짜증이 난다는 겁니다.
이러한 장르의 정점 중 하나에 서 있는 니시오 이신의 모노가타리 시리즈는 이러한 템포의 조절이 절묘합니다. 얼핏 의미없어 보이는 말장난이 이어지는데, 독자 입장에서 모든 대화를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니시오 이신은 그것을 알고 있고, 때문에 중간중간 그것을 희석할 수 있는 장면들을 삽입하곤 합니다. 센조가하라는 괜히 츤데레가 아니며, 칸바루의 18금 발언은 단순한 캐릭터 메이킹이 아닙니다. 히타기 님의 '데레', 칸바루의 섹드립은 캐릭터 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지루할 수 있는 말장난의 양념으로써 작용을 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배려가 부족합니다. 드립과 태클, 보케와 츳코미 대사들은 어느 정도의 재미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의 무언가가 없어요. 히로인 키리히메는 툭 하면 "개가 맛있을까?", "개 전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너, 죽어보는 게 어때?" 등의 수준 높은(?) 드립을 치고 있습니다만, 장면 전환이 되어도 그녀는 항상 난폭한 그녀인 채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주인공이 개라고는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은 개가 아니라 독자라는 점은 배려가 되어야 합니다.
- 설득력
라이트노벨에는 소재에 따라 설득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아빠 말 좀 들어라!>의 사코 선배의 로리 사상이라든지, <하느님의 메모장>의 히로의 여성 편력은 독자가 납득하지 않아도 스토리 진행에 문제가 없으며, 또 작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독특한 설정이 작품의 메인을 차지하게 된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왜, 어째서? 하는 납득 없이 무작정 달려 나가는 것은 충분히 위험하다는 겁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과 히로인이 모두 굉장히 유별납니다. 책을 조금이라도 읽지 않으면 미쳐버리는 고교생 주인공, 쓰기만 하면 정신이 나가 버리는 작가 히로인, 이들의 사상을 일반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죠. 적어도 왜 책을 좋아하는지? 그가 좋아하는 책의 매력이 대체 무엇인지? 하는 단계에 대한 포석이 있지 않으면, "책을 좋아하니까!" 라는 내용을 답으로 제시해 봤자 공감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좋아하냐고?"
하나의 단계가 생략되어 있으면, 작가의 감성과 독자의 감성에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클라이막스에서 작가가 아무리 열혈 시츄에이션을 만들었다 한들, 이해가 되질 않거든요. 이 작품에서는 "책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 처음부터 생략되어 있고, 그걸 설명하려는 노력도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덕택에 주인공의 죽음에 관련된 에피소드의 전말, 마무리는 너무 거칠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죠.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의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범인의 범죄 동기 설명" 부분에서, 범인이 "흑흑 나는 이 사람이 너무 죽이고 싶었다구! 야들야들한 구릿빛 피부를 보면 칼로 베어버리고 싶은 게 사실이잖아. 당연한 거야!" 라고 설명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걸 듣고 피해자의 아들이 "음. 맞습니다. 이해가 갑니다. 비록 제 아버지는 죽었지만, 저는 저 사람을 용서하겠어요." 라고 말한다면 참 재미있겠죠. 아무리 피해자 아들 또한 구릿빛 피부를 보면 칼로 베어버리고 싶은 취향이 있었다고 초장부터 설명을 한들, 저렇게 마무리가 되면 납득이 되겠습니까.
저는 이 작품을 폭력녀 - 개가 된 주인공의 러브 코미디 요소가 가미된 스릴러로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작품 자체가 너무 난폭하더군요. 캐릭터도 난폭하고, 작가가 자신의 의지만을 독자에게 관철시키려는 서술 방법도 난폭합니다. 하지만 이건 작가의 데뷔작이고, 또 1권입니다. 근원이 되는 문제는 해결된 이상, 한 사람과 한 마리의 커플(?)이 어떤 이야기를 펼쳐갈지에 대해서는 기대를 남겨 둘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그만큼 말장난 자체에 대한 센스는 뛰어나고, 캐릭터도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키리히메가 궁극의 츤데레(얀데레?)로 변신할 수만 있다면야, 저는 이 작품에 대한 1권의 혹평을 철회할 생각이 있습니다(...). 1권의 분량을 희생한 '츤츤츤츤츤츤' 이었다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2권이 아주 많은 의미로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Summary]
- 장점 : 주인공과 히로인이 주고 받는 대화의 센스가 뛰어나다.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경우에는 순식간에 읽어 내려갈 수 있을 만큼, 신인답지 않은 템포를 보여준다.
- 단점 : 전체적인 소재의 설득력이 부족하다. 덕택에 캐릭터의 매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그들의 독특한 성격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감동 혹은 모에를 느낄 겨를이 없다.
- 장르 : 라이트 미스터리 판타지 코미디
- 캐릭터 특징 : 주인공과 히로인 모두 집착형 성격, 말싸움에 능한 비슷한 스타일. 히로인은 얼굴 없는 유명 미녀 작가라는 매력적인 설정이 있으나, 그것은 배경으로만 사용하된 센조가하라 형 폭력녀 컨셉이다. 주인공 역시 '개'가 되었다는 독특한 설정이 있지만, 이는 언어유희의 도구가 될 뿐 직접적인 소재로 사용되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소재는 좋으나, 잘 펼쳐 나가지 못한 아쉬운 케이스.
# by | 2012/01/29 17:56 | = 라이트노벨 | 트랙백 | 덧글(9)

















